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1128 월 / 이러다가 집에 가나 / 긴개 본문

2021-2023 긴개

1128 월 / 이러다가 집에 가나 / 긴개

긴개 2022. 11. 29. 01:59






겪어본 적 없는 미래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내 앞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이 기시감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불완전한 기억들이 일시적으로 뒤섞여 마치 언젠가의 기분인 듯 위장한다. 나는 현재로부터 어긋난 병뚜껑이 되어 틈새로 물을 모두 흘려버린다. 모두가 침착하게 현재와 융화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도무지 타인의 좌표는 추측하기 어렵다. 튼튼한 동아줄은 지금 이 순간에 찰싹 달라붙어있고, 속이 썩은 동아줄은 카우보이의 손 끝에서 날아 얼간이들을 쏙쏙 끌어낸다. 개척지와 개척지 사이의 황폐한 사막을 구르는 뼈다귀가 바로 내 유골이다.


아주 징그러운 사진을 보았다. 보통은 그런 일이 없다. ‘혐오주의’ 같은 경고가 달린 게시물은 절대 클릭하지 않는 편이거든. 그러나 이번엔 손가락으로 화면을 쓱쓱 쓸어내리다 마주하고 말았다. 우연히 끔찍한 이미지를 마주한 경우엔 재빨리 눈을 가늘게 뜬다. 초점이 망막에 정확히 맺히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들인다. 그러나 이번엔 한 꺼풀 늦었다. 이미지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이해하고 난 뒤엔 이미 너무 오래 그것을 들여다본 후였다. ‘코끼리를 떠올리지 마’ 난제처럼, 이 이미지는 떠올리지 않으려는 순간부터 깊은 기억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신경 다발에 저항할 수 없는 충격이 가해졌고, 장기 기억으로 분류된 것을 의지만으로 되돌릴 순 없다. 이런 쓰레기 같은 사진을 평생 머릿속에 넣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의 기분은 소주 반 병을 해동되지 않은 떡을 안주 삼아 들이켜야 할 때와 비슷할 것이다.


끔찍한 기억은 잦은 간격으로 수십 개 설정해놓은 모닝콜처럼 불쑥불쑥 떠오른다. 그 사이 나는 축구 경기를 보았다. 경기가 시작되었을 땐 둥둥 떠다니고 있던 시선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모니터에 붙는다. 아주 먼 곳, 다른 시간 속의 선수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시시각각 주시하고 있다가 앞으로 쏟아질 듯 내달리는 모습에 완전히 동요되어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분명 이 순간 나는 꽉 닫힌 병뚜껑, 튼튼한 동아줄을 손에 돌돌 말아 쥔 사람. 나머지 시야는 흐려지고 엄지손톱 만한 면적에 빨려 들어갈 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사이에 조규성 선수가 머리로 공을 받아쳐 두 번이나 득점을 했다. 동그란 축복이 단단하게 내린 대단한 머리였다. 이후 사진을 다시 떠올려보니 귀여운 미키마우스들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