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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성북동희영수 (4)
성북동 글방 희영수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단박에 이해할 수 없는 제목이다. 내용 또한 서너 번 통독했지만 여전히 어렵다. 누군가 한줄평을 써달라고 하면 끊기지 않는 하나의 문장으로 A4 용지를 전부 채울 것 같다. 오키나와 생활사를 연구하는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가 쓴 이 책은 2016년에 출판되어 2023년에도 팔리고 있다. 작가가 사회학자라고 해서 책을 관통하는 어떤 커다란 사회학적 연구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주제와 이론, 표본 같은 것들의 사이로 삐져나온, 이를테면 패딩에서 탈출한 거위털 같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연구자료를 제공하던 구술자, 일상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들려준, 혹은 자신이 직접 겪은 도무지 일반화할 수 없으며 소설가도 미처 떠올리지 못할 기묘하고 ..
노바디 홀덤 Nobody hold’em 긴개 딜러는 간신히 하품을 참았다. 두 사람은 여전히 카드 두 장씩을 손에 움켜쥐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폴드던 콜이던 상관없으니 빨리 진행하고 싶다. 그러나 딜러에겐 운 나쁘게도 오늘 카지노엔 유난히 손님이 없다. 자기 앞에 앉은 이 두 사람은 이미 게임 진행에는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다. 다른 손님들이 있었다면 핑계를 대고 눈치라도 줄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크루즈는 천천히 바다를 달리고 있다. 고층 건물만큼 큰 크루즈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서 바다에 떠있다는 것이 잘 실감 나지 않는다. 지루함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 딜러는 두 사람 몰래 허벅지를 꼬집었다. 허연이 또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는 그 감독 작품이 다 뻔하더라고요.” “왜요?” “수직 관계의 시발..
호두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친구는 세담뿐이다. 새로 이사한 집에 세담이 놀러 와 호두는 어디 있냐 물었을 때 차마 숨길 수 없었다. 그 말을 하는 데 자꾸만 발음이 뭉개졌다. 내가 우는 것보다 빠르게 세담의 눈가가 벌게졌다. 그 뒤로도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몰랐고, 상대에게서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도 몰랐다. 사실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호두는 지금에서야 반려동물 이름으로서는 좀 흔한 축에 속하지만, 십삼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호두는 호두라고밖에 부를 수 없었다. 당시 초등학생 때부터 키우고 있던 시츄 마루와 새로 데려온 어린 고양이를 잘 지내게 하려면 이름이라도 그렇게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스크림 이름에서 따온 마루와 호두, 호두와 마루...
민증을 발급받은 후로 열 번의 이사를 다녔다. 짐을 풀어 그 위에 먼지가 두껍게 쌓일라치면 다시 짐을 꾸리는 식이었다. 이전에 살아본 적 없는 동네들로 새 길을 내며 줄기차게 흘러 다녔다. 그러니까 변화를 두려워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 중에서 고르자면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모든 번잡합을 견디지 못했을 테니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 이사를 많이 다닌 것인지, 이사를 많이 다녀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이사를 기준으로 변화에 대한 적응성을 평가하자면 그렇다는 말이고. 내가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사람이라면, ‘빨리’는 어느 정도의 기간을 뜻할까. 한 달 전 나는 책방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스위치를 달칵 켜듯 느닷없이 대출을 받았고 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