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0801 월 / 자극적인 세상 함께 사는 우리 개와 나 / 긴개 본문

2021-2023 긴개

0801 월 / 자극적인 세상 함께 사는 우리 개와 나 / 긴개

긴개 2022. 8. 3. 17:20

        

 

 

 

 우리 개는 길에서 함부로 눕지 않는다. 집이라면 어디서나 털썩 웅크려 따뜻한 몸을 돌돌 말고 있지만 밖에서는 어림도 없다. 오래 걸어 피곤할 때는 잠깐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다소곳이 앉지만 거기까지다. 집에서처럼 무방비로 누워 힘을 빼고 있는 모습은 도통 보기 쉽지 않다. 이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개는 집에서도 부드러운 천이 깔린 조용한 침실에 가서야 천천히 네 다리를 곧게 편다. 

 

 

 낯선 곳에서 쉽게 움찔움찔 놀라는 이 개 때문에 커피를 다 마시기 전에 카페를 나오게 될 수도 있다. 옆 테이블의 개는 길에서 태어나고 자란 듯 아무 바닥에나 넓게 누워 눈을 감고 있다. 반면 우리 개는 묵직한 컵이 테이블 위에 닿는 소리,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며 의자를 끄는 소리, 문이 갑자기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 절대 익숙해지지 못한다. 태어나 처음 듣는 소리인 듯 매번 깜짝 놀라고 벌떡 몸을 세운다. 

 

 

 나는 개의 귀에다 대고 마음을 비우고 몸에서 힘을 빼라고 말하지만 사실 얼토당토않은 요구임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란 항상 문을 열고 문을 닫는 족속이잖아. 그러니 문이 닫힐 때마다 전부 놀랄 필요는 없어. 하지만 나의 개는 고집스럽게 몸을 세우고 다시 화들짝 놀란다. 야속한 세상은 이 개를 놀라게 하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우리 개가 유난스러운 듯 말했지만 사실 나도 닮은 구석이 있다. 전철 좌석이 천으로 만들어져 있다면 앉지 않는다. 종일 몸뚱아리를 받쳐낸 발바닥이 찌리리 울어도 말이다. 길가의 벤치도 그렇다. 편안한 자세로 보이도록 신경 썼지만, 무엇이 묻었을 지 모를 벤치에 넓은 면적이 닿는 것은 꺼림칙해. 푸른 잔디밭과 흰 모래사장 위라도 역시 털썩 앉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친구들과 함께 뒷산 정자의 마루에 앉기 전에는 몰래 속으로 용기를 다져야 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팔다리를 편히 뻗는 곳도 침실 말고는 드물지. 우리 개나 나나 바깥 세상의 자극에 좀처럼 무뎌질 생각이 없는 거야. 세상이 자극 그 자체인데, 자극을 인식해 재구성한 것이 저마다의 세상인데, 그 자극을 어디까지 수용하고 어디서부터 모른 체 할 것인지를 정하지 못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