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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2023 긴개 (330)
성북동 글방 희영수
고독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스스로의 변덕 중 하나이다. 혼자가 싫다. 혼자 일어나 혼자 잠들고 싶지 않다. 날 위해 요리해 혼자 먹고 직접 치우고 싶지 않다. 혼자서도 외식과 쇼핑은 곧잘 하지만 역시 한 마디 내뱉고 싶어질 때가 있다. “옳게 된 자본주의라면 이 거지 같은 음식을 내가 먹어줬으니까 돈은 내가 받는 게 맞지 않아?”라던지 “이 옷이 나한테 이 정도로 잘 어울리면 디자이너가 그냥 한 벌 줘야 하는 거 아냐?”같은 말을. 그때마다 받아쳐줄 상대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무나 그 역할을 맡아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혼자이긴 싫은데 그렇다고 함께이고 싶은 사람도 없다. 가족들이 있는 집에 가면 불면증에 시달린다. 어떤 사람들과는 함께 식사를 하느니 차라리 혼자 껌을 씹겠다. ..
6월 19일 오늘 저녁 라이즈호텔 15층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여덟명 가량의 남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아마 그 가해자들은 그 행위를 ‘슬램’이고 ‘공연 문화’ 중 하나라고 변명할 것이다. 슬램은 소위 말해 펑크나 메탈 공연에서 벌어지는 뺑소니 사고이다. 그 이상의 친절한 설명은 하고 싶지도 않다. 오로지 가해자만이 ‘문화’라고 부르는 행위일 뿐이다. 효도앤베이스 밴드 공연 중 마지막 곡이 시작되던 찰나에 갑자기 일고여덟 명의 남자들이 떼를 지어 공연을 즐기던 사람들을 밀쳐내고 가운데로 뛰어들어 마구잡이로 뛰면서 서로에게 몸통박치기를 했다. 앞자리에서 공연을 즐기던 나는 황소처럼 날뛰는 가해자들에게 부딪혔고, 이 정신없는 과정에서 겨우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며 바깥으로 도망쳤다. 밖으로 나와보니 내 앞과 주..
식당에서 주문한 메뉴가 나오기 전까지 무엇을 하며 기다려야 좋을지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을 오랫동안 찾아왔다. 카페라면 한결 수월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곳만의 재미있는 인테리어를 하나하나 뜯어볼 수도 있고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뒤적거려도 된다. 애초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각오를 하고 가는 곳이기도 하고. 그러나 오로지 식사를 위해 방문한 식당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 주어지는, 짧다면 짧고 (어색한 사람들과 함께라서)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뭘 하면 좋을까. 함께 온 이들을 위해 수저를 놓아주고 컵에 물을 따라 나눠주며 한바탕 부산을 떨고 난 뒤에도 여전히 음식 소식은 요원하다면? 나는 그 답을 에밀 출판사의 『놀라운 리얼 종이접기 2 - 하늘을 나는 생물 편』에서 찾았다. 사각주머니*를 미리 접어..
엄마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달라고 했다. 사실은 그 말을 미처 꺼내기도 전에 나는 알았다. 부름의 의도에 따라 자신의 목소리 톤과 억양이 세분화되어 있다는 걸 엄마는 몰랐을 것이다.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자마자 그 음파가 뒤이어 주문하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나는 인형술사가 일으킨 목각인형처럼 벌떡 일어나 그대로 현관문으로 뛰어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 잡힐 것이 뻔했으므로 한 번에 세네 칸씩 계단을 펄쩍펄쩍 뛰어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으로 빙글빙글 휘감긴 통로 위에서 엄마가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소리쳤다. 야 이 망할 년아 - - - - - 위 기억은 중학생 때의 것으로, 그때의 나는 어떻게든 남이 시키는 것을 하지 않으며 살고자 노력했다. 지금도 직장에 다니고는 있지만 고분고분시키는 대로 따르..
오월이 되기 전에 이사 온 이 작은 마을은 아주 높은 곳에 있다. 마을을 한 바퀴 휘- 돌아 산책 하다보면 저 아래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지붕들이 보인다. 아마 이전에 살던 해방촌보다 여기가 더 높을 것이다. 인구 수는 훨씬 적다. 그래서 훨씬 조용할 줄 알았는데 새소리가 아주 시끄럽다. 우리 집보다 높은 곳에 사는 것도 바로 이 새들이다. 마을버스 없이도 가파른 오르막길을 쉽게 올라와 통풍 잘 되는 나무 위에다 집을 지었다. 아랫동네 지붕들은 눈길만 돌려도 쉽게 구경할 수 있었는데, 이 작은 집은 뒷목을 뻐근해질 정도로 꺾어야 그 바닥만 겨우 올려다 볼 수 있다. 친환경적인 자재로 지어진 이 단독 주택은 형편에 따라 소박하게 지어졌는데, 그마저도 새끼가 크고 나면 텅 비어버린다. 한 때 눈도 못 뜨던 새..
