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0530 월 / 솔선대충수범 / 긴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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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월 / 솔선대충수범 / 긴개

긴개 2022. 5. 30. 22:45

 

 

 

 

                                            

 엄마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달라고 했다. 사실은 그 말을 미처 꺼내기도 전에 나는 알았다. 부름의 의도에 따라 자신의 목소리 톤과 억양이 세분화되어 있다는 걸 엄마는 몰랐을 것이다.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자마자 그 음파가 뒤이어 주문하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나는 인형술사가 일으킨 목각인형처럼 벌떡 일어나 그대로 현관문으로 뛰어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 잡힐 것이 뻔했으므로 한 번에 세네 칸씩 계단을 펄쩍펄쩍 뛰어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으로 빙글빙글 휘감긴 통로 위에서 엄마가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소리쳤다. 야 이 망할 년아 - - - - -

 

 

 

 위 기억은 중학생 때의 것으로, 그때의 나는 어떻게든 남이 시키는 것을 하지 않으며 살고자 노력했다. 지금도 직장에 다니고는 있지만 고분고분시키는 대로 따르는 위인은 여전히 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 중에 본디 내가 너무나도 하고 싶어 애타게 기다려왔던 일은 없으며 보통은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그 일을 시킨 본인조차도) 그 실무자가 돌고 돌아 나로 지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시킨 일이 당연히 하고 싶지 않은 거잖아. 애초에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인 거잖아. 

 

 

 

 나를 부려먹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이어지는 내용을 꼭 읽어야 한다. 그러니까 나에게 뭔가 시키려면, 내가 자발적으로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어야 한다. 말로 그 주문을 읊는 것보다 옆에서 그 일 때문에 골머리 썩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좋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면을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 아마도 내가 영혼 없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지나쳐 갈 수도 있다. 그럴 때를 잘 붙잡아야 한다. ‘너 혹시 이런 거 잘 알아?’ 내지는 ‘넌 이런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이럴 땐 어떻게 해결하면 좋아?’ 등으로 의견을 묻는 척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조금 기분이 좋아진다. 어머 이 사람 나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네. 누구한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야말로 현명한 사람이지. 이 현명한 사람이 무엇 때문에 괴로움에 빠졌는지 어디 한 번 들어나 볼까. 또 나의 예리한 시선이 의외의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하고 우쭐해져서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게 된다. 그렇게 마음과 물리적 거리가 함께 가까워지고, 해야 할 일들을 보따리장수처럼 늘어놓고 설명하다 보면 이미 미끼를 물어버린 내가 허허 신나서 덥석 이건 내가 할게 저건 내가 할게 하며 미래의 나에게 지탄받을 공약을 내뱉는 것이다. 그리고 일 하는 나에게 끊임없는 칭찬과 감탄사를 흩뿌려달라. 감사의 인사 몇 마디만으로도 몇 가지 일을 더 해낼 수 있다. 

 

 

 

 만약 그게 어렵다면 그냥 일 시키고 돈을 많이 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