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을 걷고 오늘의 하늘을 처음 본 순간 생각했다. 이런 날 바깥에 안 나가는 사람은 바보라고.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고 간단히 씻은 뒤 집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집집마다 묵은 이불을 꺼내 빨고 바깥에 말리도록 마을방송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멋진 하늘이었다. 햇살 아래를 걸으면 따스하고 그늘 속을 걸으면 상쾌한 지금은 26°C. 주민 센터 앞 습도계는 34%를 알린다. 일 년 중 가장 완벽한 순간의 정확한 온도와 습도의 수치를 알아낸 것이 못내 뿌듯하다.
갓 만든 유리처럼 투명한 하늘 아래에서라면 어디든 걸어서 닿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한동안 무섭게 내린 비에도 숲은 선퇴*를 구석구석에 남겨놓았다. 나뭇잎 사이를 헤치고 햇살이 드디어 말간 땅에 닿는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 앓고 난 뒤 오랜만에 하는 산책이었다. 잠깐 격리된 사이 계절이 훌쩍 변해 있었다. 마치 연극의 2막을 보다 졸았는데 깨어보니 3막이 시작된 것처럼. 이렇게 화창한 날엔 아무리 슬픈 일이 생기더라도 울기 힘들 것이다. 이 강력한햇살과 바람을 맞고도 남아있는 슬픔은 어떤 것일까 상상해보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어지간한 괴로움은 전부 뽀송하게 살균될 것 같은 8월 말의 일요일이다.
내친김에 오리를 보러 가까운 하천에 갔다. 빠르게 흐르는 물살 위로 햇빛이 잘게 반짝인다. 그 위를 스친 바람은 다른 곳의 바람보다 조금 더 시원하다. 오리는 지난번 보았던 다리 아래에서 흰 엉덩이를 부리로 바쁘게 헤집고 있었다. 부리 끝에 묻어 나온 속깃털이 물 위에 떨어지더니 둥둥 흘러 오리에게서 멀어졌다. 초록색 풀들이 마구 자라난 작은 하천에 지나치게 하얀 오리가 있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화면 속의 그 모습은 눈에 담기는 만큼 찬란하지는 않았다.
일주일 전만 해도 신발이 마르지 않게 비가 내리고, 조금만 걸어도 그날 입은 옷을 전부 빨아야 할 만큼 땀이 흘렀다. 해야 할 일도 빨래처럼 불어나기만 했다. 고양이 밥을 직장 건물에 갖다 두고 오물은 절대 치우지 않는 옆집 할머니, 쉬는 날 없이 울려대는 업무 전화. 폭우로 물이 샌 건물을 수습하느라 지하실 짐을 전부 빼고 청소하는 와중에도 맡고 있던 프로젝트의 디데이는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마음 급한데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점점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기가 어렵다. 스트레스를 스스로 소화시킬 시간이 없다. 도저히 이렇게는 어렵다, 싫다 외치던 때 육신마저 전염병에 덜컥 덜미를 잡힌 것이다.
열이 올라 추웠다가 덥고, 어지럽고, 온몸의 근육이 찌릿찌릿 저렸다. 죽과 약을 먹고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다시 일어나 죽과 약 먹기를 반복했다. 나흘째 병세가 조금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졸리면 잤다가 심심하면 유튜브를 봤다. 답답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아프다고 서럽지도 않았다. 많은 일에서 순식간에 벗어난 것이 홀가분했다. 할 일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의 자유! 급하게 돌아가는 업무에서 나만 쏙 빠져있었다. 몸과 마음을 아무렇게 축 늘어놓고 멋대로 있었다. 먹고 자기만 했는데 살도 좀 빠졌다. 추스르고 나와보니 글쎄 이렇게 멋진 날이 된 것이다.
이 햇살과 바람을 두고 성실한 월화수목금으로 복귀할 생각을 하니 진저리가 난다. 일상에서 한번 튕겨져 나와 숨을 돌린 것 뿐인데 이전의 내가 희미하다. 이전의 나는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다 해왔는지 존경스러울 정도다. 다시 그렇게 일하며 사는 방식은 인생의 언제까지 유효할까. 적당히 진저리치며 싫다고 징징대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직 예전같지 않은 목에서 피가 날 정도로 고래고래 악을 써대고 몸부림을 치고 싶다. 그 정도로 싫다고 소리친 뒤에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도 같다.
* 매미 껍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