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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던전에서 우릴 기다리던, 보르헤스의『픽션들』 본문
『픽션들』은 역시 독서모임에서 만나야 한다. 어떤 크리쳐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던전에 혼자 들어가선 안되는 것처럼, 이런 책은 여럿이 덤벼야 해치울 수 있다. 혼자보다 여럿이 낫다는 것은 『픽션들』에 한해 분명한 사실이다. 홀로 이 책을 온전히 이해했으며 더이상의 해석은 필요없다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보르헤스의 소설은 파면 팔수록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고, 알면 알수록 많은 것이 보인다. 이해했다는 말은 그자체로 나머지 해석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증언이 될 수 있는, 골치 아픈 책이다. 그러니까 어디가서 보르헤스 좀 읽은 체를 하려면, 읽을수록 새롭고 생각할수록 신기하다며 호들갑을 떠는 편이 낫다.
나는 『픽션들』에서야 비로소 ‘실험적인 소설’, ‘실험적인 작품’이라는 수식어를 이해했다. 무려 80년 전 출간된 소설에서 말이다. 이런 내용과 형식의 소설도 가능하다는 것을 팔십년 전에 공표했건만 어째 지금껏 내가 읽어 온 소설들은 보르헤스만큼 ‘실험적’이지 않았다. 1.안전하고 쉬운 독서에만 기댔던 나, 2.독자들이 보르헤스만큼 신진 작가에게 관대하지 않았던 탓, 3.순문학 독자층의 절대적 감소로 인한 출판계의 안전한 선택 등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사실은 배움이 얕은 내탓이니 정답은 1이다.
8월의 용감한 백권야행 멤버들과 이 단편집의 ⅓ 을 읽었다. 총 19편 중 7편이라니 스스로가 기특하다. 삼백 페이지도 되지 않는 얇은 책 한 권의 ⅓ 만 읽고 만족하는 내가 우스운 사람은 『픽션들』을 안 읽었다. 다 읽었지만 이렇게 호들갑 떨 일이냐는 사람은 내용을 까먹은 게 분명하다. 소설을 ‘읽었다'고 분류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호들갑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이제부터 백권야행에서 읽은 단편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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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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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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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의 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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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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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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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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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천재 푸네스
1. 「남부 El sur」(1956)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너무 단순해서 독자들은 자칫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모조리 지나칠 수도 있다. 친할아버지 요하네스 달만과 외할아버지 프란시스코 플로레스의 손자 후안 달만은 우연한 사고로 패혈증에 걸려 크게 앓는다. 그는 요양 생활을 위해 기차를 타고 외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남부의 농장으로 떠난다. 알 수 없는, 사실 관심 없는 이유로 달만은 목적지 한 정거장 전에 기차에서 내린다. 낯선 동네의 낯선 가게의 원주민 청년들은 달만에게 시비를 걸고 이윽고 결투를 신청한다. 달만은 죽음을 예감하고서도 그에게 주어진 단도를 집어들고 그를 따라 평원으로 나선다.
줄거리는 여기까지다. 덮고 나면 의문이 몰려든다. 보르헤스는 왜 첫 문단에서 달만의 할아버지들을 묘사했는가? 왜 원주민 청년들은 처음 보는 달만에게 적의를 드러내는가? 왜 달만은 패배가 예견된 원주민 청년과의 결투에 응하는가?
특히 아르헨티나의 근대사를 모르는 사람에겐 첫 문단부터 까막눈이 되어버린다.
‘1871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하선한 사람의 이름은 요하네스 달만이었다. 그는 개신교 목사였다. 1939년 코르도바 거리에 있는 시립 도서관에서 비서로 일하던 그의 손자 후안 달만은 마음속 깊이 자신을 아르헨티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제2 전투 보병대의 용사였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방의 경계에서 카트리엘이 이끄는 원주민의 창을 맞고 전사한, 프란시스코 플로레스였다.’1
최은경은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로 아르헨티나의 역사, 그중에서도 ‘아르헨티나 근대화 전략’을 소개한다.2 후안 달만의 가계도 묘사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근대화 전략으로부터 모든 일이 벌어졌음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아르헨티나 제17대 대통령 도밍고 파우스티노 사르미엔토는 그의 저서 『파쿤도 Facundo』(또는 ‘문명과 야만’)에서 남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오를 ‘야만’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제거하는 동시에 ‘야만’이 뿌리 뽑힌 그 빈 장소에 유럽 이민자들, 즉 ‘문명‘을 심고자 했다. 사르미엔토는 아르헨티나를 문명 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내세워 팜파스 대평원의 목동 가우초와 원주민인 인디오 사이의 전쟁을 계획한다. 이로 인해 두 집단 모두 몰살당하자 사르미엔토는 유럽인, 그것도 ‘게르만계 북부’인들을 이민자로 데려와 아르헨티나의 인종색을 희게 만들고자 한다.
