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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답장 하지 않은 연락이 여럿 쌓여있다. 뭐라고 해야할지 몰라 읽지도 않았는데 답장할 말을 생각하는 것도 괴롭고 읽지 않는 것도 괴롭고 내가 보낸 말에 또 답장이 오는 것도 괴롭다 내용이 없는 말은 어려워 안부를 나누는 말이 그 중 제일 잘 지내냐고 물으면 그냥 그렇다고 해? 사실 죽겠다고 해? 요즘 행복하다고 해? 그보다도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걸까? 잘 지낸다고 하면 안심하려나? 사실은 잘 못 지내길 바라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좀 겁이 나고 그래서 그런데 정확히 필요한 단어만 쓰면 안 될까 생각하기도 해. '언제 어디서 만나자' 'ㅇㅇ' 이거면 차고 넘치지 않나. 잘 지내냐고 묻는 건 얼굴을 마주한 뒤였으면 해. 그렇게 생각했다가도 역시 답장은 해야지 답장은 해야지

오늘은 용산 아이파크몰에 가야했는데 여의도 IFC몰에서 헤맸다. 아마 어디어디에 몇 시까지 가야하는 문제는 나한테 크게 중요하지 않은거지. 더 중요하고 아주 원대한 그런 지구의 묵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신이 팔린 거지. 인간 하나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인류 본질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나본데 안타깝게도 이미 답은 오래전에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와버렸다. 42.
아침엔 구청에 전화를 해야 했다. 출판사 등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둬야 했어. 엊그제 저녁엔 동네에서 당근 거래를 하기로 해놓고 집에 오는 길 버스에서 잠든 뒤 잊어버렸지 뭐야. 신한 계좌에 현금을 입금해야 했는데 그것도 잊고 며칠째 현금이 든 종이봉투를 가방에 넣어다니고 있어. 비누를 다 써서 새 비누를 뜯어놔야지 뜯어놔야지 일주일 넘게 화장실에서 중얼거리고 나오자마자 세상의 모든 비누에 대한 생각이 사라져버려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씻을 때 괴로워지는 이게

기껏 그려놓고 다시 보면 어색하고 낯설다. 다른 사람 그림을 보는 듯. 몇 시간을 끙끙 붙들고 있었으면서 한 획 한 획 직접 그어놓고 친구를 못 알아보는 사람처럼 무서워. 내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행동하는 것과 내가 만들어낸 것과 남이 본 내 그림이 전부 다르다. 서로 간신히 이어져있다. 녹슨 사슬처럼 보이는 젤리로 나는 사고하고 결정한다. 남들은 나를 어떻게 나로 알아볼까. 나는 내 그림도 나도 헛갈리는데.

깍두기 회원님의 글을 읽고 생일 당사자와 생일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어떤 태도여야 할까 고민해봤다. 생일이 별 것도 아닌데 요란하게 축하하며 행복하게 보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 살아가는데 정해진 의미는 없다. 의미는 만들어가는 거지. 그럼 생일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할까. 삶은 고통이다 자궁에서 세상으로 나온 순간의 첫 감각도 세상에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마지막 순간의 감각도 대부분 고통일 것이다. 잠시라도 굶으면 잠을 제 때 못 자면 원하는 바를 얻지 못 하면. 제 때 자고 좋은 것을 먹고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문 만큼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나가는 데서부터 좀 더 높은 차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까지 괴로움이 끊이지 않고 스스로 택한 죽음 역시 행복의 선택이 ..

며칠 만에 집에 오니 쿠쿠가 난리가 났다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내 얼굴에 연신 뽀뽀를 해댔다 우리의 1시간이 강아지에겐 5시간이란다 꼬박 300시간 나를 기다린 쿠쿠 세상에서 제일 정직한 사랑을 주는 쿠쿠 사랑해
1. 원시시대에 태어났다면 난 부족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근력이 부족해서 근거리 사냥 부적합. 시력도 떨어져서 궁수 부적합. 불 피우고 고기 굽다가 눈 매워서 울었을 테니까 요리도 부적합. 가죽을 뼈바늘로 꿰매고 기워서 입히는 건 잘 했을까. 다른 부족이랑 싸우지 말고 대화로 풀자고 말리다가 더 열받아서 제일 앞에서 창을 던지고 제일 먼저 죽었을까. 과일은 잘 따고 물은 잘 길어왔을까. 그래도 부족 사람들이랑 같이 먹고 마시고 잤겠지.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이 개인을 먹여 살려야 해서 나는 부적합한 것들을 전부 해내려고 생각만 하다 말다
이력서를 요즘 처음으로 써보고 있다. 알바 지원 이력서는 여러번 써봤지. 알바를 해야하지만 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마음 그대로 대충 썼는데 어쩐지 뽑히긴 잘 뽑혔다. 그 때는 사진도 째즈 안고 우쭐한 표정의 사진을 올렸는데 어쨌든 뽑히더라고 한번은 공덕역 근처 한식집 알바에 지원한 적이 있다. 용모단정한 여성을 뽑는다고 했다. 그 때는 또 문신이 없을 때여서 용모가 막 몹쓸 용모는 아니었지. 한식집이라더니 웬 부잣집 같은 주택 건물. 정원도 있고 정원사 할배도 있었다. 잔디 사이에 난 돌을 밟고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안에 있던 아저씨가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한동안 말이 없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그 사이 2층에서 나무계단을 타고 어떤 젊은 여자가 내려왔는데 치마도 짧고 화장도 진했다. ..
나를 아낀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유독 내게 존재를 증명하기를 요구해 막막한 나 나는 그냥 난데요 내가 나인 것만으로는 자격불충분이래. 그래 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거는 콧구멍이고 이건 중지고 이건 주먹. 광장 높은 곳에 선 내가 소리소리 나를 말하는데 다들 바삐 간다

1. 오늘 랩퍼 한 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시를 보느라 머리가 어질어질하던 참이었다. 그는 아는 언니의 친구의 동생이었다. 그러니까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어쩐지 아는 사람 같았지. 그래서 모르는 사람의 부고를 들었을 때만큼 냉정했지만 동시에 동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듯하기도 했다. 예전에 친하지 않지만 얼굴만 아는 동창의 부고를 들었을 때도 이랬지. 그보다는 등굣길에 발견한 차에 치인 시츄가 죽어가는 것을 봤을 때가 더 괴로웠다. 시츄는 영문도 모른채 피를 줄줄 흘렸다. 나는 영문을 알았지만 피는 멈출 수가 없어서 길가에 쓰러진 시츄를 좀 더 편한 곳에 누이고 도로 학교에 갔다. 시츄를 병원에 데려가는 것도 학교에 가지 않는 것도 무서웠거든. 교복에 피가 묻지 않게 비닐로 시츄를 감싸 옮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