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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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023 긴개

0411 월 / 신규 가구 구매 요청 건에 대한 답변 / 긴개

긴개 2022. 4. 18. 23:04

 



 

 

 

 “가구는 주워다 쓰는 거 아니래요. 특히 나무로 된 건.”

 

 

 우리집을 휘- 둘러보며 애인이 한 말이다. 왜 주워다 쓰면 안 되지? 내다 버린 사람은 더이상 알 바가 아니고, 한 가구를 여러 사람이 오래도록 사용하는 편이 환경에 도움될테니 오히려 권장해야 할 만한 태도 아닌가? 가구를 주워다 쓰면 안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싶어 구글에 검색해보니 대부분 미신 이야기 일색이다. 이런 이유라면 상관없지. 남이 살던 집에서도 살면서 남이 쓰던 가구는 못 쓸 게 뭐람. 물론 침대 매트리스 같은 건 패스. 

 

 

 혹시 곤충들이 나무 결 사이사이에 쏙쏙 박혀 함께 이사오기 때문인가? 음흉하게도 그 속에다 알을 낳아두기 때문인가? 그런데 누군가 그것을 내다버리고, 내가 주워오는 그 짧은 사이에 곤충들이 그렇게 잽싸게 뛰어와 알을 낳을 수 있나? 도심 주택가 거리를 쏘다닐 곤충이라면, 어렵지 않게 집으로도 침투해서 이미 알도 낳고 살림도 차리고 오래오래 행복했을텐데. 그러니까 알이나 애벌레 이야기도 크게 설득력이 없다. 

 

 

 아직까지는 그 말에 순순히 따라주고 싶지 않다. 타당한 이유를 더 듣고 싶다. 혹시 주워온 가구가 예쁘지 않아서일까? 길에 내버려진 가구가 내 마음에 쏙 들게 예쁜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예쁘지도 않고 낡은 가구를 들여서 집의 우아한 분위기를 해치는 것이 우려되어서 일까?그런 이유라면 찬성하고 싶다. 그리고 곧바로 신나게 새 가구를 사러 달려나가고 싶다.

 

 

 이러한 일련의 사고 경로를 곧바로 내뱉어 버린다면 애인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지. 우선 애인이 말을 꺼낸 근거를 더 들어보기로 한다. 그랬더니 글쎄 ‘예전부터 손겸 씨가 모아놓은 가구들이 있는 집에서의 저는 어쩐지 이방인인 것 같아요. 앞으로 같이 지낼 시간이 많아진다면 함께 고른 가구가 있는 공간에서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렇게 말을 했어요.’ 라는 취지의 말을 하지 뭐야 글쎄 어머어머. 흥분한 탓에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는 앞으로 살면서 두 번 다시 멋대로 가구를 주워오지 않을래요. 길에 우두커니 놓인 등나무 의자 쳐다도 안 볼래요. 지금 집에 있는 스트릿 출신 가구들 당장 내다버릴래요. 이케아든 코스트코든 달려가서 수건을 보관할 벽장이라던지, 흰 색의 심플한 책장이라던지, 새 침대, 의자 따위를 전부 결제해버릴게요. 디자인은 당신이 고르세요. 길에서 주운 가구 쓰던 내가 뭘 고르긴 고르겠어. 그리고 당신이 고른 가구들이 내 집에 가득해지면 당신도 그 사이에서 안락하게, 느긋하게 아주 오래도록 파묻혀 지내라고. 그 가구들마저 헌 것이 되어버릴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