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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클럽하우스에 가입했다. 여러 명이 동시에 말하면 헷갈리기도 하고 중간에 초대받아 들어간 방에서는 언제 인사를 해야할 지 몰라 좀 뻘쭘했어. 다들 초대에 초대를 받아 가입하다보니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먼저 가입한 사람들을 보고 또 아직 가입하지 않은 내 친구들을 보고 모두가 드러내면 멋지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속으로는 너와 나를 구분짓는 심리를 은근히 건드린 마케팅이 재밌고 웃기다고 느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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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악몽을 많이 꾸네 방금은 D형네 작업실에 놀러가 있던 참. 작업실은 오래된 쇼핑몰의 옥상에 있었다 그런데도 지하 같은 곳 작업실 밖에는 주차장이 있었는데 어둡고 더러운 주차장에는 불법으로 모여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렇게라도 서울에 집 하나 갖고 싶은 거지 형이 혀를 끌끌 찼다. 텐트와 부서진 자동차 속에 거미들처럼 와글와글 사람들이 살았다 형한테 속삭이듯 고백했다 나 사실 저 사람들 사는 곳이 궁금해서 들어가봤다고 그 말을 하자마자 그 사람들은 화가 났다 자신들의 사는 모습을 호기심에 구경하러 온 나에게 그래서 어둠에 가까운 곳에 서 있으면 그들 중 하나가 나를 낚아채려고 호시탐탐 노려댔다. 등 뒤에서 손을 뻗어 어둠 속으로 끌고 가려 했다. 마침 음악하고 영상으로 먹고 산다던 B형이 D형네 작업실..
답장 하지 않은 연락이 여럿 쌓여있다. 뭐라고 해야할지 몰라 읽지도 않았는데 답장할 말을 생각하는 것도 괴롭고 읽지 않는 것도 괴롭고 내가 보낸 말에 또 답장이 오는 것도 괴롭다 내용이 없는 말은 어려워 안부를 나누는 말이 그 중 제일 잘 지내냐고 물으면 그냥 그렇다고 해? 사실 죽겠다고 해? 요즘 행복하다고 해? 그보다도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걸까? 잘 지낸다고 하면 안심하려나? 사실은 잘 못 지내길 바라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좀 겁이 나고 그래서 그런데 정확히 필요한 단어만 쓰면 안 될까 생각하기도 해. '언제 어디서 만나자' 'ㅇㅇ' 이거면 차고 넘치지 않나. 잘 지내냐고 묻는 건 얼굴을 마주한 뒤였으면 해. 그렇게 생각했다가도 역시 답장은 해야지 답장은 해야지
오늘은 용산 아이파크몰에 가야했는데 여의도 IFC몰에서 헤맸다. 아마 어디어디에 몇 시까지 가야하는 문제는 나한테 크게 중요하지 않은거지. 더 중요하고 아주 원대한 그런 지구의 묵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신이 팔린 거지. 인간 하나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인류 본질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나본데 안타깝게도 이미 답은 오래전에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와버렸다. 42.
아침엔 구청에 전화를 해야 했다. 출판사 등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둬야 했어. 엊그제 저녁엔 동네에서 당근 거래를 하기로 해놓고 집에 오는 길 버스에서 잠든 뒤 잊어버렸지 뭐야. 신한 계좌에 현금을 입금해야 했는데 그것도 잊고 며칠째 현금이 든 종이봉투를 가방에 넣어다니고 있어. 비누를 다 써서 새 비누를 뜯어놔야지 뜯어놔야지 일주일 넘게 화장실에서 중얼거리고 나오자마자 세상의 모든 비누에 대한 생각이 사라져버려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씻을 때 괴로워지는 이게
기껏 그려놓고 다시 보면 어색하고 낯설다. 다른 사람 그림을 보는 듯. 몇 시간을 끙끙 붙들고 있었으면서 한 획 한 획 직접 그어놓고 친구를 못 알아보는 사람처럼 무서워. 내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행동하는 것과 내가 만들어낸 것과 남이 본 내 그림이 전부 다르다. 서로 간신히 이어져있다. 녹슨 사슬처럼 보이는 젤리로 나는 사고하고 결정한다. 남들은 나를 어떻게 나로 알아볼까. 나는 내 그림도 나도 헛갈리는데.
깍두기 회원님의 글을 읽고 생일 당사자와 생일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어떤 태도여야 할까 고민해봤다. 생일이 별 것도 아닌데 요란하게 축하하며 행복하게 보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 살아가는데 정해진 의미는 없다. 의미는 만들어가는 거지. 그럼 생일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할까. 삶은 고통이다 자궁에서 세상으로 나온 순간의 첫 감각도 세상에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마지막 순간의 감각도 대부분 고통일 것이다. 잠시라도 굶으면 잠을 제 때 못 자면 원하는 바를 얻지 못 하면. 제 때 자고 좋은 것을 먹고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문 만큼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나가는 데서부터 좀 더 높은 차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까지 괴로움이 끊이지 않고 스스로 택한 죽음 역시 행복의 선택이 ..
며칠 만에 집에 오니 쿠쿠가 난리가 났다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내 얼굴에 연신 뽀뽀를 해댔다 우리의 1시간이 강아지에겐 5시간이란다 꼬박 300시간 나를 기다린 쿠쿠 세상에서 제일 정직한 사랑을 주는 쿠쿠 사랑해
1. 원시시대에 태어났다면 난 부족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근력이 부족해서 근거리 사냥 부적합. 시력도 떨어져서 궁수 부적합. 불 피우고 고기 굽다가 눈 매워서 울었을 테니까 요리도 부적합. 가죽을 뼈바늘로 꿰매고 기워서 입히는 건 잘 했을까. 다른 부족이랑 싸우지 말고 대화로 풀자고 말리다가 더 열받아서 제일 앞에서 창을 던지고 제일 먼저 죽었을까. 과일은 잘 따고 물은 잘 길어왔을까. 그래도 부족 사람들이랑 같이 먹고 마시고 잤겠지.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이 개인을 먹여 살려야 해서 나는 부적합한 것들을 전부 해내려고 생각만 하다 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