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0417 월 / 태양계를 항해하려는 당신을 위하여 / 서평 - 『태양계가 200쪽의 책이라면』, 김항배 / 긴개 본문

2021-2023 긴개

0417 월 / 태양계를 항해하려는 당신을 위하여 / 서평 - 『태양계가 200쪽의 책이라면』, 김항배 / 긴개

긴개 2023. 4. 18. 00:24








우리의 머리 위를 덮은 저 검은 하늘은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기 전, 공룡의 멸종 전, 지구에 물이 생겨나기 전, 태양이 붉게 타오르기 전부터 그곳에 있었다. 저 암흑의 가장자리는 무한으로 펼쳐져 있다. 그 끝을 가늠하기 위해 아늑한 종이 위에서 10개의 아라비아 숫자를 이리저리 굴려보겠지만 절대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우주는 그 자체로 영원한 시간이자 인류가 만든 모든 신의 공통분모이다. 지구 한 톨에도 무한의 가능성이 담겨 있을진대 옛사람들이 감히 지구 밖을 상상하는 것은 그야말로 신의 권능을 넘보는 엄청난 일이었으리라.

1977년 지구를 떠난 인류의 전령들은 삼십여 년이 지나서야 겨우 태양풍의 영향이 미치는 경계를 벗어났다. 돌아올 계획 없이 떠났던 보이저 1호와 2호는 이제 인류보다 외계생명체와 더 가까워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이 사람들은 계속해서 우주 망원경을 쏘아 올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우주의 비밀을 벗기고 있다. 2021년에 지구를 떠난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은 아름다운 고화질 천체 사진들을 전송하며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우주는 시시각각 인류와 가까워지고 있다. 이때 아직도 ‘수금지화목토천해명’ 단계의 태양계 지식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면 우주 탐사가 불러온 전 세계적 환호 속에 소외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래서 충실한 전령 보이저 1,2호가 떠나간 길, 최첨단 과학 기술의 집합체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비추는 길을 따라 태양계를 천천히 항해해보고 싶은 마음이 슬몃 고개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입자물리 박사 김항배 교수의 저서 『태양계가 200쪽의 책이라면』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여러모로 친절하다. 오랫동안 우주와 물리를 연구한 전문가임에도 대중의 눈높이에서 설명하려 노력한다. 태양계에 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태양과 행성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아마 과학관이나 인터넷 등에서 접한 태양계 모형 때문일 텐데, 실제의 태양계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는 과정에서 행성들의 크기 비례와 궤도반지름의 비를 동시에 반영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커다란 행성들이 가깝게 붙어있는 듯한 잘못된 정보를 심어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태양계가 200쪽의 책이라면』은 책 한 권이 태양계의 축소 모형 그 자체가 되었다. 책 속의 페이지는 실제 행성 간의 거리를 축소한 지표이며 따라서 행성과 행성 사이의 공간은 실제 책에서도 빈 면이 되었다. 언뜻 두꺼워 보이는 이 책은 빈 면이 많아 상대적으로 과학책 독서의 부담을 덜어주고, 훌훌 책장을 넘기며 시원한 기분도 느낄 수 있으니 이 또한 친절한 면모라 할 수 있다. 물론 전부 빈 면으로 둔 것은 아니고 해당 행성에 대한 정보도 함께 실어놓았으니 그야말로 태양계를 항해하려는 사람을 위한 실질적인 안내서라고 볼 수 있다.

p.12
‘이 책에는 천체들 사이의 거리가 실제 거리의 1,000억 분의 1로 축소되어 있습니다. 반면, 태양과 행성의 크기는 실제 지름을 10억 분의 1로 축소한 크기입니다. 따라서 태양과 행성들의 크기를 기준으로 책을 본다면, 거리는 책장 한 장을 넘길 때 100장을 넘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반대로 천체들 사이의 거리가 책과 같다고 보면, 책에 있는 태양과 행성들의 크기를 100분의 1로 생각하면 됩니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태양계를 항해하는 동안 이제껏 해본 적 없던 질문이 마구 피어나는 것이 즐거웠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은 작은 암석 행성인 반면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왜 기체와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대 행성일까. 행성은 동그란 모습인 반면 작은 위성이나 소행성들은 왜 울퉁불퉁하게 생겼을까. 또 천왕성에는 어떻게 수천 도나 되는 뜨거운 얼음이 생겼으며 혜성의 흰색, 푸른색 꼬리색은 각각 어떤 성분을 나타내는 걸까. 이런 것을 궁금해하는 스스로가 신기하면서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해했을 때는 마음속 동굴에서 보물을 발견한 듯한 쾌감이 솟았다. 우주를 탐사하는 과학자들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맛본 것이리라.

p.9
‘대학에서 상대성이론을 배울 때 참고도서로 마이스너, 쏜, 휠러가 공동으로 쓴 『중력 Gravitation』이란 제목의 책이 있었습니다. 큰 판형에 1,300쪽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책으로 무게감이 상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은 중력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니라 중력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라고들 했지요. 마찬가지로 이 책이야말로 태양계에 대해 알려 주는 책이기에 앞서 태양계를 느끼는 책이었으면 합니다.’

영원의 망망대해를 항해하려는 용감한 당신이 이 책과 함께 암흑 속에서도 외롭지 않게, 더 현명하게 길을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