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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아내의 화요일_김미아 (24.6.25) 본문
오늘 저녁에는 마주치려나 하고 퇴근했는데 눈치를 보니 아직은 무리인가 보다. 아내의 눈을 볼 수가 없다. 하루 세 번 넘게 열리던 카톡창이 이틀째 조용하고, 필요한 말만 할 때도 깍듯하게 존대를 하고, 말할 때마저 그 눈이 벽 모서리나 창 밖 즈음을 향하고 있다면. 우린 싸운 거다. 아내는 화난 거다. 8년의 아는 사이, 7년의 연애, 13년의 결혼 기간을 통해 나는 아내를 알만큼 안다. 기분이 상하면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눈을 보지 않는 것은 아내의 오래된 습관이다.
어느 다툼이나 그렇듯, 나도 할 말이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 보면 내가 잘 못 한 것 같다. 잘못했다. 요즘 갈등의 주제는 아이의 게임 시간이다. 어제도 그랬다. 퇴근하고 돌아와 선풍기 앞에 늘어져 있는 내게 아이는 방과 후 교실에서 만든 로봇을 보여주며 조잘조잘 이야기하더니 끈끈한 내게 안기며 딱 15분만 게임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그때 딱 잘라서 안 된다고 했어야 했는데. 어제 따라 품을 파고들며 애교를 부리는 아이가 귀엽기도 했고, 덥다 덥다 해도 아직은 살만한 6월의 저녁 바람이 시원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틀만 더 출근하고 금요일 휴가로 동료들과 창원 여행 갈 생각에 마음이 들떴기도 해서, 아이에게 게임 시간을 준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화근이었다. 아이의 주당 게임 시간을 같이 정했으니 임의로 시간을 줄이거나 늘리지는 말자고, 부모가 서로 다른 소리를 하지는 말자고 아내가 여러 차례 이야기하긴 했다. 내가 몇 번 풀어준 전적이 있기는 하다.
아내의 주의가 떠오른 것은 아이가 다리를 동당거리며 막 게임을 시작했을 때였다. 아차 싶어 부엌의 아내 쪽을 보니 이미 상황을 파악한 듯 입을 꽉 다물고 저녁 준비에만 열심이다. 우리 부부의 싸우는 양태 중 하나가 이상하게 싸울 때 더 근면해진다는 점이다. 더 이상 책 잡힐 빌미를 주지 않으려인가 평소에는 게으름 피우며 안 할 일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상대방이 하면 나도 놀고 있을 수만은 없어 일거리를 찾아 하다 보면 집이 깨끗해지는 괴이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아직 씻기 전이기도 하고 마침 재활용 버리는 화요일이라 나는 부엌 쪽의 눈치를 보며 재활용 쓰레기를 끌고 집을 나섰다.
아내의 퇴사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에는 아이만 먹여 재운 후 늦은 밤 배달 음식에 각자의 직장 이야기를 곁들인 반주 시간이 정겨웠는데, 이젠 집에 가면 세 식구가 먹는 저녁상이 떡하니 차려져 있다. 건강을 생각한 나물에 샐러드에 온통 야채 투성이긴 하지만. 아내가 직장을 다닐 때는 주로 내 차지였던 재활용품도 매주 정리되어 있고 몇 년 내내 방치되어 있었던 집안 구석구석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이의 수학과 영어 가르치는 일을 자신의 가장 큰 책임으로 삼는 눈치였다. 동네 아이들 다 가는 학원을 안 가겠다는 아이라 그 일은 아내의 퇴사 후 책임으로는 맞춤했다. 공부 외에도 아내가 아이랑 보내는 시간이 월등히 많아지면서 아내는 이른바 주양육자가 되었다. 그 말은 아내가 세운 큰 틀이 우리 집의 제일 규칙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자주 어긴 것 같다.
아내는 특히 아이의 게임 시간에 엄격한 편이었다. 한번 정한 원칙은 쉽게 안 바꾸는 우직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아이는 아내의 퇴사 전에도 게임을 했고 그때는 이렇게 엄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슬쩍 물어보니, 아이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다. 엄마는 특히 화요일에 좀 무서워, 라며 아이는 게임기에서 눈도 안 떼고 대답했다. 화요일은 아내의 글쓰기 마감일이다.
