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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_ 정애의 충격_ 김미아 (24.3.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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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_ 정애의 충격_ 김미아 (24.3.21)

긴개 2024. 9. 21. 18:27

 
 
 
 
 
┃사람들이 다 한다는 거. 그러면서도 다 안 하는 척 한다는 게 너무 충격이었어.                                                                                                                                                  
 정애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대체 뭐가 충격이었다는 건지 나는 짐작이 안 돼 정애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얼굴에 비해 커다래서 하관의 날카로움과 강팍함을 눅이는 눈이 나를 장난기있게 마주한다.                       
 
 정애는 목 주변에 작은 프릴이 둘려 있고 하얀색 점 무늬가 잘게 흩어져 있는 속이 비치는 검은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작은 단추는 끝까지 잘 잠겨져 있었다. 저거 다 잠그려면 아침에 바쁘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물어봤다.                        
 
┃언니, 뭐가 충격적이었다고? 사람들이 다 하는 뭐? 
┃섹스 말이야.                       
 
 글 쓰기 숙제로 잠깐 볼 수 있냐는 전화에 정애는 지금 회사니 오라고 했다. 야근 중이라고 했다. 글 쓰기 모임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테헤란로에 들렀다. 늦은 밤에도 계속 움직이는 로비의 여섯 개 중 한 개의 엘리베이터에 올라 타니 누를 숫자판이 없어서 다시 내렸다. 로비 벽의 키패드에 층수를 누르니 그제야 나를 올려줄 엘리베이터가 등 뒤에서 문을 열어준다.                       
 
 34층에 내리니 회사 명판만 있고 바로 유리 자동문이었다. 전화를 하니 안 쪽에서 정애가 나와 문을 열어준다. 사람들이 다 퇴근한 줄 알았는데, 양 구석에 드문드문 사람들이 있었다. 어두운 사무실에 모니터가 켜진 곳은 야근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정애는 따로 문이 있는 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창가에 접한 정애의 방에서는 테헤란로를 달리는 차들과 건너편 높은 건물들이 잘 보였다.                                                                                                                                                   
 정애는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다 모니터 위로 얼굴을 든 나를 보며 슬몃 웃고 있었다.                       
 질문을 이어갔다.                        
 
┃섹스가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아니. 섹스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섹스를 한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고. 
┃사람들이 다 섹스하는게 충격이었다고. 언제 그렇게 느꼈어? 자세하게 말 좀 해 봐. 
┃그러니까, 대학교 때 처음 섹스를 했는데. 처음 몇 번은 뭐 그리 좋은 줄 모르겠더라고. 근데 어느 날 엄청 좋은 날이 있었거든. 강남역 비디오방이었는데. 그 땐 강남역이나 대학가에 비디오방이 엄청 많았어. 영화만 봤겠냐. 봄인가 여름인가 넘어가는 그 중간인가. 어두컴컴한 비디오방에서 영화는 기억도 안 나는데 뭔가 엄청 찌릿하게 좋았던 거지. 뭐 소위 오르가즘을 느낀건데. 아 이래서 사람들이 섹스섹스 그러는구나, 그랬지.                        
 
┃좋았구나. 근데 좋아서 충격적이었던거야?
┃음. 그것도 충격적이었지. 몸으로 그렇게 좋은게 뭐 또 있나? 없잖아. 근데 진짜 충격적이었던 건 좋았다는 것보다는 진짜 모든 사람들이 그런 걸 느낀다는 거 였어. 그 팝송에 그런 노래 있거든. Let’s Do It 이라고 미드나잇 인 파리에도 나오는 노래인데. 거기 가사에 보면 새도 벌도 샴 사람들도 게으른 해파리도 다 한다고. 물론 가사에서는 It이 Love 겠지만(웃음) 난 그 노래가 섹스를 말하는건가. 그렇게 생각도 되더라고.                        
┃사람들이 섹스로 오르가즘을 다 느끼는 것이 충격이었다는거네.                       

 

 
 그게 그렇게 좋은가, 난 모르겠던데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정애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정애는 곧바로 말할 것 같이 입을 열더니, 한참을 입을 살짝 벌린 채 말이 없었다. 뭔가 할 말을 고르느라 머리 속을 정리중인 것 같았다.                        
 
┃너한테 말하면서 다시 생각해봤는데. 더 충격인 게 있었어. 와 이게 말할 수록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 정확히 전달하는거 힘들구나. 일 할 땐 안 그런데 이건 어렵다 야.                        
┃감질난다. 뭔데? 말해봐봐.
┃그게 뭐냐면. 사람들이 그렇게 볼 거 못 볼 거 다 보여주고 시침 뚝 떼고 멀쩡하게 다닌다는 거였어. 그게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 같아. 와 어제 밤에 다 벗고 막 짐승처럼, 응 딱 이런 느낌이었어. 짐승처럼 막 그렇게 하고 저렇게 멀쩡하게 단정하게 엄숙하게 진지하게 아무일도 없었던 척 다닌다고? 저 아줌마도? 저 아저씨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한참 동안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아줌마 아저씨 얼굴만 열심히 봤지.                                                                                                 
                                                                                 
 지하철에서 열심히 아줌마 아저씨 얼굴을 관찰하는 정애 모습이 상상이 가서 나는 좀 웃었다. 평소 말이 많지는 않은데,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하는 말이 대체로 엉뚱해서 이번 과제를 받자마자 정애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점 찍어 놓기는 했다. 정애가 워낙 바빠 자주는 못 만나지만 만나면 언제나 홀랑홀랑 자기 속을 잘 보여주는 정애를 나는 좋아하고 편하게 생각했다.                       
 
 늦은 시간 다짜고짜 만나자는 나를 만나준 것은 고마웠지만, 살면서 가장 충격적인 것이 뭐냐는 질문에 미국 사람들이 트럼프를 또 대통령 만드려는 거, 본인이 아직도 결혼 못 한 거, 우리가 처음 동호회에서 만났을 때에는 이런 사이가 될 줄 몰랐는데 이렇다는 거 등등 답을 너무 많이 내놔서 나는 처음에는 좀 당황했다. 이 답들은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아니 그럼 이런 게 충격이 아니면 뭐야? 라는 반문으로 돌아와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 했다.                        
 
┃뭔가 금단의 열매나 선악과 먹은 인간이 느끼는 충격 같은 건가?
┃좀 그런 느낌인 것 같아. 그 날, 그렇게 생각하면서 밖에 나왔는데 세상에 엄청 밝더라고? 완전 다른 세계로 건너온 것 같더라. 어두컴컴한 비디오방에서 환한 강남대로변에 나온 것도 그랬지만, 뭔가 시공간이 다른 곳으로 건너온 것 같았어. 어른이 된 느낌이랄까, 어른들의 비밀을 알아버린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도 시침 뚝 떼고 앉아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커피나 마셨지. (웃음)                        
┃그런 충격은 그 이후로도 계속 들었어?
┃아니, 금방 사라진 것 같아. 더이상 충격은 아닌데 그날 충격을 받았던 것은 꽤 선명하게 기억나. 오늘 너한테 질문 받고 생각하니까 더 그러네.                       
 
 정애와의 인터뷰를 굵고 짧게 마치고 나는 그 건물을 내려왔다. 정애는 아직 일이 남아 두어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려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만 해도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 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충격이라는 것은 매우 사소한 일에도 쓰이지만, 오늘 정애는 정애라는 사람의 본질을 바꾼 충격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나는 이야기를 다 들은 지금도 정애의 그 당시의 충격을 고스란히는 공감할 수는 없다. 나라면 어떤 답을 냈을지 지금부터 집에 가면서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