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0109 월 / 불멸의 독당근 애호 / 긴개 본문

2021-2023 긴개

0109 월 / 불멸의 독당근 애호 / 긴개

긴개 2023. 1. 10. 01:01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풋풋한 커플에게는 정확히 언제를 1일로 정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 외에도 중대한 사항이 또 남아있다. 바로 서로를 부르는 애칭을 합의하는 것이다. 여기서 합의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는, 언젠가 나를 느닷없이 공주라 부르던 상대로부터 급격히 애정이 떠나가는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잘 잤나요, 공주님- 에 대단한 악의는 없었지만 그가 머릿속으로 어느 먼 나라에서 왕자와 공주 놀이를 하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 여기 이 현실에 발 붙이고 선 나와는 전혀 다른 상대를 만나고 있음이 틀림없으므로 더 이상 교류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 말이 그렇게 소름 끼쳤던 이유는, 이전의 연애 상대가 그런 류의 단어로 불리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그는 다음 상대인 나 역시 으레 그런 식으로 불러도 괜찮으리라 지레짐작하고 섣불리 입을 뗀 것이 아닌가, 하는 나의 지레짐작 때문도 있었다. 그러니 혹시나 연애를 새로 시작할 낌새가 보이는, 이제 막 시작한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충분한 합의를 거쳐 상대가 용납할 수 있는 선에서 애칭을 지정하길 바란다. 왜, 남자친구한테 에르메스라고 불러달라고 했다가 거절 당해 속상하다던 어떤 여자의 이야기도 온라인 상에서 심심치 않게 떠돌지 않던가. 

 

 나와 애인은 애칭을 제때 합의하지 못하는 바람에 만난 지 2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름 뒤에 ‘씨’를 붙여 서로를 부르게 되었다. 상호 간에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서로 서운한 일로 볼멘소리가 나올 때에도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고 대화하게 되므로 가까운 사이에서 갖추면 좋은 태도이다. 그러나 정말 다급한 일이 있을 때, 가령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10초 내로 화장실에 가야 할 때와 같이 응급한 상황에서는 존댓말로 대화하기가 어렵다. 이때만큼은 한 단어로만 대화를 나누어도 너그러이 이해하고 돕는 것이 애인 된 자의 도리이리라. 여튼간에 우리도 애칭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논의하던 때가 있기는 했다. 하늘 아래 온전히 새로운 창작은 없다고, 우리 역시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애칭의 목록을 훑어보긴 했다. 자기, 자기는 얼어 죽을. 여보,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애기, 응애하고 대답해야 할 것 같고. 도대체 이름 대신 서로를 따스하게 지칭하는 말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 날 탄생화에 대해 이야기하던 우리는 유레카, 탄생화로 서로를 불러주면 어떨까- 하고 서로의 생일과 맺어진 꽃을 검색해 보았다. 어떤 연유로 특정 날짜에 특정 꽃이 맺어진 것인지 유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이 목록을 살펴보니 탄생화라고 해서 전부 꽃만 모아놓은 것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생일에는 딸기, 애인의 생일에는 독당근이 맺어져 있었다. 인간을 딸기라고 부르는 것은 다소 낯간지러운, 하지만 애정이 넘치는 애칭으로도 여길 수 있겠지만 소크라테스를 죽인 독약의 원료 독당근으로 상대를 부르는 것은 극적으로 그를 모욕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로를 탄생화의 이름으로 부르기를 포기한 뒤로는 둘 사이에 기념비적인 에피소드가 생겼을 때 관련 단어가 별명이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애인은 코를 후비다가 걸려 한동안 코팡맨이라고 불렸다.

 

 딸기와 독당근 듀오는 깜찍한 애칭 없이도 잔잔하고 옹골차게, 때때로 수면 아래 오리의 물갈퀴처럼 격동적인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고 둘만의 세상을 한 겹 덧그려가는 이 로맨틱한 관계는 현생 침팬지와 인류가 약 700만 년 전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진화할 때부터 짝 결속이라는 형태로 이어져 온 인류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우리 둘은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그 자신도 충분히 알 수 없게 지닌 독창적인 존재이면서도 결국은 700만 년 동안 살아남은 유전자가 스쳐가는 찰나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의 차이점에 매력을 느끼고 유사성에 안심하는 우리의 관계가 까마득한 옛날부터 철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 상의 꼭두각시놀음일 뿐이라는 것은 어딘가 체념적인 그러나 신비한 운명의 종속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만났어도 사랑했을 사이이다. 서로의 외관과 성질에게 끌리도록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습 그대로 다음 생에서 만날 수 있다면 그때도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유전자부터 설계되어 있었다. 기억을 잃고 다시 만난다 해도 여전히 그럴 것이다. 내가 사랑할 만한 것들을 전부 타고난 상대니까. 알 수 없는 미래의 이유로 헤어지더라도 오랜 뒤에 우리를 다시 떠올리면 여전히 행복할 것이다. 짝 결속의 가장 이상적인 상대를 실제로 만나서 서로를 알아보고 가까워진 뒤 내밀한 마음과 경험을 나누는, 불멸의 유전자의 음모에 의해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 인간 개인의 삶의 가장 찬란한 한 때라는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