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0321 월 / 닥터피쉬를 사냥한 고우스트 / 긴개 본문

2021-2023 긴개

0321 월 / 닥터피쉬를 사냥한 고우스트 / 긴개

긴개 2022. 3. 21. 23:00





친구가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다기에 들어가보니 이미 많은 상품이 품절된 후였다. 오픈하자마자 들어온 건데 어떻게 벌써 팔렸지? 몇만 명의 팔로워가 있는 인플루언서나 되어야 완판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은가? 의아해하던 중에 어떤 분이 그런 품절 전략이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인기가 없던 브랜드라도 품절된 상품이 많은 척하면 사람들이 그걸 사고 싶어 사이트를 들락날락하게 된다는 전략.

정말 그래서일까? sold out 회색딱지가 붙은 옷들은 그렇지 않은 옷보다 내게 더 잘 어울릴 것 같고, 저 옷이 없으면 당장 내일부터 입고 나갈 옷이 없을 것만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 친구네 사무실에 직접 쳐들어가서 저 옷을 뭉텅이로 훔쳐 나와야만 발을 뻗고 잘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 어쨌든 그 전략이 내게 큰 효과가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포켓몬빵 그 새기도 마찬가지다. 재출시 소식에 반갑고 설렜다. 어렸을 적 좋아했던 로켓단 초코롤은 커서도 종종 먹고 싶었다. 지금도 초딩 때처럼 맛있게 느껴질까? 사회에 찌든 어른이 되어 맛 없게 느껴지면 어떡하지. 달콤한 추억이 바래는 것은 아닐까 떨리기까지 했다. 드럽게 편식하던 초딩 입맛에 아찔한 즐거움을 선사했던 그 빵. 여러 개 사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어떤 포켓몬 스티커가 나오는지 함께 까볼 생각에 신이 나서 편의점이 보일 때마다 들어갔는데 아뿔싸. 이상하게 빵 진열대마다 빈 공간이 너무 많다. 이 편의점에도, 저 편의점에도, 설마 여기도, 혹시 저기는? 처음의 설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편의점이 보일 때마다 후닥닥 들어갔다가 이를 아득바득 갈면서 나오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놈의 포켓몬빵을 단골바 사장님들도 주고, 직장동료와도 나눠먹으려던 대범한 마음은 점차 방구석에 산더미같이 빵을 쌓아놓고 매일 은밀하게 하나씩 까먹는 골룸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어중간하게 남아있던 동심이 집요한 욕망으로 산화되었다. 그러나 더러운 마음에 성적이 미치지 못해 고작 보라색 고우스트 하나 건진 것이 전부였다. 발길 닿는 편의점마다 들어갔지만 신용카드는 맥도 쓰지 못하고 돌아나와야했다. 다들 얼마나 부지런한거야. 나중엔 웃음이 나왔다. 우리 코딱지들 돈 많이 벌었구나.

그러니까 뭐든 품절되기만 하면 더 인기있어진다 이거지. 애인을 내게 영원히 종속시키기 위해 이런 전략을 쓰는 건 어때.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양다리를 걸치고 최우식에게 청혼반지를 받아버리는 거야. 그럼 포켓몬빵을 가격도 모르고 결제한 나처럼 안달난 애인이 덥썩 나를 물지 않을까. 아니, 이런게 바로 사기꾼의 마음이지. 암 안될 일이지. 또 우리 애인이 타인의 수요에 따라 덩달아 나를 원하는 그런 바보는 아니지. 전략으로 사람을 얻으면 안되는 거야. 이런 글러먹은 생각. 그런데 또 사랑이라는게 덫을 놓고 활을 쏘며 잡고 잡아먹히는 사냥의 행태와 닮은 부분이 있잖아. 순진한 애인이 내 미끼를 콱 물어버린 것은 지 탓이지. 그러게 정신을 잘 차렸어야지. 어리버리하다가 그만 내 욕조에 풀어놓은 닥터피쉬가 된 것이지. 영원히 그 속에서 내 몸의 때를...

포켓몬 도감 3세대에 따르면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고우스트가 손짓으로 불러도 절대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한다. 그랬다간 날름 핥아져 생명을 빨린다.



고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