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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0424 월 / 물생활, 테라리움, 그리고 테라포밍 / 긴개 - 『테라포밍, 두 번째 지구 만들기』 서평 본문
인공 생태계는 묘한 쾌감을 준다. 몇 년 전 물고기 키우기, 일명 ‘물생활’에 빠져든 적이 있다. 물생활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일명 ‘니모’로 널리 알려진 흰동가리 같은 바닷물고기와 산호 등을 키우는 해수파가 있고, 구피 같은 민물고기와 수초 등을 키우는 담수파가 있다. 둘은 어항 세팅과 장비, 투입되는 생물, 관리법 등이 그 물맛만큼이나 상이하다. 보통 초보들은 담수, 자신만만한 사람들은 해수에 도전하는데, 입문 코스라는 이미지가 있어도 담수항을 만만하게 봐선 안된다. 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는 수초항도 마찬가지.
어항 속 인공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면 우선 어항에 흙을 깔고 물이 ‘잡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는 장비와 약품 등을 사용하여 수돗물이 물고기가 살 수 있는 성질을 갖추도록 만든다는 말이다. 수초나 산호 등도 자리를 잡고 나면 조심스럽게 물고기를 넣는다. 물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으면 물고기는 금방 죽어버리기 때문에 사전 준비 과정에서 심혈을 기울여야 시간과 돈을 크게 아낄 수 있다. 이 때문에 물생활에 빠져든 사람이라면 물속 환경이 잘 유지되는데 필요한 여과, 환수, 산성도 등의 물리적, 화학적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해수는 담수보다 조성이 어려우며 이 때문에 비교적 저렴하고 생명력이 강한 흰동가리를 물잡이 상태 확인용으로 맨 처음 투입하는 경우가 많다. 흰동가리가 죽으면 물의 성분을 다시 조성하고, 흰동가리가 살아남으면 그제야 다른 물고기를 넣는다. 나는 귀여운 흰동가리를 허망하게 죽이게 될까 봐 해수항은 엄두도 내지 않았다.
작은 생태계의 주인으로 어항 앞에 서서 새우가 3차원 이동하는 모습, 물고기가 새끼를 낳는 모습, 수초가 풍성하게 자라는 과정 등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뿌듯함과 신기함, 황홀함 등이 밀려온다. 만약 신이 있어 지구와 이 생태계를 만들었다면 우리를 내려다보며 이런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정말 콸콸 흘러가기 때문에 물생활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래전부터 ‘물멍’*이라는 은어도 통용되었다.
애써 키운 물고기가 죽자 점점 흥미를 잃어 물생활은 접게 되었지만 작은 유리공간 속 생태계는 여전히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번에는 유리병 속 작은 숲, 테라리움에 흥미를 느낀 것이다. 테라terra는 흙, 리움rium은 장소, 방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유리 어항 속 바다와 강, 호수 등을 만든 것이 아쿠아리움이었다면 유리병 속 작은 숲, 정원을 만드는 것은 테라리움이다. 분갈이하고 남은 재료로 집에서도 몇 번 만들어 보았던 테라리움을 이번에는 친구의 작은 식물원에서 좀 더 전문적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후암동의 이 작은 식물원*은 특이하게도 이끼와 고사리를 주로 다룬다. 그들의 생명력과 범용성에서 매력을 느꼈다나. 테라리움 만들기의 순서와 재료 등은 속에 넣을 생물의 성질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이 역시 어항 꾸미기와 흡사하다. 우리는 먼저 물이 썩지 않도록 활성탄과 아마존소일을 가장 아래에 깔았다. 그 뒤 진흙을 작은 덩어리로 떼내어 스프레이 등으로 물을 살짝 뿌려준 뒤 그 위에 얇게 펴 발랐다. 그리고 어렸을 적 놀이터에서 흙으로 성을 만들던 때처럼 내가 상상하는 지형을 추가로 덧붙였다. 손으로 만든 지형이 쓸려내려가지 않도록 이끼와 작은 지피식물* 등을 심고 물이 살짝 고이도록 뿌려주고 나니 완성이었다. 이끼 위주의 테라리움 외에도 취향에 따라 모래와 돌, 틸란드시아 등을 넣는 등의 수많은 변주가 있다.
두 손 안의 작은 숲을 이리저리 조명 아래 비춰 보니 이 속에 콩벌레나 민달팽이를 넣어도 멋질 것 같았다. 서양에서는 각종 벌레와 버섯, 썩은 나무 등을 넣기도 하더라고. 여기에 햇빛을 쐬어주면 수분이 증발한 뒤 뚜껑에 맺혀 벽을 타고 흘러내려 유리병 안에서 돌고 돈다. 수분과 햇빛과 온도의 유지가 작은 공간에 갇힌 식물과 흙을 살아있게 만든다. 이 유리병을 크게 만들어 사람도 들어갈 수 있도록 한 것이 온실이 아닌가. 지금은 좁은 집에 정원을 들여다 놓고 감상하기 위해 테라리움을 만들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환경오염이 더욱 심각해진다면 인류는 도시 크기의 온실을 만들어 그 속에서만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아쿠아리움, 테라리움 다음으로 떠올린 것은, 그래서 테라포밍*이다.
어린이책 『테라포밍, 두 번째 지구 만들기』*는 인류가 오염된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에서 살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자연환경을 조성하는 과정을 그린다. 태양계에서 인류가 거주할만한 행성을 찾는 것도 현재로서는 요원한 일이지만, 만에 하나 기온과 중력이 지구와 비슷하고, 방사능 물질이 없는 행성을 찾는다면 어떨까.
우선 지구는 내핵-외핵-맨틀-지각으로 이어지는 구조 덕분에 천연 자기장을 생성해 인류에게 해로운 우주 방사선을 막아주지만 다른 행성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때문에 전자석을 단 인공위성을 행성 궤도에 띄워 인공적으로 자기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테라포밍의 첫 단계이다. 그다음으로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운석을 막도록 대기를 만든다. 날아가던 혜성을(무사히 잡아올 수만 있다면) 녹여 물과 이산화탄소를 구한 뒤엔 흙을 조성하고 식물을 심어 산소를 만든다. 이제 인류가 이주할 수 있다. 짧게 옮겨 쓰니 가능성 있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두 번째 지구 만들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책을 덮으며 깨닫게 된다.
작은 유리병 속에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은 취미의 영역에서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살 생태계를 새로 조성하는 것은 우리의 목숨을 담보로 테스트한다는 점에서 누구도 즐길 수 없을 테다. 누가 나서서 인류의 흰동가리가 되려 하겠는가.
*물멍: 물 보며 멍 때린다’를 줄여 말한 것.
*후암동의 이 작은 식물원: 청미래덩굴(smilax_seoul)
*지피식물: 地被植物 ground cover plant : 지표면에 생육하면서 지면을 피복하는 식물을 말한다. 지피식물은 수목의 하부에 식재하여 경관을 조성할 때 또는 경사면에 지피식물을 심어 표토 유실의 보호 조치로 이용된다. (한국잔디연구소-잔디용어사전)
*테라포밍: terraforming,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및 위성, 기타 천체의 환경을 지구의 대기 및 온도, 생태계와 비슷하게 바꾸어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위키백과)
*『테라포밍, 두 번째 지구 만들기』: 박열음, 길벗어린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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