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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요즘도 풋살 안 하는 사람이 있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올해 7월 처음 공을 차본 풋내기 주제에 지금은 일주일에 7일 풋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풋살(Futsal)은 국제 축구 연맹(FIFA)이 공인한 실내 축구의 한 형태로, 열한 명의 선수가 한 팀으로 뛰는 축구와 다르게 보통 다섯 명이 한 팀을 이룬다. 풋살공은 축구공보다 조금 작고 무겁다. 주말에 풋살을 한다고 하면 몇몇 사람들은 ‘골때녀’를 재밌게 본 팬이냐고 묻기도 한다. 아니오. 2021년부터 SBS 방송국에서 방영 중인 여성 축구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은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그보다는 2018년에 민음사에서 발행한 김혼비 작가의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서 영향을 받았다. 책이 어땠길래? 사실 책도..
소음은 염치가 없다. 20년 전 유행가는 기어이 유리문 틈 사이로 비집고 카페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책장을 넘기거나 뭔가를 쓰고 있던 사람들이 소음에 귓불을 잡힌 듯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진하는 카운터 안에서 설거지를 하다 말고 한숨을 푹 쉬었다. 한숨은 되도록 자제하고 있다. 남이 듣기에 좋은 소리도 아니고, 자신도 그 소리를 들으면 힘이 쭉 빠지고 만다.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도 하지 않을뿐더러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그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 왔다. 그러나 이럴 땐 한숨 말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옆 가게에서 또 음악을 튼 것이다. 그것도 닫힌 문 사이로 가사 한 음절 한 음절이 또렷이 들릴 정도로 크게. 시끄럽기만 한 것이 아니다. 전철 1호선에서 잡상인이 시디..
노바디 홀덤 Nobody hold’em 긴개 딜러는 간신히 하품을 참았다. 두 사람은 여전히 카드 두 장씩을 손에 움켜쥐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폴드던 콜이던 상관없으니 빨리 진행하고 싶다. 그러나 딜러에겐 운 나쁘게도 오늘 카지노엔 유난히 손님이 없다. 자기 앞에 앉은 이 두 사람은 이미 게임 진행에는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다. 다른 손님들이 있었다면 핑계를 대고 눈치라도 줄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크루즈는 천천히 바다를 달리고 있다. 고층 건물만큼 큰 크루즈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서 바다에 떠있다는 것이 잘 실감 나지 않는다. 지루함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 딜러는 두 사람 몰래 허벅지를 꼬집었다. 허연이 또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는 그 감독 작품이 다 뻔하더라고요.” “왜요?” “수직 관계의 시발..
2018. 8. 31. 18:38 남자는 18살 즈음에 깨달았다. 자신은 비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남들은 비가 내리면 몸이 젖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도 알았다. 그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탓이다. 우산을 쓰고 다니는 것은 부모님이 가르쳐 준 이후 그대로 해온 행동이다. 느닷없이 소나기에 마주한 사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은 그저 즐거워서 그러는 줄로만 여겼다. 별생각 없이 가방에 항상 남색 3단 우산을 넣어 다닌 덕에 맨몸으로 비 맞을 일이 없었다. 가방에 남색 우산과 립밤, 지갑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을 더 넣어야 할지도 몰랐고, 넣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남들이 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쓸 때 함께 우산을 들었다..
호두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친구는 세담뿐이다. 새로 이사한 집에 세담이 놀러 와 호두는 어디 있냐 물었을 때 차마 숨길 수 없었다. 그 말을 하는 데 자꾸만 발음이 뭉개졌다. 내가 우는 것보다 빠르게 세담의 눈가가 벌게졌다. 그 뒤로도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몰랐고, 상대에게서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도 몰랐다. 사실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호두는 지금에서야 반려동물 이름으로서는 좀 흔한 축에 속하지만, 십삼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호두는 호두라고밖에 부를 수 없었다. 당시 초등학생 때부터 키우고 있던 시츄 마루와 새로 데려온 어린 고양이를 잘 지내게 하려면 이름이라도 그렇게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스크림 이름에서 따온 마루와 호두, 호두와 마루...
