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단편소설] 우파국 김과장 / 긴개 / 23.07.30(일) 본문

2021-2023 긴개

[단편소설] 우파국 김과장 / 긴개 / 23.07.30(일)

긴개 2023. 7. 31. 00:25

 
 
 
 
 
 우파국에서의 첫 일기는 2079년에 쓰였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내게는 그동안의 일기를 시간 순서대로 꺼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 말고는 달리 가질 수 있는 취미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발령 초반의 일기들에서는 당시의 생동하던 감정들- 혼란, 흥분, 걱정 -이 매 장마다 폭발하고 있다. 신체가 젊었던 만큼 마음도 팔팔했다. 그러다 오 년 정도가 흐른 뒤에는 우주 생활에 지쳐 차갑고 건조한 우울이 우세하게 종이를 점령한다. 계약 만료를 일 년 남짓 앞두었을 때는 또다시 발령 초반과 비슷하게 감정이 요동쳤다. 지구로의 복귀를 기대하며 혼란과 흥분, 희망이 매일의 나를 일깨웠다. 결국 복귀하지 못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는 젊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이 유일한 자산이었다.
 
 서재의 동그란 창 밖으로는 암흑이 있다. 우파국 주위를 도는 인공조명이 사그라든 것을 보니 벌써 저녁이 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가장 가까운 행성도 손등의 점처럼 작게 보인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저 행성에서는 가끔 무엇인가가 반짝거리는 것만 같다. 아마 저 놈도 지루해 돌아 버리려나 보다. 미칠 것 같은 두 놈이 창문을 통해 이십삼 년째 서로에게 윙크를 건네고 있다. 반짝. 반짝. 반짝. 반짝.
 
 1977년 8월 15일,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전파망원경 ‘빅 이어’는 외계로부터 강한 주파수의 시그널을 72초 동안 수신했지만 그것을 해독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당시의 탐사 장비가 미흡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의 천문 연구에서 외계지적생명체 탐사에 대한 예산이 줄어들며 세계의 관심 또한 점차 감소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77년 시그널 이후 100년이 지난 2077년, 환경오염으로 인해 인류가 멸종 위기에 다다른 시기에 지구는 새로운 시그널을 받았다. 그것도 몇 초가 아닌 세 시간 분량의 충분한 시그널을. 
 
 지구의 군집형 다중지성 생명체인 인류가 외계 시그널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지는 이제 와서 길게 떠들 여력은 없다. 오랫동안 외계지적생명체를 탐사해 온 단체 SETI는 반가움과 경외로 백 년만의 두 번째 시그널을 환영했던 반면, 각국의 정부와 종교 단체, 시민들은 저마다 다른 이해관계를 들이대며 미지의 전파를 튕겨내려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극악의 추위와 더위, 호흡기를 매 순간 차야하는 심각한 미세먼지, 오염된 식수 등으로 코 앞에 닥친 생존의 문제에 도움을 주겠다는 친절한 외계의 손길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시간문제였다.
 
 시그널을 보낸 것은 우리은하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는 외계 행성의 생명체들이었다. 이들 역시 고유한 문명의 발달과 쇠락을 겪는 동시에 주거 행성의 오염으로 종의 존속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극적으로 엔트로피 재생 시스템을 발명하며 환경을 되살리고 종의 번영을 되찾았다. 메시지의 주된 내용은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 놓인 지구 생명체들에게 이 엔트로피 재생 시스템의 구축 방법을 안내할 테니 그쪽의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인류의 이해를 뛰어넘는 범우주적 오지랖이었다. 의심을 거두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머뭇거릴 여유란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들이 내린 동아줄을 붙들 수밖에. 
 
 이제 막 태양계 바깥을 탐사하기 시작한 인류가 우리은하 중심의 행성과 쌍방향으로 원활히 소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그들의 안내를 따라 2078년 여름에 우주 전파 정거장, 일명 우파국을 쏘아 올렸다. 천왕성 너머의 궤도를 도는 우파국은 지구와 외계 행성 간의 통신 거점이 되었다. 한두 세대 안에서는 살아서 도달할 수 없는 머나먼 행성에서 희미한 메시지를 보내온다. 우파국에서는 이를 수신해 정제하고 점검한 뒤 다시 지구로 보낸다. 2001년 쏘아 올려 화성 궤도를 돌며 지구와 화성 탐사 로버의 통신을 중개했던 마스 오디세이의 확장판이랄까. 지구에서는 이를 토대로 환경을 되살릴 시스템을 구축한다. 우리는 마치 작가와 독자 사이를 이어주는 편집자와 같았다. 혹은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음식을 한 숟갈씩 떠서 아이의 입에 넣어주는 엄마 같기도 했다. 그것들이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사실 우린 편집자나 엄마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무기징역수에 가까웠다. 우 과장은 우리가 용왕에게 바쳐진 심청의 현신이라고 했다. 
 