이사 온 동네에서 가장 반가운 건 역시 아카시아 나무다. 출퇴근 할 때 마을버스를 타고 고작 두 정거장을 이동하는 대신, 산을 구불구불 가로지르는 하나의 길을 따라 약 25분 가량을 걸어다니기로 했는데 처음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때는 그들도 조용히 꽃송이를 다물고 있었을 때였다. 그러나 이사한지 일주일이 지나갈 무렵 도저히 코를 킁킁대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진하고 매혹적인 향기가 산 전체에 스며들었고 그제야 이 산 전체에 높이 10미터는 족히 넘을 아카시아 나무들이 서로 손에 손을 잡듯이 빼곡히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매년 피어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두 종의 꽃 중 하나가 이렇게 집 가까이 가득하다니 1.6배 오른 월세가 아깝지 않았다(다른 한 종은 수수꽃다리이다). 아카시..
내가 나에게 해주는 좋은 말들은 탁 트인 한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서 외치는 소리처럼 잘 전해지지 않는다. 반대로 남이 내게 해주는 구린 말들은 아무리 먼 곳에서 소근거려도 고막에다 바로 때려박는 것처럼 생생히 들리는 데다가 온 몸에 붙은 고양이털처럼 쉽게 떨쳐내기가 힘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자랑스러워 하려다가도 오래전에 들었던 어떤 말 하나 때문에 입술만 달싹이다가 그치곤 했다. 그 말은 사실도 아니고 영양가도 없고 더럽게 재미도 없었지만 고등학교 졸업사진처럼 끈질기게 내 발목을 잡았다. 남의 말로 족쇄를 차는 것은 불행하다. 차라리 모래 위에서 타이어를 끌면 근육이라도 늘텐데 족쇄는 갈수록 발목을 조여 한 걸음 떼기도 힘들게 된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잠시 유체이탈을 해야한다. 지친 몸에서 ..
환승할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서 있던 5분 동안 문득 생각했다. 어떻게 두 발을 딛고 서있는 걸까. 발바닥과 복사뼈, 무릎 관절과 배꼽 아래가 전부 토도독 흩어져 쓰러질 수도 있잖아. 발아래, 신문을 펼친 정도의 좁은 땅은 언제든지 계란 껍데기처럼 잘게 조각나 그 사이로 스르륵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저 멀리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아래는 크고 단단하고 두꺼운 지구가 받치고 있다. 축축하고 더운데 사람들 뒤로 아지랑이가 보인다. 걱정 없는 사람들이 앞으로도 뒤로도 바쁘게 가버리고, 나는 몸을 멀쩡히 세워놓고도 자꾸 떨어지는 기분이다. 노트북이 든 가방이 어떻게든 나를 땅에 메다꽂을 것만 같고. 대체로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왜냐하면 선택지가 둘 뿐이기 때문이다. 너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긍정적으로 볼래..
다림판 없는 다림질은 로프 없는 번지점프요, 쌍안경 없는 탐조와도 같고 마우스 없이 디자인하는 꼴이라 할 수 있다. 위험하고 불편하며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단 말이다. 다림판 없이 다림질을 해보겠다고 이 년 넘게 버텨보았지만 다리미의 짝꿍은 식탁도, 책상도 될 수 없었다. 오로지 천이 두툼하게 깔린 아름답고 오묘한 곡선의 다림판만이 다리미의 짝꿍으로서 어울리는 격을 지녔던 것이다. 자취 10여년 차, 드디어 다림판을 샀다. 다림질이란 어쩐지 내 삶에 파고들만한 부류의 일이 아니었다. 옷은 빨기도 귀찮고 널기도 귀찮은데 또 개기도 귀찮고 입기도 귀찮은, 그러나 존엄한 인간의 생필품으로서 그 무게를 짊어져야만 하는 허물이요 허상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가디건에 경량패딩, 숏패딩, 롱패딩, 코트, 재..
“가구는 주워다 쓰는 거 아니래요. 특히 나무로 된 건.” 우리집을 휘- 둘러보며 애인이 한 말이다. 왜 주워다 쓰면 안 되지? 내다 버린 사람은 더이상 알 바가 아니고, 한 가구를 여러 사람이 오래도록 사용하는 편이 환경에 도움될테니 오히려 권장해야 할 만한 태도 아닌가? 가구를 주워다 쓰면 안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싶어 구글에 검색해보니 대부분 미신 이야기 일색이다. 이런 이유라면 상관없지. 남이 살던 집에서도 살면서 남이 쓰던 가구는 못 쓸 게 뭐람. 물론 침대 매트리스 같은 건 패스. 혹시 곤충들이 나무 결 사이사이에 쏙쏙 박혀 함께 이사오기 때문인가? 음흉하게도 그 속에다 알을 낳아두기 때문인가? 그런데 누군가 그것을 내다버리고, 내가 주워오는 그 짧은 사이에 곤충들이 그렇게 잽싸게 뛰어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