민증을 발급받은 후로 열 번의 이사를 다녔다. 짐을 풀어 그 위에 먼지가 두껍게 쌓일라치면 다시 짐을 꾸리는 식이었다. 이전에 살아본 적 없는 동네들로 새 길을 내며 줄기차게 흘러 다녔다. 그러니까 변화를 두려워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 중에서 고르자면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모든 번잡합을 견디지 못했을 테니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 이사를 많이 다닌 것인지, 이사를 많이 다녀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이사를 기준으로 변화에 대한 적응성을 평가하자면 그렇다는 말이고. 내가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사람이라면, ‘빨리’는 어느 정도의 기간을 뜻할까. 한 달 전 나는 책방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스위치를 달칵 켜듯 느닷없이 대출을 받았고 눈 ..
방미선은 포장 이사를 부를 걸 하고 벌써 수십 번째 후회했다. 이삿짐을 일일이 싸는 것도 징그럽게 힘들었지만, 지저분한 집을 직접 청소하고 다시 그 꾸러미들을 푸는 것 역시 끝이 없을 것처럼 힘들었다. 새 집은 이전보다 월세가 훨씬 저렴하지만 그 대신 몹시 낡았다. 미선이 어릴 때나 유행했던 알루미늄 창틀을 용케도 지금까지 달고 있다. 게다가 문은 또 어찌나 많은지, 이곳저곳 열 때마다 새끼 고라니처럼 끼익 끼익 비명을 질러댔다. 돈만 아쉽지 않았어도 이렇게 다 쓰러져가는 주택으로 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사 온 첫날 밤, 미선은 안방 구석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새로 바른 벽지 아래로 직사각형 모양으로 움푹 파인 자국이 있었다. 허리를 수그리면 그 직사각형 안으로 몸이 통과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방문은 처음이었다. 이름도 주변 지리도 낯설다. 아무리 전시 방문 빈도가 낮은 편이라 해도 명색이 미술학도였는데 이렇게 미술관이 낯설어서야 되겠나. 쓸데없이 자존심이 상했다. 검색해 보니 개관일이 올해 4월 4일이라니. 그럼 그렇지. 미술관에 잘 가진 않지만 내가 모르는 미술관이 많아선 안 되지. 전혀 낯설지 않은 척, 당당하고 느린 걸음걸이로 야트막하게 옆으로 넓게 펼쳐진 새 건물에 입성했다. 비록 어슐러 K. 르 귄이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에서 ‘예술은 해설이 아니다. 예술가는 예술을 할 뿐 설명하지 않는다. 내 생각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작품을 주목해야 할 이유’나 작품을 ‘감상하는 법’을 쓴 작가의 설명이 곁들여진 현대 미술이 불만스럽다.’고 말했지만, 나는 서..
모처럼 긴 휴일을 맞은 정민 씨가 평창동의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열리는 전시 관람을 제안하기에 흔쾌히 그러자 했다. 여기서 ‘흔쾌히’란, 평상시의 내가 도통 여유 시간을 전시 관람에 할애하는 타입의 사람이 아님을 두드러지게 하려는 말이다. 공과대학을 졸업한 정민 씨가 먼저 전시 관람을 제안하고 미술대학을 졸업한 내가 수동적으로 응하는 데에는 혹시 ‘관람’에 대한 다른 잣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야 생각해 본다. 전시를 ‘본다’는 건 뭘까. 전시장에 도착해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걸으며 벽면에 붙은 뭔가를 흘끔흘끔 보고, 때로는 핸드폰을 꺼내 찍다가 어느새 화살표를 따라 전시장 밖으로 나오는 것이 관람의 처음과 끝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더 넓게 보자면 취향에 맞는 전시를 찾아 검색하고, 정..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긴 하품을 했다. 오후의 겨울 햇볕은 부엌까지 깊게 스며 공기를 부드럽게 데웠다. 코를 킁킁거리다 몸을 뒤척여 편한 자세를 찾았다. 이 부드러운 방석 위에선 어떻게 누워도 늘어지게 잘 수 있지만, 이런 잠투정이야말로 내 처지의 본분일 테니. 다시금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문이 닫힌 작은 방 안에선 흐느끼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내 쪽이 하품 뒤의 느긋한 눈물 한 방울을 문질러 닦는 동안, 저기선 좌절과 절망, 체념이 콸콸 흐른다. 하여간 드라마를 너무 본 탓이라니까. 넌 아직 내가 겪은 나날의 반에도 미치질 못했는데. 지금부터 이렇게 무너져 내리면 앞으론 어쩌려는 거야. 제 팔자 제가 꼰다던 엄마 말이 맞을지도 몰라. 저것도 제 복이다. 나는 눈을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