화요일 오후까지 내야 한다며, 이상하게 화요일 밤을 자주 새웠다. 글쓰는 사람들의 마감일은 책이나 만화에서 보듯 원래 그렇게 밀리는 것인가 보다. 아내를 글 쓰는 사람으로 불러도 될지는 잘 모르겠다. 아내가 글방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4개월 전부터이다. 진짜 글방에 나가는 것은 아니고 수요일마다 줌으로 사람들을 만난다고 한다. 아내는 월요일 밤부터 잠을 설친 얼굴로 출근하는 나를 배웅하고, 화요일에는 다소 예민한 채 결국 밤을 새우고, 수요일에는 저녁 8시부터 글방에 접속했다. 나로서는 매주 사흘씩이나 같이 반주하고 수다 떨 아내가 없는 느낌이다. 아내가 글 써야 한다고 술을 안 마시니까 나도 마실 수가 없다. 게다가 매주 수요일마다 일찍 들어와야 하는데 사회생활하는 자로서 이것도 은근 신경 쓰인다.
아내가 퇴사를 결정할 때는 살짝 선수를 못 친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럴만하다고 생각해서 동의했다. 그 당시의 아내는 매일 잘 때마다 신음소리를 내고 잠꼬대로 싸우기까지 했다. 술 마시고 방바닥에 누워 우는 것도 봤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 병 걸리겠다 싶을 즈음 퇴사를 결정했고 사람 건강한 것이 제일이지 라는 마음으로 아내의 퇴사를 함께 했다. 나는 아내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도록 나름 배려했다. 결혼 전 리어카를 끌어서라도 너 하나 못 벌어 먹이겠냐고 소리쳤던 것도 지켜야 했다. 아내 하나는 아니고 아이까지 있긴 하지만, 마음은 같다. 우선은 쉰다 했고 쉬라 했지만, 돈 버는 일을 쉰 적 없던 아내가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당장 내가 그 처지라고 하면 들어오는 돈 없이 사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남자라 더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내는 내 출근시간에 맞춰 새벽에 일어났다. 원래도 근면한 사람이긴 하지만,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아침을 챙겨준다. 하루에도 세 번 이상 열리는 카톡창에 나 출근하고 애 학교 보내고 좀 쉬었냐 물으면 쉬었다는 답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퇴사 초기에는 집 정리할 것이 많아서, 다시 잠이 들기가 어려워서, 커피를 마셔버려서, 낮잠은 잘 못 자서 등의 이유를 대며 아내는 쉬지 않았다. 시간을 들여 집에서 묵은 것들을 정리해 버렸고, 냉장고에 어떤 식재료가 있는지 익숙해져 갔고, 볶음밥 같은 한 그릇 음식에서 반찬이 여러 개인 백반 스타일로 저녁을 준비했다.
솔직히 아내가 퇴사 후에 쉴 만큼 쉬고 나면 다시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취직하는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이과 출신인 나에 비해 문과인 아내는 기획하던 일을 오래 해서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겠거니 생각했다. 요리건 창업이던 뭘 해도 잘할 거라고 생각하고 응원할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 그것이 글쓰기일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글을 써보고 싶다는 아내 앞에 내 표정은 좀 이상해졌다. 아마 그랬을 거다. 글을 쓰고 싶다고 했지만, 작가가 되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글을 쓸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아내도 모르는 것 같다. 다만, 안 그래도 혼자 바쁜 사람이 더 바빠진 것은 맞다. 매일 아침 나와 아이를 차례로 회사와 학교에 먹을 것을 들려 혹은 먹여 보내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의 시간을 이용해 아내는 일주일에 두 번 일본어를 배우러 가고, 아르바이트로 하는 일을 하러 전 직장 동료를 한 번쯤 만났다. 그 사이사이 빨래와 본인 운동과 청소와 장보기와 재활용품 버리기 등을 주에 두어 번 정도 했다. 저녁 준비와 설거지는 매일 두어 번씩 했다.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이렇게 성실한 사람도 잘 없을 것이다.
