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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지금을 미루고 있다. 지금은 단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일 뿐이라고 되뇐다. 정확히 뭘 준비한다는 건지는 몰라도, 네 머릿속에 있는 그 대단한 미래를 위해 지금은 참아 견뎌내야 해. 하기 싫은 일을 처리하고 소중한 하루하루를 월급으로 교환해야지. 집세 내고 장보고 적금 넣고 공과금 내고 커피 마시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는 돈이지만 다들 그렇게 살잖아. 징징댈 일이 아니야. 이렇게 말하고 나니 이제 정말 어른이 다 되었다는 걸 느낀다. 어른의 고민을 짊어졌구나. 얼레벌레 살아도 스스로를 책임지고 있다. 닥친 일에서 도망치기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어. 멋져. 대단해. 동시에 분하기도 하다. 결국 이런 어른이 되었네. 세상의 재미있는 일은 다 벌일 것처럼 으스댔잖아...
에코샵홀씨 20주년 기념 강좌 중 (사)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 김인철 소장님의 를 들었습니다. 어부지리와 비슷한 뜻을 가진 사자성어인 '방휼지쟁' 속에 도요새 휼鷸 이라는한자가 들어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도요물떼새는 봄,가을에 한국을 통과하는 새로 다양한 부리 모양과 다리 길이 등을 가져, 모두 함께 갯벌에서 머물러도 먹이 경쟁을 피할 수 있도록 진화해왔습니다. 분포 밀도가 높아도 섭식 행동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갯벌에 사이좋게 모여살 수 있는 것입니다. 물 속을 깊게 콕콕콕 쑤시는 방법, 물 속을 휘휘 젓는 방법, 갯벌 얕은 곳을 파는 방법, 갯벌 깊은 곳으로 부리를 넣는 방법 등 저마다 다른 섭식 행동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떼새는 도요새보다 비교적 머리에서 눈이 차지하는 면적이 넓은 편입니다. 모..
에코샵홀씨 20주년 기념 행사 중 국립공원 조류연구센터 최세준 연구원의 강좌에 참여했습니다. 새를 찾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중 청각에 의존하는 것이 탐조의 94%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소리가 퍼지는 갯벌 같은 장소에서는 청각만으로 새의 위치를 찾기 힘들지만, 대부분의 환경에서 소리가 탐조의 가장 주요한 단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루 중 새들의 소리 활동이 가장 활발하다고 알려져 있는 때는 보통 아침과 저녁 시간입니다. 최세준 연구원님은 제주도 동백동산에서 직박구리와 큰부리까마귀, 멧비둘기, 동박새, 두견이, 섬휘파랑새, 긴꼬리딱새의 울음소리를 추적해 만든 자료를 통해 아침과 저녁의 소리 빈도가 확연히 높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오전 05시부터 오전 08시, 오후 16시부터 20시까지의 소리활동..
간절히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적이 없다고 말하면 대부분 놀란 표정을 짓는다. 물론 몇 번 가볍게 말한 적은 있다. 언젠가 대만에 가보면 재밌겠다-라거나, 일본에서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보고 싶다-하고. 그렇게 말한 뒤에 대만의 여행 후기나 일본의 가볼 만한 동네를 검색해보지는 않는다. 한때는 핀란드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소설을 읽고 핀란드에 가보고 싶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잠시 떠올린 다음 여행이 실현되도록 행동에 옮기지는 않는 것이다. 이는 여행에서 크게 기대하는 바가 없기도 하거니와 아직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여행을 준비하는 상상만으로도 머릿속에서 수많은 돌발상황을 맞닥뜨리고 해결하느라 진이 빠지는 탓도 있다. 또한 십 년이 넘도록 혼자서 네발짐승들을 키우고 있다. 이들에게..
에코샵홀씨의 창립 20주년을 기념하여 강좌가 열렸습니다. 24일(금)의 마지막 순서인 전명호 전남대 바이오하우징연구소 학술연구 교수님의 를 들었습니다. 1969년 머레이 쉐이퍼Murray Schafer는 '사운드 스케이프'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의 1969년에 머레이 쉐이퍼(Murray Schafer)는 소음에 대한 관점을 더욱 확장시킨 음악적 개념의 신조어로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개념 을 도입하였다. 본래 소음이란 ‘불규칙하게 뒤섞여 불쾌 하고 시끄러운 소리’와 같이 부정적인 단어로 인식되고 있었으나, 쉐이퍼는 소음에 대하여 “우리들이 소홀히 하게 된 소리”[1]라고 하며, 현대인의 듣는 행위와 방법 에 대해 일상생활 속 사운드스케이프를 음악적 감상과 같은 태도로 보다 주의..
