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0831 목/ 기후 위기 해결 방법 1; 선택적 무지를 뛰어넘는 허세 장착하기 _『브레이킹 바운더리스』와 『우정의 언어 예술』/ 긴개 본문

독서 기록

0831 목/ 기후 위기 해결 방법 1; 선택적 무지를 뛰어넘는 허세 장착하기 _『브레이킹 바운더리스』와 『우정의 언어 예술』/ 긴개

긴개 2023. 8. 31. 23:43

 
 
기후 위기 해결 방법 1; 선택적 무지를 뛰어넘는 허세 장착하기
『브레이킹 바운더리스』와 『우정의 언어 예술』 





 
 
 
 내 입에서 침이 아닌 기후 위기 이야기가 튀어나온 것이야말로 지구가 여섯 번째 대멸종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다. 
 
 공영방송이나 공공기관에서 밈 meme*을 차용하기 시작하면 그 밈의 수명은 끝난 것과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상대적으로 유행의 흐름에 둔감하다고 여겨지는 공공기관의 홍보 담당자들이 밈을 써먹을 때쯤이면 이미 밈은 파생에 파생을 거치며 자가복제할 동력이 바닥나고 그 의미도 희미해졌을 거란 뜻이리라. 게다가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밈을 따라 하고 싶은 마케터는 없을 테니, 거기에서 그것의 수명은 끝이 난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불려 다닌 밈은 폭발적인 탄생과 화려한 청년기를 거치다 돌고 돌아 공공기관에서 소멸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 무엇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유행의 흐름에 민감한 인플루언서, 인기 작가나 정치인, 사업가가 아니다. 정치적 올바름에 민감하거나, 환경친화적인 삶을 실천하거나, 세상을 위해 꾸준히 기부를 하는 사람도 아니다. 오로지 내 안위만 걱정하며 나의 하루를 위해 살고 있는 이기적인 소시민일 뿐이다. 그 유명한 그레타 툰베리는 이름만 들어봤지 그의 책 한 권 읽어본 적 없으며, 환경단체에게 매달 기부하겠다고 떠들었지만 내 입으로 들어가는 한 푼이 아쉬워 포기한 무심한 사람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말든 나는 매 끼니마다 무엇을 먹을지, 이번 월급은 또 얼마나 빨리 통장에서 빠져나갈지, 저번에 장바구니에 담아둔 옷을 살지 말지 걱정한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내가 지구 온난화 이야기를 입 밖으로 냈다. 내 목소리로 ‘지구 온난화’를 발음하고 그 소리를 내 귀로 듣기가 어색하다. 그 무엇도 아닌 내가 이런 거룩하고 대단한 이야기를 꺼내려니 괜히 송구스럽고 민망하다. 누구에게? 가상의 청중에게? 아무도 듣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면서 쓸데없이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웃기는 일이지. 상상 속의 찌푸린 청중을 떠올리는 것은 그만두자. 그러나 기후 위기를 감지하는 ‘기후위기한계선’이 내게까지 내려왔다는 사실에 여러분은 오싹한 기분을 느껴야 마땅하다. 유명한 그레타 툰베리를 넘어 정치인, 인기 작가, 사회적 기업가를 넘어 이제 무명의 나에게까지 위기감이 닥쳐왔다. 공공기관에서 밈이 쓰이는 순간 수명을 다하는 것처럼, 내 입에서 기후 위기가 나온 시점에 우리는 지구 위험 한계선을 이미 넘어버린 뒤인지도 모른다. 
 
