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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0612 일 / 제비는 적에게 선물받지 않기 / 긴개 본문
식당에서 주문한 메뉴가 나오기 전까지 무엇을 하며 기다려야 좋을지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을 오랫동안 찾아왔다. 카페라면 한결 수월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곳만의 재미있는 인테리어를 하나하나 뜯어볼 수도 있고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뒤적거려도 된다. 애초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각오를 하고 가는 곳이기도 하고. 그러나 오로지 식사를 위해 방문한 식당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 주어지는, 짧다면 짧고 (어색한 사람들과 함께라서)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뭘 하면 좋을까. 함께 온 이들을 위해 수저를 놓아주고 컵에 물을 따라 나눠주며 한바탕 부산을 떨고 난 뒤에도 여전히 음식 소식은 요원하다면?
나는 그 답을 에밀 출판사의 『놀라운 리얼 종이접기 2 - 하늘을 나는 생물 편』에서 찾았다. 사각주머니*를 미리 접어 셔츠 주머니나 가방에 넣어두었다가 식당에서 슥 꺼내 백조나 제비 등을 한 마리 접으면 된다. 종이 한 장이 제비의 날개와 부리, 꼬리깃으로 변하는 과정을 기억에 따라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자아내는 과정은 매혹적이다. 동행인에게 제비 접기를 알려주며 함께 하늘을 날 준비를 해도 된다. 접은 제비는 도로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어린이를 만났을 때 선물하자. 종이로 만든 동물은 보통 잘 먹히는 선물이니까 참고하시라.
이 종이접기는 지하철에 서서도 할 수 있고 재미없는 발표를 들을 때 해도 좋다. 예쁘지만 쓸모없는 종이 조각을 활용하기에도, 우연히 만난 어린이를 기쁘게 하기에도 딱이다. 틈만 나면 핸드폰을 켜서 원하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못할 정보를 훑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현재를 온전히 참아내지 못해 도피하는 행동이라는 점에서는 핸드폰 사용과 다를 게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지루함을 오롯이 겪어내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는 어떤 경지가 있다는 말에는 동의하는 바이지만, 나같이 조금이라도 시간이 남아돌 때 좀이 쑤셔 미칠 것 같은 사람이라면 차선의 선택이다.
게다가 내 멋대로 흘리고 다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종이를 접는 동안 모종의 일로 화가 나있었다면 그 화는 내 속에서 손가락 끝을 타고 남김없이 종이로 흘러들어 간단다. 개운해졌다면 종이를 태우거나 찢어버리면 된다. 계속 가지고 있으면 좋지 않다. 반대로 즐겁게 접은 종이에는 강한 힘이 만들어져서 지니고 다니면 또 즐거운 순간이 생긴다. 그러니 즐겁게 접은 제비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씩씩거리며 접은 제비는 얄미운 사람에게 슬쩍 쥐어주자.
*
무엇이든될수있는기본형접기상태.종이크기가1/4이되어가지고다니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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