사르미엔토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유명 ‘영웅’들은 대대로 원주민을 잔혹하게 학살해왔다. 남아메리카 국가 중에서도 아르헨티나의 원주민 비율이 제일 낮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르헨티나는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오3가 점조직을 이루며 살던 땅이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16세기 중엽부터 아르헨티나는 하나의 통일된 스페인 식민지 국가로 변모했다. 정복자들은 원주민의 토지와 재산을 몰수해 백인 이주자들에게 재분배했을 뿐만 아니라 ‘사막 침공 작전(Campaña del Desierto)을 통해 인디오와 가우초를 몰살시킨다.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의 후예가 아르헨티나 남부 팜파스 지역에서 빈곤하게 살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백인 침략자들의 후예인 후안 달만이 ‘남부’의 농가를 요양차 방문하는 일이 그들에게 얼마나 모욕적이거나 잔인하게 여겨질 것인지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다. 게다가 플로레스에게 물려받았다는 농가 역시 애초에 인디오와 가우초들의 소유였을 것이다. 그가 유럽계 후손임을 추측할 수 있는 후안 달만이라는 이름은 남부의 농장 일꾼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므로 달만의 남부 방문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매우 타당하고, 개연성이 높은 줄거리라 할 수 있다.
달만은 우연한 사고로 인해 패혈증에 걸리며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을 겪는다. 이는 이후 일어난 사건을 꿈 속의 일로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어 환상문학적 역사 다시쓰기를 가능하게 한다. 한 이야기를 여러 갈래로 해석할 수 있도록 흔쾌히 허락한다는 점은 보르헤스 문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짧은 분량의 이야기라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르헨티나 작가임에도 유럽을 배경으로 한 비정치적 작품만을 추구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보르헤스는 「남부」를 통해 그와 같은 혐의를 조금이나마 내려놓는다. 아르헨티나의 소수자가 감내한 역사적, 정치적 사건에 새로운 해석과 결말을 가능하게 한 작품 「남부」로 보르헤스는 객체화, 타자화된 인디오/인디헤나의 존재를 선명히, 잊을 수 없게 드러낸다.
1. 보르헤스, 『픽션들』, 송병선 옮김, 민음사, 1997, p.217
2. 최은경, 2016, <보르헤스의 「남부 El sur」 속에 나타나는 아르헨티나 근대역사 다시쓰기: 환상문학 속 탈식민주의적 해방기획>, 스페인라틴아메리카 연구 (9)207~226
3. ‘인디헤나Indigena’가 옳은 표현이라는 의견도 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mosfnet&logNo=220268646201&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trackingCode=external
2.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주제」를 읽기 위한 키워드는 바로 ‘상호텍스트성(Intertexuality)’이다. 내가 생각하는 상호텍스트성은 다음과 같다. 거미줄에 걸린 물방울이 바람에 떠밀려 스르륵 움직이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물방울은 거미줄을 따라 최초에 맺힌 곳에서부터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다. 바람만 절묘하게 불어준다면 아래에서 위로도 옮겨갈 수 있다. 하나의 문학 작품은 다른 작품, 사회,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완벽하게 분리된 작품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볼 때, 작품은 다른 작품, 다른 세계와 거미줄로 이어지듯 여러 층위의 관계를 갖는다. 거미줄을 따라 가로세로로 눈을 돌리다보면 해석의 범위는 무한하게 늘어난다.