 기후 위기를 다루는 책이나 기사는 되도록이면 읽고 싶지 않았다. 여러 책 중 기후 위기를 다룬 책은 가장 늦게 펼쳐 보거나 모른 체했다. 읽어봤자 기분만 축 처지니까. 이러저러하게 지구 생태계가 죽어나가고 있는 사실을 알아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뉴스에 나오는 과격한 환경주의자들의 시위에 내심 동조하면서도 막상 기회가 주어진다면 생업을 내려놓거나 휴식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동참할 엄두는 내지 못할 것이다. 북극의 곰이나 아마존의 나무는 막연하고 피상적인 이미지로만 소비하고 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고 생각했지만 기껏 해낸 거라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빨대를 챙기지 않는 정도이다. 배달음식의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줄이려면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식재료를 직접 구매하려고 보니 식재료 포장 용기 역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다. 무기력과 패배감에 한 대 얻어맞는다. 버튼 한 번 누르고 전 세계가 깨끗해진다면야 얼마든지 누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심각하게 오염되어 버린 지구 생태계를 되돌리려면 전 세계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버튼을 눌러도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읽었다. 지구 위험 한계선(planetary boundaries) 개념을 소개하고 해결책으로 전 세계적 체제 전환을 제안하는 『브레이킹 바운더리스』*와 기후 위기 시대 예술가의 역할을 고민하는 『우정의 언어 예술』*을.  『브레이킹 바운더리스』는 기후 위기 책을 읽고 젠체하는 사람에게 지고 싶지 않아 집어 들었고, 책을 내려놓을 때쯤 자연스럽게 『우정의 언어 예술』이 눈에 들어왔다. 이밖에도 문어발로 여러 책을 넘겨보며 알아차린 점이 있다. 바로 최근 출간된 SF소설과 과학 도서 대부분이 지구 생태계의 위기를 언급하고 비인간과의 공존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책을 찾기가 어려웠다. 생물과 환경을 다룬 책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전기와 인터넷, 과학사, 화학을 다루는 책 등도 그랬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던 시절 팬데믹을 잘 이겨내자는 인사말이 유행했던 것처럼 이제는 기후 위기를 이겨내자는 말이 책의 머리말이나 마치는 글, 본문에 여기저기 박혀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누구나 이 말을 해야 하는 시절이 온 것이다. 어떤 분야에 종사하던지 간에 지구 거주민이라면 무시할 수 없는 사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버튼을 누르는 것만큼 쉽진 않지만 입 밖으로 내는 일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뜬금없이 기후 위기를 다룬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상세한 정보를 더 얻고 나니 불안이 줄어들었다.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생태적 신호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아는 것은 패배주의적 사고방식을 몰아내고 구체적인 해결방법을 모색하게 하며 희망을 가져다준다. 사실 이 전 세계적 환경오염에 대한 탓을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들, 정부에 돌릴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일 년에 일억 원도 못 쓰는 내가 환경에 피해를 끼쳤으면 뭐 얼마나 끼쳤을 것이며, 나 혼자 아등바등해봤자 뭐 얼마나 복구할 수 있겠는가. 이 지경이 되도록 몰아가고 방치한 주체가 누구인지 구분하고, 어떤 시스템을 개선해야 하는지 이해할수록 막연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해야 할 일이 좁혀진다. 앎이 불안을 걷어낸다. 불분명한 죄책감이 사라진 자리에 명확한 방향과 구체적인 방법이 자리 잡는다. 모르고 괴로울래, 알고 개운할래? 
 
 지구는 오랜 기간 동안 자동으로 돌아가는 생명 유지 시스템을 만들었다. 땅과 암석과 공기와 물, 식물과 동물 모두가 그것의 부품이다. 지진과 화산, 소행성 충돌 등으로 시스템의 어느 한 부분이 어긋나더라도 지구는 인내를 갖고 그것을 유지보수 해왔다. 이 평화로운 시스템을 인류가 단 몇십 년 만에 고장내고 있다. 안타깝게도 지구를 떠나 새롭게 정착할 행성을 찾는 것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러니 2030년까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 후손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당장 우리의 노년을 위해서도 그렇다. 『브레이킹 바운더리스』는 지구의 생명 유지 시스템 생성 과정과 그 속의 한 부품이었던 인류가 세를 확장하며 시스템 전체에 위기를 가져다준 이야기로 첫 발을 내딛는다. 현재의 인류 문명은 1만 2000년 전의 홀로세*가 시작되며 기후가 안정되었기 때문에 번성할 수 있었다. 선진국이라 평가받는 나라들 역시 선조들이 기후가 적합한 ‘운 좋은 위도대’에 정착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인류 문명의 가장 핵심적인 조건이 기후 안정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우리는 스스로의 기반을 흔드는 ‘발전’을 계속해왔다. 
 
