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긴개만화
- 동시대의친구나무새롭게사귀기
- 희영수
- 사자성어
- 단편소설
- bossa nova
- 에세이
- 성북동글방희영수
- 에로잉
- 긴개
- Brazilian
- 에코샵홀씨
- 2024길위의인문학
- 성북동글방
- 전시
- post-treeproject
- 서평
- 영화
- (null)
- 라현진
- 드로잉
- 성북동희영수
- latin jazz
- soul
- MPB
- 성북동
- 긴개의사자성어
- 버추얼리얼리티
- 글방
- 길위의인문학
- Today
- Total
목록2023/05 (5)
성북동 글방 희영수
나는 잘 지낸다. 우리 집 첫째 호두가 간암에 걸렸지만 밥도 맛있게 먹고 잠도 푹 자고 웃기도 잘 웃는다. 마음 따뜻한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위로와 선물이 무색할 정도다. 이렇게 잘 지내는 모습은 내보이기가 민망하다. 자기 고양이가 아픈데 행복하게 지내는 주인이라니 정나미가 뚝 떨어져 멸시를 받을지도 모른다. 공감과 동정을 느끼는 뇌의 신경망이 전부 코털가위로 싹둑 잘리기라도 한 걸까. 나조차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누구일까. 호두가 소중하고 고맙고 어쩌고 줄기차게 떠들어댄 사람이 나와 동일인물이 맞는가. 하늘은 무심하기도 하지. 호두 주인은 참 무심하기도 하지. 반려동물이 아플 때 재활이나 한방 치료 등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기초적인 검사와 진료만으로 인한 병원비가 얼마나 들 것인지 계..
고양이도 간암에 걸린다. 동물의료센터 수의사의 소견에 따르면 우리 집 첫째 호두의 간에서 발견된 이 종괴는 악성일 가능성이 높다. 외부기관에 정밀검사를 맡기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항암 치료의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오늘 오전 또다시 의료센터에 다녀왔다. 이미 며칠 전 이곳에서 이박 삼일 간 입원을 했던 호두는 센터에 들어서자마자 버둥거렸다. 호두는 무엇으로 병원에 왔다는 것을 감지할까. 강아지가 겁에 질려 짖는 소리, 예민해진 고양이가 사납게 우는 소리, 소독약과 낯선 동물들의 냄새, 치료실의 강한 불빛, 보호자들의 걱정 가득한 말소리. 그 무엇도 반가운 자극은 아니리라.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호두는 품 속으로 조용히 머리를 파고들었다. 나는 그저 머리를 몇 번 쓰다듬으며 이름을 불러줄 ..
친구가 키우던 개의 죽음을 말할 때마다 내가 눈물을 참지 못하는 바람에 이야기는 여러 번 중단되곤 했다. 동물병원에서 장례식을 치러준 뒤 유골을 어느 나무 아래에 묻었다는 것까진 잘 들었지만 그 이상은 기억나지 않는다. 당연히 슬프다는 이야기로 끝났겠지. 하지만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타다닥 다가오는 발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배변 봉투와 리드줄은 여전히 현관에 걸려있는데 함께 밖에 나갈 개가 없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가족을 잃은 친구의 기분이 어떠했는지 가능한 성심성의껏 귀담아 들어야 마땅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러고 싶지 않기도 했고. 남의 개가 죽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반려동물이 없는 사람이라면 남의 일로 생각하기 때..
이틀 전 생일이었다. 그러니까 어린이날 전날인 5월 4일 말이다. 어렸을 땐 어린이날과 생일 선물을 쿨하게 퉁쳐서 하나로 주는 부모님 덕분에 생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생은 생일과 어린이날 받는 선물이 다른데, 나는 왜 하나로 끝인가. 그러나 어차피 부모님께 선물을 받아도 썩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게다가 선물을 보고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간 도리어 생일날 혼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엔 생일 선물의 개수나 여부에 연연하지 않으려 애쓰게 되었다. 차라리 받지 않는 것이 혼나기 싫어 억지로 기뻐하는 표정을 짓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다. 우리 가족은 상대방 마음에 드는 선물을 고르는 것도, 선물을 받고 감사를 표하는 것도 서툴렀다. 엄마와 아빠 역시 선물을 받으면 여기저기 싸구려를 받..
애인과 헤어질 것 같던 순간도 지금처럼 불안하지는 않았다. 울분이 폐를 쥐어짜던 순간에도 한숨 정도는 시원하게 내쉴 수 있었다. 또 어떤 비극은 비웃음만으로도 물리칠 수 있었다. 허나 지금은 다르다. 입꼬리 양쪽에 무거운 추가 꿰인 듯 도무지 웃을 수 없다. 어깨 근육을 수축시킨 긴장이 가시질 않는다. 참다못해 터져 나오는 숨마저 스타카토로 조금씩 끊어 쉬었다. 삶의 ⅓ 분량이 통째로 삭제될 위기 속에서 나는 의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 머리통을 양 손바닥으로 세게 내려칠 뿐이었다. 현대인의 자산 범위는 90년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게 큰 폭으로 확장되었다. 개인용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자신의 신체와 재화 같은 물질적 자산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의 기록과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적 데이터까지도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