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1226 월 / 조동아리 / 긴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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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월 / 조동아리 / 긴개

긴개 2022. 12. 27. 03:00

 

 

 




 재미있는 대화를 나눌 사람이 줄었다. 몰입의 성과를 빅파이만큼이라도 얻은 사람들은 자기 자랑 읊기에 바쁘고, 삶의 낙이 없는 사람들은 삿갓조개처럼 입을 다물었거든. 떠드는 사람들은 자기가 너무 잘났고 입 다문 사람들은 들어줄 여유가 없으니, 이것 참 팽팽한 줄다리기 같다고 해야 하나 느슨한 컨베이어 벨트 같다고 해야 하나. 떠드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만족할 만한 대화를 올해 몇 번이나 했던가. 대화가 재미있었다면 내가 너무 떠들었기 때문이고, 재미없었다면 나보다 상대가 더 떠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래서 월드컵이 재미있었나 보다. 입 닫고 멍하니 굴러가는 공만 보면 되니까. 메시가 잔디 위에서 공을 차고 뛰는 모습만 봐도 충분하니까. 

 

 예전의 대화들이 정말 재미있었나? 혈기 왕성했던 그때 흩뿌렸던 말들은 전부 흐릿해졌다. 밤거리에서 고무동력기를 날리고 매일 가는 오락실에 또 들른 다음 누군가의 집에서 파스타라도 해 먹어야 집에 가는 길이 아쉽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다. 가드와 안면을 틀 정도로 클럽에 들락거려도 성에 차질 않고 아무리 골목을 헤집고 다녀도 또 어딘가 가고만 싶던, 그때 우리가 나눈 대화들은 아마 아무짝에도 쓸모없었을 것이다. 담보 없는 약속, 막연한 위로, 무책임한 기대만 가득했겠지. 그래놓고 이룬 것도 없는 서로를 대단하게 여겼다. 젊어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멍청했다. 목소리들도 고왔다. 키득거리며 대화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순 쭉정이들이었다. 

 

 인간관계는 순식간에 바람 빠진 튜브처럼 쪼그라들었다. 이제는 주고받는 알맹이의 무게가 중요해졌다. 껍데기만 던지는 사람은 얼굴이 반반해도 하품이 난다. 몇 마디로도 삶의 궤적이 드러나고, 단어 한두 개로 고향까지 짐작할 수 있다. 피곤한 일이다. 편견이 대화의 밑반찬이고 의심으로 간을 한다. 빈 속에도 체할지 모른다. 

 

 간단한 농담을 티키타카 주고받을 친구는 이제 산타도 가져다줄 수 없다. 대신 동호회니 동아리니 모임이니 하는 것에 가입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대화에서 공통의 관심사는 프라이팬에 좋은 버터를 발라두는 것과 같지. 시야를 뿌옇게 만드는 편견을 제쳐두고 본질로 향하는 말을 꺼내자. 대화의 지분을 엇비슷하게 맞춰가며 균형을 잡아보는 거야. 이 사람 저 사람 마음을 기울여가며 꽉 쥐었던 손을 펴서 내보이다 보면 또 몰라 운이 좋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