보르헤스의 텍스트들은 소설 외부의 텍스트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어떤 것은 드러내놓고 명시되어 있으며 어떤 것은 은근한 암시를 건넨다. 또 어떤 것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추측하게 만든다. 로브 포프(Rob Pope)가 설정한 바에 따르면 상호텍스트는 명시적(explicit), 암시적(implied), 추측적(inferred) 관계를 갖는다.1 출처나 내용이 분명하게 언급되는 명시적 상호텍스트, 슬쩍 흘리듯 언급하는 암시적 상호텍스트, 독자가 자발적으로 통찰하고 참고하는 추측적 상호텍스트의 특징을 염두에 두고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주제」를 둘러싼 복잡한 거미줄을 하나하나 따라가보자. 상호텍스트성 뿐만 아니라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다층적 구조 역시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주제」를 읽으며 잊지 말아야 할 특징인데, 이는 줄거리 설명 후 다시 이야기해보겠다.
보르헤스로 추측되는 화자 ‘나’는 어느 날 저녁 추리 소설가 체스터턴과 예정 조화설을 만든 라이프니츠의 영향 하에 ‘이 이야기를 상상’한다. 모든 결과가 운명론적으로 설계된 사건을 추리하듯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꾸며낼 것이라 공표하여 선빵을 날린 셈이지만 읽다보면 각 층위의 이야기에 빠져드느라 ‘상상’에 대한 기억은 까마득해지고 만다. 심지어 ‘1944년 1월 3일’, ‘1824년 아일랜드’ 따위의 구체적 날짜와 지명 등을 정확히 기재하는 바람에 읽을 수록 이 모든 것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처럼 느껴진다.
‘나’가 상상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라이언으로 그는 증조할아버지 퍼거스 킬패트릭의 전기를 쓰기 위해 조사하던 중 킬패트릭의 죽음에 수수께끼가 남았다고 여긴다. 아일랜드 반란군 영웅 킬패트릭을 암살한 범인이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가 암살당한 상황이 셰익스피어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내용과 유사하다는 것, 그리고 킬패트릭이 했다고 알려진 말들이 역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먼저 나와있었다는 점 말이다. 어떻게 문학이 역사의 선제 조건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울 지경인데, ‘역사가 문학을 그대로 베낄 수 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므로······.’2
영국이 16세기 중엽부터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만들고 압제하는 바람에 아일랜드 독립 전까지 그 땅에서는 봉기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의 역사적 배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일랜드 영웅이 영국 극작가의 작품을 문학 작품을 표절해 실제 상황으로 둔갑한 연극을 벌이고 죽은 사건이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또 전복적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킬패트릭의 친구 놀란은 아일랜드 영웅이 반란군을 배신했음을 밝혀낸다. 이러한 사건이 민중들에게 끼칠 부정적 영향을 막기 위해 놀란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차용한 상황으로 극적인 킬패트릭 암살 사건을 연출한다. 그러나 잊고 있었을 지 모르나 이 모든 이야기는 ‘나’의 상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킬패트릭의 증손자 라이언은 이러한 역사가 문학을 표절한 사건을 공표하지 않기로 결심하며 이 또한 예견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이야기에서 상상된 주인공 라이언으로부터 증조할아버지 킬패트릭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위의 이야기에 전부 다른 주인공을 설정하며 보르헤스는 순환하는 아이러니를 강조한다. 또한 문학 작품 속의 역사적 이야기 속의 문학적 허구라는 다층적 차원의 서술로 새로운 상호적 관계를 창조해냈다.
다시 상호텍스트성이라는 특징으로 돌아와보자. 이야기의 시작 전 보르헤스가 인용한 시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탑』에 수록된 「1919」의 일부분으로, 명시적 상호텍스트의 한 예시이다. 이 시는 ‘1919년 아일랜드 혁명을 진압하는데 사용된 ‘블랙앤탠스(Black and Tans)’의 잔인무도한 행위에 대한 대답으로 작성’되었다.3
‘그리하여 플라톤의 해는
옛것 속에서 선회하는 대신
새로운 옳음과 그름을 내밀며 선회한다.
사람들은 모두 무용수, 그들의 궤적은
요란하게 울리는 징 소리를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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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B. 예이츠, 『탑』’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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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민족주의 시인이며 에세이 작가인 예이츠는 영국의 셰익스피어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다.5 순환적이며 예견적인 시간의 흐름을 암시하는 이 시와 라이프니츠의 ‘예정 조화설’을 합쳐 보면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이 반복적이며 예견된 상황에 따라 결말을 맞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납득하게 된다.