거기에 글을 쓰기 시작하니 월화수는 꼼짝없이 글에 붙들려 있었다. 혼자 눈을 벽 모서리쯤 두고 못생긴 표정으로 생각하거나, 뭔가를 수첩에 끄적이다 벌떡 일어나 돌연 설거지를 하거나, 갑자기 핸드폰으로 게임을 했다. 언뜻 보니 테트리스던데, 게임을 하는 아내는 결혼 초인가 잠깐 보고 처음이다. 출근도 안 하는데 일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출근 걱정으로 초주검이 된 나와 술도 안 마셔주고)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가 수요일 저녁 열 시 반 정도에야 풀려나왔다. 그러니까, 글 쓸 때의 아내는 어딘가 저 편으로 가 버린 것 같았다. 돌아는 오는데, 이러다 안 돌아오는 것은 아니겠지.
월화수를 다 빼앗긴 것도 모자라, 나는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도 좀 그렇다. 그 동네 분위기를 모르니 무턱대고 맞장구를 쳐줄 수도 없고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다. 확실히 서로의 집까지 오가던 예전 직장의 오랜 동료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들어본 이야기로는, 아내보다도 많이 젊고, 주로 예술하는 쪽 사람들 같았다. 글쓰기 모임을 끝내고 나와서 아내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곧게 뒤틀리지 않게 보고 또 쓸 수 있지? 여기서 나만 배배 꼬였나?라는 말을 몇 번 했다. 아내는 개별 사람한테는 낯 가리고 거리를 심하게 두면서, 이상하게 일단의 사람들에게는 쉽게 마음을 뺏기는 편이다. 이번에도 그런 건지, 아무리 코로나 동안 비대면에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직접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과 몇 달째 매주 만나는 것도 범상치는 않은 것 같다. 어쨌든 아내가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그녀와의 대화하는 즐거움이 좀 더 줄어든 것 같다.
어떤 글을 쓸 건지, 왜 글을 쓰고 싶은 건지 한 번은 물어보고 싶고 그래야 할 것 같은데, 아직은 어렵다. 잘 모르겠다는 답이 나오고 바로 대화가 끝날 것 같아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아내를 잘 아는 처제나 장모님도 마찬가지로 못 물어보고 있다. 퇴사를 했는데도 매주 점심 한 끼 먹을 시간도 없다며 바빠하니, 앞으로 어쩔 건지 느긋하게 물어볼 수가 없다고 하신다. 그러게요,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을 썼나 보더라고요. 그것도 SF던데요? 처제의 대답이었다. SF라니. 장르물은 보지도 않으면서. 어린 시절부터 지금의 카카오페이지까지 오랜 시간 무협을 읽어온 내 눈을 이겨보라 할까. 아니, 그게 아니고.
뭘 그렇게까지 표현하고 싶고 남기고 싶은 건지, 암튼 예술하는 자들은.이라고 화가를 남편으로 둔 어머님은 그런 시선으로 당신의 딸이자 내 아내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것 같고, 엔간한 소설은 헐렁해서 못 보겠다며 독립 출판의 미래를 비관하는 처제도 이에 동의하며 의구심 어린 표정으로 저의 언니를 보고 있다. 나는, 남편이자 오랜 친구인 나는 아내의 글쓰기를 어떻게 봐야 할까.
오랜 기간 금융기관에서 일해온 생활인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좀 더 돈이 되고, 좀 더 현실가능한 일을 하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그간 해 온 일을 잘 우려먹을 수 있는 일이면 더 좋겠다. 좀 더 물러서서, 돈은 못 벌어도 되니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일은 안 하면 좋겠다. 될 때까지 할 일을 찾아야 해 더 이상은 중간에 그만둘 수 없어,라고 아내는 지나가듯 말한 적이 있다. 글쓰기가 그런 일인가? 될 때까지 하는 글쓰기라니. 끝없기로 치면 고시공부보다 더 하고, 창작의 고통이란 고통의 대명사급으로 유구하게 회자되던 일이 글쓰기 아니던가. 평소 무협만 읽는 나지만, 글쓰기의 끝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지도 의문이다. 문학상 수상을 하면 끝인가? 오히려 시작이고 매번 새로 이야기를 쓸 때마다 고통받지 않겠는가? 그 고통은 가족인 나와 내 아이도 함께 나눠져야 할 테고 말이다.
아. 모르겠다. 우선은 저 여성과의 이 길어지는 싸움을 종료하고, 날을 잡아 궁금한 것을 물어봐야겠다. 하지만, 질문이 이 눈피하기 싸움을 오히려 장기화시키진 않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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