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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3/01 (5)
성북동 글방 희영수
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떡볶이집이 들어온다는 소식은 나를 고무시켰다. 이는 마카롱이나 도넛보다는 붕어빵, 호떡, 식혜를 사랑하는 선거철 정치인 입맛을 가진 내게 그야말로 연봉 인상에 버금가는 기쁜 소식이었다. 이런 소식을 직장 동료에게 나누지 않는다면 정말 협동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는 소릴 들어 마땅하다. 다급히 낭보를 전하자 동료는 역시나 감격하며 기뻐했다. 이와 함께 매일 같이 떡볶이집 앞을 지나다니며 이제나저제나 하고 영업 시작을 기다렸다. 그러나 입구 안쪽에는 개업 축하 화분도 여러 개 쌓였건만 도대체 영업은 언제부터 시작인지 도무지 기약이 없었다. 이렇게 간절히 떡볶이를 기다린 적이 있던가. 어느 날은 이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아직도 영업을 시작할 기미가 없자 울컥 화가 나 어둡게 닫힌 문을 ..
내게 남아있는 동기는 살인 동기뿐. 초-중-고 학교 생활을 거치며 여태껏 연을 이어가는 사람을 꼽자면 한 손으로도 충분하다. 그와 반대로 대학교 동기들과는 졸업 후에도 서로의 안부를 꽤 알고 지낸다. 특수한 진로를 선택할 만큼 비교적 비슷한 시야를 가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지 대학생 때부터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인스타그램이 널리 쓰이게 된 덕분일 수도 있다. 그것 이상으로 공들여 주변 사람들 챙기기는 귀찮다. 따로 연락할 필요 없이 좋아요 누르기로 안부를 체크하는 정도가 좋다. 단체 채팅방은 답답하다. 메신저 답변은 겁난다. 꼭 연락을 해야 한다면 언제 어디서 만나자는 구체적인 약속을 잡을 때만 하고 싶다. 게다가 무례하게 구는 사람은 오랜 인연이라도 크게 화를 내고 연락처를 지워버린 탓에 점점 주변이..
미대 입시생 시절엔 다들 한 번씩 기이한 행동을 하곤 했다. 미술대학의 좁은 문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한 입시의 압박에 돌아버린 것인지, 미술학원에서 30분 간의 쉬는 시간 동안 화장실에 다녀온 다음 끼니를 해결하고 간식까지 구해와야 하는 미션을 매일같이 수행하는 비인간적인 스케줄에 지쳐 돌아버린 것인지 혹은 한국의 수험생이라면 문/이과를 차치하고 누구나 응당 그래야 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나의 경우 수능과 실기의 부담이 끔찍하게 클 때 놀아야 그 재미가 배가 된다는 독창적인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동분서주 놀러 다니며 부모 속을 뒤집어 놓곤 했다.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닌 일도 그 당시엔 더욱 짜릿하고 즐거웠으므로 그 가설은 나름의 근거를 획득한 셈이었다. 미술학원 시절의 친구 역시 평생 두 번 다시 ..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풋풋한 커플에게는 정확히 언제를 1일로 정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 외에도 중대한 사항이 또 남아있다. 바로 서로를 부르는 애칭을 합의하는 것이다. 여기서 합의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는, 언젠가 나를 느닷없이 공주라 부르던 상대로부터 급격히 애정이 떠나가는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잘 잤나요, 공주님- 에 대단한 악의는 없었지만 그가 머릿속으로 어느 먼 나라에서 왕자와 공주 놀이를 하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 여기 이 현실에 발 붙이고 선 나와는 전혀 다른 상대를 만나고 있음이 틀림없으므로 더 이상 교류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 말이 그렇게 소름 끼쳤던 이유는, 이전의 연애 상대가 그런 류의 단어로 불리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그는 다음 상대인 나 ..
받아 쓰지 않은 말은 주워 담지 않은 곡식 낱알. 부족한 여백에 미처 쓰지 못한 정보를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는 모래처럼 아쉬워했다. 내게 공부란 쓰는 것. 들깨 같은 글씨는 거대한 수료증의 미세한 조각들. 모아놓고 보면 무수한 그라데이션이지만 등지는 순간 재가 되어 희게 날아간다. PILOT사에서 1994년에 출시한 젤잉크펜 하이테크C(HI-TEC-C)는 청소년 시절 나의 토템*이었다. 연약하지만 우아한 파이프형 팁을 가진 이 펜은 바닥에 한 번이라도 떨어트리는 순간 생명이 끝나버리지만, 귀하게 다루기만 하면 여섯 번째 손가락처럼 나와 촘촘하게 연결되어 세밀한 움직임까지 구현할 수 있는 인체 공학적 기계와도 같았다. 잉크를 남김없이 쓴 검은색 0.3mm 펜만 모아도 작은 박스 하나를 채울 수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