 또한 『브레이킹 바운더리스』는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에너지 생산, 식량 생산, 불평등, 도시화, 인구와 건강, 기술의 여섯 가지 시스템 전환을 요구한다. 화석 연료 중심 산업을 대체하고 탄소 배출량을 감소시켜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 밖의 문제들은 기후 위기를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할 것을 제안한다. 신흥공업국에서 비만 환자 수만큼이나 영양실조 환자가 많다는 사실은 우리가 음식 쓰레기 낭비와 환경 파괴적인 식량 생산 방식, 몸과 지구에 해로운 음식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경제적 불평등으로 기후 위기 시대의 고통마저 차등적으로 닥친다는 사실은 확실히 놀랍다. 기후 난민들은 대부분 가난한 국가와 가난한 지역에서 발생한다. 당장 먹고사는 일에 급급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환경 보호에 앞장서기 어렵다. 또한 도시 시스템의 생태적 전환 여부가 해당 도시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인구 성장률은 평평해지면서 질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기술 혁신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상황이 거대 자본과 힘센 국가들의 선택에 운명을 맡긴 것처럼 보여 낙담할 필요는 없다. 더 많은 우리가 현 상황의 위기에 동의할수록 이에 대항할 커다란 힘이 생긴다. 우리는 소비자이자 유권자, 시민이다. 행복할 권리, 깨끗한 세상에서 살아갈 권리에 대한 주체 의식이 널리 퍼질수록 지구 회복은 성공에 가까워진다. 
 
 공윤지 작가의 『우정의 언어 예술』은 기후 위기 시대에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세계 각지로 여행을 떠나며 답을 찾는 과정을 그린다. 『우정의 언어 예술』을 만든 출판사 ‘소장각’ 역시 책이 만들어지고 운반되기까지의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공정을 구축하려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그 방법을 공유해 더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 도서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태생부터 남다른 고민을 품은 이 책은 발로 뛰고 몸을 던지며 예술가의 역할을 되묻는다. 작가는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이 산업혁명에 적응하지 못한 보수적인 예술가의 발버둥이 아닌, 지속 가능한 공예 방식과 자연 친화적인 예술 정신에 대한 신념이었다고 해석한다. 또한 그는 산업혁명의 근원지인 맨체스터, 오슬로의 국제종자저장고와 미래도서관 등을 방문하며 기후 위기의 시작점과 예술가들의 대응 방식을 기록했다. 더 나아가 예술교육실천가(Teaching Artist)는 환경 지식을 전달하는 대신 우리의 삶과 자연이 연결된 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대화의 장을 만듦으로써 지구 회복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 속에 빠져 있는 동안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를 이어주는 살아숨쉬는 예술의 가치를 느꼈다. 
 
 과학자도, 소설가도, 예술가도 기후 위기를 논한다. 그리고 이제 나까지 기후 위기를 입에 담았다. 여전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내가 누군지 모를 것이다. 내가 누구인 게 무슨 상관이랴. 이런 무명도 지구 생태계 회복을 위해 고작 두 권의 책을 읽고 갑자기 떠들기 시작했다. 막연한 비관을 떨치고 내가 가진 힘을 소중히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이 결연함에 당신이 피식 웃을지도 모른다. 네가 누군데? 그러나 나는 이미 다음 책을 집어 들고 있다. 읽고 나면 또 떠들 것이다. 더 아는 척하고 더 허세를 부릴 것이다. 소비자, 유권자, 시민으로서의 힘을 과신하고 으스댈 것이다. 어느 날은 내 허세에 지쳐 당신도 못 이기는 척 기후 위기를 다룬 책을 한 권 넘겨보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와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결심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길 기대한다. 
 
 
 
 
 
 
 
 
*meme;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어떤 아이디어(들)의 복제자로 간주될 수 있는 모든 문화적 실체’라는 뜻으로 창안한 단어
* 『브레이킹 바운더리스』, 오웬 가프니/요한 록스트룀, 사이언스북스, 2022
 
『우정의 언어 예술』, 공윤지, 소장각, 2023
*홀로세; 1만 2000년 전에 시작되어 1950년대에 막을 내린, 다른 간빙기 시대보다 온화하고 안정적인 기간. 『브레이킹 바운더리스』 p.76-77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