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도 간암에 걸린다. 동물의료센터 수의사의 소견에 따르면 우리 집 첫째 호두의 간에서 발견된 이 종괴는 악성일 가능성이 높다. 외부기관에 정밀검사를 맡기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항암 치료의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오늘 오전 또다시 의료센터에 다녀왔다. 이미 며칠 전 이곳에서 이박 삼일 간 입원을 했던 호두는 센터에 들어서자마자 버둥거렸다. 호두는 무엇으로 병원에 왔다는 것을 감지할까. 강아지가 겁에 질려 짖는 소리, 예민해진 고양이가 사납게 우는 소리, 소독약과 낯선 동물들의 냄새, 치료실의 강한 불빛, 보호자들의 걱정 가득한 말소리. 그 무엇도 반가운 자극은 아니리라.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호두는 품 속으로 조용히 머리를 파고들었다. 나는 그저 머리를 몇 번 쓰다듬으며 이름을 불러줄 뿐이었다. 불현듯 호두가 가벼워졌다고 느끼고 가까운 동물병원에 간 때가 벌써 닷새 전이다. 따뜻한 날, 휴일을 맞아 호두를 안고 털레털레 걸어 동네병원에 찾아갔다. 키가 큰 수의사는 내 말을 듣더니 굳은 표정으로 나이 든 고양이가 살이 빠지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라고 했다. 이것저것 검사를 좀 해봐야겠는데요. 호두가 수의사에게 안겨 어딘가로 들어간 동안 나는 진찰실을 나와 병원 의자에 앉았다. 수의사를 따라갔던 간호사가 다가와 찌푸린 얼굴로 똑같은 말을 했다. 진짜 위험한 거예요. 호두 지금 아주 나쁜 상태예요. 그런 위협에도 내가 무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는 몇 번이나 강조해서 말했다. 호두 예후가 좋지 않아요. 그가 원하는 대로 울상이라도 지어야 날카로운 말들이 멈출 것 같았지만 얼굴 근육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가슴이 턱 막혔다. 매서운 소리가 아주 멀리에서 웅얼거렸다. 다시 진찰실에 들어가 보니 수의사의 표정은 더욱 무거워져 있었다. 엑스레이와 초음파 등 촬영을 해보니 간 수치가 높고 황달 수치도 높고 염증 수치도 높고 뭐 하여튼 모든 지표가 위험을 가리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호두가 많이 굶은 상태인 것 같다고 했다. 어, 아니 어젯밤에도 사료를 까드득 까드득 먹었는데요…. 그런데 엑스레이 촬영 결과를 보면 여기 장이 많이 비어있는 것이 보이죠? 밥을 잘 못 먹은 상태인 거예요. 나는 말을 더듬다 그만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요즘 먹는 양은 줄어든 것 같았다. 게다가 여기 간을 보시면 커다란 종괴가 있어요. 어떤 종류의 종괴인지는 몰라도 호두 정도의 노묘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까. 우선 그 말들을 휴대전화로 하나하나 받아 적었다. 옆에서 메모를 들여다보던 간호사가 갑자기 손가락을 뻗어 화면을 슥슥 넘기고 이 단어는 틀렸으니까 바꾸라고 했다. 놀랐지만 대꾸할 힘도 없어 내버려 두었다. 이 간호사는 나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매년 호두의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끔찍한 보호자, 이상 상태를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무식한 보호자니까. 그 어떤 무례한 행동을 당해도 싼 보호자니까. 나는 호두의 진단 내용보다 이 간호사에게 당한 질책에 더욱 동요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기적인 보호자란 것은 옳은 판단이지. 결국 호두보다 나의 평판에 신경 쓴 셈이니까. 수의사는 호두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전문적인 동물의료센터에 검사 결과를 보내놓을 테니 거기로 가보라고 했다. 지도를 살펴보니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나는 호두를 안아 들고 터벅터벅 걸었다. 하늘이 파랗고 햇빛이 강렬했다. 병원에서 나와보니 호두가 이전보다 더욱 가벼운 것 같았다. 왜 몰랐을까. 호두는 품에 안긴 채 햇볕을 받으며 여기저기 고개를 돌려 킁킁거렸다. 버스를 탈까 하다가 그냥 걷기로 했다. 걷다 보니 겨드랑이와 등에서 땀이 축축하게 배어 나왔다. 멍하니 걷다가 수의사가 일러준 동물의료센터에 도착했다. 과연 규모가 훨씬 컸다. 지하부터 이 층까지 전부 병원이었고 일 층 면적만 해도 60평은 더 넘어 보였다. 실내 흰 벽에 설치된 LED 전광판은 수의사들의 이력, 반려동물 건강관리 팁, 진찰 대기 중인 동물과 보호자의 이름과 면담 시간 등을 쉴 새 없이 내보내고 있었다. 전광판이 안내하는 이 센터의 수의사는 대략 서른 명 정도로 저마다 전문 분야도 달랐다. 안내데스크 직원도 세 명이나 있었다. 교대하는 인원까지 생각하면 두 배는 넘겠지. 그들의 친절함은 종전의 동네병원과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이곳은 그야말로 반려동물계의 대학병원이었다. 그 동네병원도 꽤 규모가 큰 편이었는데. 안내데스크에 호두의 방문을 알렸더니 미리 동네병원의 전화를 받은 직원이 금세 호두를 받아 진찰실로 향했다. 홀로 남은 나는 대리석으로 된 의자에 앉았다. 과연 여기서는 진료비가 얼마나 나올까. 동네병원에서 엑스레이다 초음파다 뭐다 해서 검진비로 삼십삼만 원을 결제하고 온 참이었다. 오십 분쯤 기다린 후 보호자 호출을 받고 고양이 진찰실로 향했다. 키가 작고 얼굴이 뽀얀 이 수의사는 역시 굳은 표정으로 그러나 아주 친절한 태도로 검진 결과를 설명했다. 호두의 나이가 있어 더욱 그렇겠지만 현재 결과가 대체로 좋지 않고 초음파 검사 상의 이 종괴가 양성인지 악성인지, 복막염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해봐야 해요. 지금 탈수가 심한 악액질 상태이니 수액을 맞으며 입원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수의사가 그렇다고 하니 나도 알겠다고 했다. 열심히 받아 적었지만 설명을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다. 이게 그러니까 결국 호두가 오래 못 산다는 이야기인 거잖아. 그때까지만 해도 얼떨떨할 뿐이었다. 얘가 왜 살이 좀 빠졌을까 이상하다 하고 병원에 왔더니 암일 가능성도 있고 복막염일 가능성도 있다며 입원을 시키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럼 오늘 호두는 여기서 하룻밤 자는 걸까. 혼자 낯선 곳에서 무서울 텐데. 호두가 입원한 모습을 보고 가란 말에 수의테크니션을 따라 치료 구역으로 들어갔다. 병원 대기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치료 구역은 테크니션과 수의사가 바글바글하고 온갖 기계로 가득했다. 중환자실의 벽을 둘러싼 입원장에는 붕대를 감거나 넥카라를 한 강아지들이 한 마리씩 들어있었다. 호두는 왼쪽 벽의 맨 왼쪽 아래 칸에 있었다. 좁은 입원장 바닥에 축 늘어져있던 호두가 나를 발견하고는 부목을 대고 수액 바늘을 꽂은 뒷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비로소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