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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5/03 (3)
성북동 글방 희영수
죽기 전에 최고의 팬티를 찾을 수 있을까. 좋은 팬티를 찾는 건 좋은 애인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두어 달째 여러 속옷 브랜드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한 달 뒤 수십 명과 도보 순례를 갈 예정인데 속옷 서랍엔 해진 팬티만 그득했기 때문이다. 순례 일수만큼의 팬티를 챙기는 대신 가방 무게를 줄일 수 있게 몇 장의 팬티만 매일밤 손빨래해 돌려 입을 계획이었다. 잠들기 전 머리맡에 널어놓은 팬티가 새것은 아니더라도 멀끔해야 하잖아. 그런데 순례를 앞두고 건조대에서 팬티를 개다 보니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부분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구멍, 터진 고무줄, 뜯어진 심리스 접착라인 등 자세히 볼수록 가관이었다. 어쩐지 너덜너덜한 팬티는 남자보다 여자한테 보여주기가 더 싫다. 같은 방에 묵을 사람들에게..
의외로, 나도 미래를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낮에는 벤치에서 졸다가 저녁엔 화장실 한 칸에서 잠이 드는 노인의 팔뚝에 익숙한 문신이 새겨져 있는 장면 같은 걸 떠올리면 잠이 번쩍 달아난다. 노년의 빈곤이 두렵다. 망가지는 몸만으로도 괴로울 텐데, 그 몸이기에 가속될 빈곤은 더욱 견디기 힘들 것이다. 이십 대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단지 젊다는 이유로, 멍청하고 무례하던 나를 써준 고용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혹은 젊다는 이유로 밥이나 술을 턱턱 사는 인생 선배들도 있었다. 젊음은 보기에도 좋고, 어울리기에도 좋다. 심지어 체취도 좋다. 수렵 사회의 우두머리는 청년이고, 농촌 사회의 우두머리는 노인이었다. 사냥은 힘으로 하고, 농사는 지혜로 지었다. 사회 구조의 변화로 노인의 지혜가 쓸모를 잃은 ..
죽지 말지. 세상에 널리 이로운 사람이었는데. 그럼 해로운 사람은 죽으란 말인가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근데 얼마나 해로운 사람인데? 죽지 말지. 잘생긴 사람이었는데. 그럼 못생긴 사람은 당장 죽으란 말인가요? 말이 그렇게 되나. 죽지 말지. 현명한 사람이었는데. 그럼 멍청한 사람은 죽어도 된단 말인가요? 얼마나 멍청한 사람? 죽을 사람은 그래도 되는 사람. 나 곧 죽네. 영원히 살아남았어야 할 너 대신 해롭고 멍청하고 못생긴 내가 마땅히. 신전에 나 바쳐 네 빛이 영원의 시간을 달린대. 네가 우주 끝까지 뻗어가는 바람에 지금 여기에 없게 되었대. 널 섞은 흙을 유리병에 담았는데 시계가 깨트렸어. 사이가 안 좋았던 모양이지. 너와 시곗바늘 사이에 모종의 수군거림이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거지. 다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