오늘은 에코샵홀씨 20주년을 기념하여 시청역 워크숍룸에서 열린 기경석 상지대학교 산림조경학부 교수님의 강좌를 들었습니다. 음향을 추적하여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분이 있습니다. 박쥐의 소리, 물고기의 소리, 딱따구리의 소리 등등. 듣기만 해도 궁금증이 마구 피어납니다. 기경석 교수님을 따라 생태 조사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재미있는 강좌였습니다. 전국 곳곳 생태 주요 지역에 음향 기기를 설치해두고 각종 생물들의 소리 분포, 시기, 종류 등을 조사하는 이야기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니요! 1. 매미 소음과 빛공해 매미는 왜 밤에 울까요? 여름밤을 시끄럽게 만드는 매미에 대한 기사가 매년 8월 즈음 쏟아집니다. 8월은 장마 직전입니다. 열심히 키워낸 아기 새들을 보낸 뒤 기진맥진한 부모 새, 고양이, 벌 ..
에코샵홀씨의 창립 20주년을 기념하여 시청역 지하 워크룸에서 열린 강의에 참여했습니다. 첫 번째 순서는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장이권 교수님의 이었습니다. 1. 두꺼비의 소리 강연은 두꺼비의 소리 이야기로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커다란 암컷 두꺼비 위로 수컷 두꺼비들이 샌드위치처럼 쌓여 짝짓기 경쟁을 벌이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이때 좀더 암컷에 딱 붙어 있던 기존의 수컷 두꺼비가 삑삑 소리를 냅니다. 이는 무엇 때문일까요? 동물들은 크기가 커질 수록 낮은 음역대의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도전자를 물리치고 싶은 기존의 두꺼비는 자신의 소리로 몸집을 과시하며 자신보다 작은 두꺼비에게 겁을 주고자 합니다. 만약 도전자가 듣기에 자신의 몸집과 비슷할 것 같은 소리라고 하면 겁먹지 않고 달려들겠죠. 영상 속 두꺼비들은..
희로애락의 일주일을 보냈다. 오랜만에 애인에게 크게 상심했다. 이후 일주일 간 끈질기게 대화를 나누었다. 매일 새로운 변주곡을 발표하는 작곡가처럼 우리는 같은 주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재차 살폈다. 그 사이 뒷산에선 올벚나무가 발 빠르게 흰 꽃을 피워냈고 잿빛 땅 위로는 초록 풀이 돋았다. 인류의 고민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산이 싱그럽게 몸을 풀었다. 우리는 이제 막 데뷔 앨범을 발표한 밴드 멤버들 같았다. 평행세계 중 가장 오합지졸인 셜록과 왓슨 같기도 했다. 또한 그는 옆 방에 사는 외국인 같기도 하고. 어딘가 다른 기억이 업로드된 그의 복제품 같기도 했다. 미래에 쌓여있던, 함께 내릴 결정들이 순식간에 신기루가 되던 그때, 나는 뻐근한 뒷목을 붙잡고 무게중심을 재빨리 내 쪽으로 옮겼다. 나는 이 사람..
벌써 아홉 달째 발레를 배우고 있다.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거나 퇴사를 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 그동안 허벅지 앞 근육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고 복근도 선명해졌다. 이제는 꼿꼿이 선 채 엄지 발가락으로 방의 전등 스위치를 켤 수도 있고 발 끝으로 고양이를 쓰다듬을 수도 있다. 영화 에서 주인공 베아트릭스는 수년 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다음 쇠약해진 몸의 근육을 깨우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는데, 이때 맨 처음 시도하는 것이 바로 발가락 구부리기이다. 그녀는 몇 시간 동안 트럭 안에서 발가락 하나하나를 굽히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린다. 영화 볼 때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던 그 장면은 발레 첫 시간에 불현듯 다시 떠올랐다. 이제껏 살면서 발가락을 구부릴 일이 없었단 나의 발가락 근육은 혼수상태..
대학생 때의 나는 찰스 부코스키에 빠져있었다. 1920년 독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넘어온 그는 여러 잡일을 전전하며 글을 쓰다 이후 전업 작가가 되었다. 꽤 웃기는 아저씨였는데, 욕도 기똥차게 하고 글도 시원하게 썼다. 다들 쉬쉬하며 뒷골목에 보이지 않게 쑤셔 박아두는 쓰레기 같은 사람이었다. 성숙한 십 대라면 부코스키를 한두 장 넘겨봐도 된다. 이십 대라면 푹 빠져들 법하다. 그러나 삼십 대 이후에 부코스키를 미친 듯이 사랑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좀 멀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당시의 내가 알던 사람 중에 유일하게 어른 대접을 해줄 만한 사람은 찰스 부코스키가 유일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른의 판단은 대개 선에 기초하리라고 믿었다. 전체 인구 중 악인은 소수이고 뭔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