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0624 금 / 서로 몸을 부딪히고 싶으면, 그렇게 합의한 사람끼리 하면 된다 / 긴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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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금 / 서로 몸을 부딪히고 싶으면, 그렇게 합의한 사람끼리 하면 된다 / 긴개

긴개 2022. 6. 24. 01:01







슬램폭행에 대한 글을 쓴 뒤에도 한동안 찝찝했다. 그 찝찝함이 싫다. 사실 단순한 일인데. 누가 내 신체를 고의로 때렸고 나는 그게 싫다. 나 같은 피해자가 또 없길 바란다. 그래서 글을 써서 알렸다. 다음 공연에서 동의 없는 폭행이 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 미리 알려지길 바랐다. 실제로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이 정도다. 뭐 마이크를 뺐고 공연을 중단시킨 뒤 경찰이라도 불렀어야 했나? 다시 돌아간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어쨌든 이 찝찝함의 근원에 대해 파헤쳐봐야 속이 시원하겠지. 며칠간 이어진 고민은 그걸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찝찝함의 첫 번째 원인은 이것이었다. 피해를 알리는 과정에서 예민하고 호들갑스러운 사람으로 비칠까 봐 걱정했다. 별 것 아닌 일을 키우는 성가신 사람이라고 여겨지고 싶지는 않잖아. 게다가 폭행 피해를 알리는 글을 쓰는 와중에도 도덕적, 논리적으로 무결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말투가 공손하지 않으면 피해자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얌전해 보이지 않으면 이런 일을 겪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할까? 내 금과 옥 같은 신체를 폭행한 가해자는 히히 신나서 놀고 집에 갔는데 나는 두들겨 맞아놓고도 감히 이런 일을 세상에 밝혀도 되는지, 내 계정에 이런 글을 써도 되는지 등을 고민한다. 이런 자기 검열 귀엽고 애틋해. 마치 고객의 과실을 절대 0으로 잡지 않는 보험사 직원처럼 끊임없이 내게도 잘못이 있지는 않았나 신중했었다. 내가 무식해서 맞은 걸까, 성격이 더러워서 맞은 걸까, 눈치가 없어서 맞은 걸까 뭐 이런 생각은 더 안 할래. 내가 성격이 더럽고 무식하고 눈치가 없어도 신체를 때리면 안 된다는 걸 왜 몰라 왜…?




찝찝함의 두 번째 원인은 가해자의 억울함을 쓸데없는 상상력으로 공감한데서 비롯했다. 내가 만약 그렇게 키가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이었으면 나 역시 무식하게 행동하진 않았을까? 퍽 치면 작고 약한 사람들이 쉽게 멀리 날아가는데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겠어. 잠시 격하게 슬램 하려 하는데 자리를 비켜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일일이 양해를 구할 필요 없이 그냥 힘으로 날려버리면 되잖아. 내가 그 덩치의 남자였다면 똑같은 행동을 하진 않았을까? 이런 끔찍한 상상에 깊게 빠질 뻔했지만, 그래서 우습게도 남의 가해에 내가 죄책감을 느낄 뻔했지만, 결국엔 다시 머리가 맑아졌다.



지금도 힘으로 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 많다. 나는 저번 주에 초등학생한테도 팔씨름을 졌으니까. 하지만 지금 아무도 날 때리진 않는다. 그건 쉽다. 너의 몸으로 내 몸을 안 건드리면 된다. 이게 글로 설명해야 될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놀랍게도, 타인을 안 때리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가해자들은 그냥 주변 사람을 치고 싶으니까 친 거다. 밴드 ‘문화’고 뭐고 그냥 옆에 있는 사람을 때린 거다.






어쩌면 슬램에서 주먹을 꽂고 발로 차는 행위가 적다고 해서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가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도와 주짓수를 예로 들면 몸통으로 짓누르고 밀치는 게 충분히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쉽게 설명할 수 있겠지. 게다가 당시 나는 나를 강하게 때린 팔을 꽉 붙잡았었다. 그대로 잡아서 경찰서에 데려갈 생각이었으나 그는 쉽게 뿌리치고 계속 폭행을 이어갔다. 아마 그의 팔뚝에 깜찍한 손톱자국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당시 몸통뿐만 아니라 팔과 팔꿈치 역시 폭행에 충분히 활용되었으니 제발 억울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공연장의 흥겨운 춤사위에 서로 스친 것과 고의 폭행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분별력이 있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그런 오해는 정말 집어치워버려 ~




꼭 이렇게 공공연하게 피해를 알려야 하느냐는 말이 있어서 괴로웠지만 ~ 몸 얻어맞고 마음 아프기까지 하진 않을게 ~ 소중한 나의 바디 또 엉뚱한 놈한테 만져지지 않을게 ~




서로 몸을 부딪히고 싶으면, 그렇게 합의한 사람끼리 하면 된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생각인가? 모르겄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