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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11 (5)
성북동 글방 희영수
겪어본 적 없는 미래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내 앞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이 기시감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불완전한 기억들이 일시적으로 뒤섞여 마치 언젠가의 기분인 듯 위장한다. 나는 현재로부터 어긋난 병뚜껑이 되어 틈새로 물을 모두 흘려버린다. 모두가 침착하게 현재와 융화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도무지 타인의 좌표는 추측하기 어렵다. 튼튼한 동아줄은 지금 이 순간에 찰싹 달라붙어있고, 속이 썩은 동아줄은 카우보이의 손 끝에서 날아 얼간이들을 쏙쏙 끌어낸다. 개척지와 개척지 사이의 황폐한 사막을 구르는 뼈다귀가 바로 내 유골이다. 아주 징그러운 사진을 보았다. 보통은 그런 일이 없다. ‘혐오주의’ 같은 경고가 달린 게시물은 절대 클릭하지 않는 편이거든. 그러나 이번엔 손가락으로 화면을 쓱쓱 쓸어내리다..
쓸 이야기가 없다. 몰아치는 일감을 겨우겨우 쳐내느라 온통 모니터 앞에 붙들려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목요일에는 새를 보러 서울숲에 가긴 했다. 소중한 캠코더 캠브릿지와 조류 도감, 쌍안경을 챙겨 뚝섬역에서 내렸다. 셔츠에 니트 조끼, 재킷 차림으로 새를 보러 간다기엔 꽤 멋을 부린 모양새였다. 그렇지만 새를 사랑한 남자 존 제임스 오듀본 역시 셔츠에 재킷 차림을 하고 있는 초상화를 남겼거든. 내 지론이지만 새 애호가들의 드레스 코드는 클래식해야 한다. 점잖고 근사한, 묵직한 멋을 풍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쌍안경을 들고 어딘가를 급히 살펴보는 모습이 수상해 보이고 만다. 멋 이전의 실용성의 문제로, 멀끔한 의복 차림은 쌍안경을 들고도 주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 부드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게다..
캠코더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양손에 핸드폰과 캠코더를 놓고 저울질해보니 보호케이스를 끼운 아이폰 XR이 더 무거운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한 손으로 쥐기도 편하다. 엄지로 녹화 버튼을 누르고 검지로 사진 촬영을 하거나 줌을 당길 수 있다. 손바닥으로 받치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감아쥔다. 투박한 기본 스트랩 덕에 놓치지 않고 손에 걸 수 있다. LCD 패널을 다각도로 회전할 수 있어 낮은 각도로 찍을 때도 장면을 확인하기 편하다. 핸드폰으로 촬영할 때는 손가락이 고생 많았지. 이제 고생 끝, 촬영 시작이다. 출근길에 산을 넘다가 맞닥뜨린 새를 미처 찍지 못하고 날려버린 순간이 많았다. 처음 보는 새가 나타났을 때 쌍안경 초점을 맞추고 핸드폰 카메라를 갖다 대 촬영하는 어설픈 디지스코핑*을 하다 보면 새는 ..
흰 국화 한 다발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생기가 넘친다. 처음엔 봉오리였던 것들이 꽉 쥐고 있던 여러 겹의 잎을 서서히 늘어놓으며 오히려 더 만발하기도 했다. 국화는 일종의 선전물이었다. 거기에서 좋은 향기가 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태어난 꽃이라면 필히 진다. 그것은 모두가 합의하지 않아도 예정되었던 일이다. 그러나 누구도 동의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지고 말았다. 도대체 여기서 뭘 깨우치고 반성하고 미래를 도모해야 하는지 그냥 다 때려치우고 없던 일로 해버리면 나는 희대의 영웅이 될 것이다. 간절한 사람은 영웅이 될 수 없고, 얼떨결에 영웅을 떠맡은 사람들은 괴로워 잠을 설친다. 분향소엔 두 번 갔다. 그중 하나엔 기자들이 목 좋은 곳에 줄 지어 서 있었다. 조문객들이 안내에 따라 우르르 이동하고 목례를 ..
하다못해 떨어지는 낙엽도 아쉬운 법인데. 누군가 관련 기사에 이런 댓글을 남겼다. 하루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서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고. 곧장 그 골목으로 뛰어가 모여있는 사람들을 전부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다고. 그랬다면 정말 모든 일이 쉽게 해결되었을 텐데. 우리는 그 무엇도 되돌릴 수 없는 현실에 남겨져 있다. 찬란하게 발전했다던 과학 기술은 좁은 뒷골목을 비껴갔고 카메라들만이 광기 어린 눈빛을 번뜩였다. 동시에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던 사람들과 자신의 옷을 벗어 처음 본 이에게 입히고 간 사람도 있다. 우리는 이토록 다양하고 넓은 범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나는 할로윈 파티 예찬론자였다. 초중고 대학입시를 거친 뒤에도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출산 준비로 쉴 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