명시적으로 언급된 또다른 상호텍스트는 셰익스피어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맥베스』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브루투스는 로마의 위대한 영웅 시저가 독재자가 되려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암살한다. 시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었다는 브루투스의 연설로 그의 덕성과 고결함이 드러난다.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주제」에서의 놀란 역시 아일랜드의 영웅 킬패트릭의 배신을 알아차리고 그를 암살하기로 결정한다. 다만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놀란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여러 장면을 표절해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벌어진 배신과 암살을 반복한다. 『맥베스』 역시 마녀들의 예언에 따라 벌어지는 사건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놀란은 이 두 작품을 모방해 친구 킬패트릭을 처형함과 동시에 그의 영웅적 면모를 승격시키는 두 가지 효과를 얻는다. ‘자기를 구원해 준 한편 자기를 죽음으로 인도한 빈틈없이 짜인 운명에 흥분한 나머지, 킬패트릭은 한차례 이상의 즉흥적인 연기와 대사들로 재판관이 작성한 대본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었다.’6 이로써 문학 속 역사적 사건은 문학으로부터 비롯되어 순환적이고 회귀적인 운명이 된다.
지나가듯 슬쩍 언급하기 때문에 지식이 깊은 독자일수록 더 많은 해석을 얻어가게 만드는 것이 암시적 상호텍스트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체스터턴과 라이프니츠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보르헤스는 체스터턴에 대해 에세이도 썼을 만큼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다. ‘체스터턴의 이야기 방식과 관련하여,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한다. “미스터리를 제시하고 악마적이거나 마술적인 설명을 제안하며 마침내 이 세상의 다른 것으로 그것을 대체한다.”7 이야기 속에서 라이언 역시 킬패트릭의 죽음을 미스터리로 보고 이를 풀기 위한 ‘마술적인 설명’을 찾는다. 바로 문학과 역사 사이의 순환하는 흐름이다. 체스터턴에 대한 글을 쓰고 여러 번 인용할 만큼 깊은 감명을 받은 보르헤스의 이 작품은 체스터턴의 ‘「부러진 검의 의미The Sign of the Broken Sword」’와도 비슷하다. 또한 라이프니츠의 예정 조화설에 대해서도 보르헤스가 여러 번 문학 속에서 다루고자 하는 순환 교리의 해석을 얻을 수 있다. 더 소개한다면 나의 고유한 생각이 아니라 송병선의 연구 내용을 읊는 꼴이 될 테니 자세한 해석을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꼭 그 논문을 확인하길 바란다.
명시하거나 암시하지 않았지만 독자가 자발적으로 추측하는, 추측적 상호텍스트로써 킬패트릭, 놀란의 이름에 주목해보자. 킬패트릭은 아일랜드의 상징 그 자체이며 놀란은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다룬 영화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고 볼 수 있다. 놀라운 점은 이 소설이 한글 번역판으로 고작 일곱 페이지에 불과한 초단편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역자가 친절하게 각주를 주렁주렁 달아준 덕분에 페이지를 조금 넘어섰기 때문이지 그것만 아니라면 여섯 페이지로도 충분하다. 짧은 분량 속에 거미줄이 어찌나 빼곡하게 들어찼는지, 작품보다 연구 논문이 더 길어져버렸다. 다층적 이야기 구조에 수많은 상호텍스트가 연결되어 하나의 작품을 읽기 위해 수많은 작가와 작품과 사상을 공부해야 한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보르헤스의 매력이다.
두 편 정도 읽고 나면 보르헤스 소설에 대해 몇 가지를 느끼게 된다. 매우 짧은 이야기라도 술술 넘길 수 없다는 것, 일반적이고 익숙한 인물을 주인공 삼아 흔해빠진 인간사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해진다는 것 등등. 두 편째 소개하고 나니 고민이 더욱 커졌다. 일곱 편을 전부 다뤄야할 지 그냥 여기서 포기할 것인지.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있다면 댓글 한 번만 달아주길 바란다. 댓글 단 사람에게는 글방 프로그램 무료 참여 기회를 드리겠다.
1. 송병선, 2015, <상호텍스트성 관점으로 보르헤스의 작품 읽기: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주제」를 중심으로, 이베로아메리카 (17), p.3
2.보르헤스, 『픽션들』, p.161
3.송병선, 2015, p.8
4.보르헤스, 『픽션들』, p.158
5.송병선, 2015, p.8
6.보르헤스, 『픽션들』, p.163
7.송병선, 2015,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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