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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산문_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_ 권뚱땅 (24.4.10) 본문
_2014년 재보궐선거
어제 선거 이후, SNS 채널들마다 비투표자들에 대한 비난일색이다. 손가락질로 반성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결국 변명들만이 난무하게 되고, 많은 경우에 소신 없는 추향을 빚어내지 않나. 욕 먹지 않기 위해 투표하고 욕 먹지 않기 위해 진영에 서는, 이런 것이야말로 더한 참극 아닌가.
대세는 편리하다. 책임은 머릿수 분의 일로 가벼워지고 등 뒤는 든든해진다. 사실 무관심한 게으름뱅이보다 시류를 등에 업고 그 권력을 본인 입가의 확성기로 삼는 사람이 더 비겁하게 여겨진 다. 종풍이미한 풀들은 어찌 이리도 쓸리는 소리가 큰 것일까.
반 보 앞서나갔다고 여기며 반 보 뒤의 이들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고 화내는 것만큼 무책임한 것도 없다. 정말 공동체의 양상을, 그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함께 끌어주지 못한 이도 늦된 이만큼 욕 먹어야 한다. 몽매하다고 비난한다고 해서 자신이 우위에 서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렇게 우월감을 맛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투표권을 행사함으로써 나름의 떳떳함을 확보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투표하지 않은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힐난하는 건 참 별로다. 게다가 비난의 논조가 온통 ‘나는 했는데 너는 안 했네?’ 투의, 이런 식의 선긋기야말로 무의미해 보여.
직접선거의 참의미를 이해했고 국가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면, 비난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기를.
_2024년 국회의원 선거 (총선)
제 몫의 권리를 행사하고 왔습니다. 돌아와서는 십 년 전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그 때도 투표를 끝마친 뒤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투표를 하지 않는 것 또한 큰 의미에서 하나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것이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무효표를 던지는 것이든, 단지 귀찮아서 선거장에 가지 않는 것이든 말입니다. 이 둘은 행동의 근거는 다르지만 매우 비슷한 함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편향된 구성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과 평균값이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 이 두 가지 진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우리는 덜그럭거리며 선거일을 지나 다음 날로 나아가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지지부진한 단계들이 쌓이면 또 다른 세계에 도달하기도 할 것이고요.
꾸역꾸역 미래로 나아가는 걸음에는 나 같은 사람의 속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늘 생각합니다. 아주 작은 것조차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생각을 한다는 것, 그 생각을 흔들림 없이 표현한다는 것, 그리하여 전체 득표율 중에 내가 끼친 영향이라는 게 고작 소수점 저 아래의 수치로 환산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무의미라고 여기지 않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제게 주어진 한 표의 가치입니다.
과반수의 승률을 가져간 후보에게 던진 한 표와, 지지율이 너무나 미미해서 득표 자체가 사표와 같다고 여겨지는 후보에게 던진 한 표의 의미를 달리 두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똑같이 전체 투표수 분의 일 만큼을 행사한 것입니다. 사실 저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거대 양당 체제가 매우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저와 지향이 비슷한 소수 정당들을 지지해 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것은 하나마나 한 투표라고, 어떨 때는 그것이 가장 유력한 모 정당을 지지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다름이 없는 세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소수점 아래아래아래일지라도 분명히 기록에 남는, 지지하는 힘을 믿습니다. 우리가 공평하게 한 표씩 나눠 가졌다는 것도 믿습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만이 소수 정당에 투표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이렇듯 제가 바라는 세상은 누구나 동등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작고 힘없는 소리라 할 지라도 말이지요. 그 안에 단 두 명만 있어도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이가 존재하는 것이니까, 썩 괜찮은 도모입니다.
선거에서는 승리만이 유효한 것이 아니고, 성패로만 따지는 개표에서 결국 어떤 표들은 백지 취급을 당해도 그것을 패배라고 생각할 수 없다고, 그리하여 우리는 제 목소리를 양껏 내면서 거대한 아우성으로 굴러가는 바퀴와도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때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조타는 느리고, 우리는 마치 표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겠지요. 멈춰있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습니다. 순향이든 역향이든 정지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어딘가에 닿게 될 것입니다. 그곳이 내가 원하는 쪽이기를 바라는 염원을 내가 쥔 한 표에 담을 뿐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참으로 소중한 권리입니다. 진정으로 동의합니다. 과거에 투표할 권리를 위해 싸운 이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 뜻 또한 숭고히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지는 않습니다. 나에게 쥐어진 투표용지를 보며 이것이 그들이 어떻게 이뤄낸 권리인데, 라는 생각도 딱히 하지 않습니다. 세계는 엇비슷하게 정해진 진화의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이고, 그 속도와 시기가 조금 다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같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 고귀한 마음에는 경탄하지만, 특별히 머리를 조아리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앞서 말한 제 낙관의 바탕일 것입니다.
담담하게 딱 일인분의 권리를 휘두른 날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좋은가 생각했지요. 나는 경제적으로는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일인분의 생산성을 갖추지 못한 인간임이 분명한데도, 과분한 내 몫이 있다는 게. 이것의 의미를 곰곰 생각하다보면 민주주의가 그저 허울 뿐인 주의, 멀고 먼 이념이 아니라 내 살과 맞닿은 실상이라는 것을 감각하게 됩니다. 물론 그 내막은 각자에게 다른 장면들로 영사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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