 나는 우파국에 파견된 초기 인력이었다. 우파국에 출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 년이다. 정확히는 십이 개월 하고도 칠 일이 더 걸린다. 그나마도 2000년대 초반에는 팔 년 가까이 걸리던 시간을 기적적으로 단축한 것이니 감지덕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긴 시간이다. 지루해 죽고 싶은 일 년 동안 우주를 깊숙이 찌르며 날아가면 근무지에 도착할 수 있다. 근무 시간은 십이 년이다. 우 과장은 차라리 십팔 년을 시키지 그랬냐며 투덜거렸다. 십이 년이 흐르면 지구로 퇴근하거나 혹은 우 과장 표현에 따르면 ‘당직’을 설 수 있다. 그것은 십이 년을 더 근무한다는 뜻이었다. 우 과장과 나는 첫 출근한 사람에게는 대리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십이 년 동안 대리로 불리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 둘은 그 악몽을 겪고도 또 출근하기로 했으므로 과장으로 진급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과장을 겪고 난 다음에도 또 출근하려는 미친 사람이 있다면 곧바로 상무로 진급시키자는 파격적인 합의도 보았다. 누구도 회장 자리를 넘봐선 안된다는 당부와 함께.
 
 이곳의 무료는 정겨운 악몽과 같다. 적응하고 나면 아늑하고 편안하지만 절대 무엇도 변하지 않는다. 보급품이 실리는 무인 우주선은 사람을 태울 때보다 비행시간이 두 배로 소요된다. 실시간 지구 소식은 최소량으로만 접할 수 있다. 인터넷은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우파국 안에서 최고의 유흥이란 독서와 영화 감상 등이 최선이었다. 신간 도서와 최신 영화, 최신 의류 등은 아득한 우주를 날아오는 동안 ‘신’, ‘NEW’, ‘hot’ 등의 수식어를 잃어버렸다. 도착한 도서는 새것이지만 낡아있다.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보급되지만 이미 빛이 바랜 듯했다. 우파국에서의 신선한 음식이란 지옥불 속의 아이스크림처럼 양립 불가한 서술이다. 마르고 단단하고 밋밋한 음식만이 보급선을 타고 날아와 창고를 채웠다. 물론 지구에서 인류를 괴롭히던 극한의 기후와 오염된 환경은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우파국 또한 극악의 환경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쾌적한 공간이라고 해도 오랫동안 갇힌다면 지옥에 가까워진다. 
 
 서재에 꽂힌 일기를 계속해서 뒤적거리던 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불쑥 열렸다.
 
“김 과장, 오늘 왜 월간 보고에 지각을 했나?”
“오늘따라 지하철이 밀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엔 지각할 것 같으면 아예 출근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요. 우리 회사에 당신 같은 사람은 나 하나로 충분해요.”
 
 그리고는 참지 못한 우 과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오늘 김 과장 프린세스 다이어리 데이였구먼. 방해 안 할게. 좀 있다 야식이나 먹자고.”
 
 2001년의 고전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가 보급선에 실려온 이후 우 과장은 내가 일기를 읽고 쓸 때마다 왕관을 씌워주는 시늉을 했다. 파견 인력 중 유일한 한국 사람인 우 과장과 내가 친해진 것은 우주선이 출발하기도 전부터였다. 우리에게 놀 거리란 대개 이런 식이었다. 영화나 책의 대사, 상황 등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감옥에서 무슨 일이라도 벌이고 싶다면 상상만이 해결책이다. 어차피 전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지구에 있든 우파국에 갇히든 간에 내가 보고 있는 현실이란 뇌가 감각을 멋대로 해석해 뽑아낸 이미지일 뿐이다. 그러니 내가 있는 곳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머릿속이다. 우리의 유희는 이 축축하고 물컹한 속을 서로 긴밀하게 연결한 데서 싹을 틔웠다. 
 
 우파국 파견이 확정되었을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은 아버지, 형, 그리고 어머니였다. 12년 동안 매달 수령할 보상금 액수를 들으며 어머니는 급기야 눈물까지 글썽였다. 우파국 파견 인력을 들먹이며 범지구적 영웅, 인류의 마지막 희망, 새 시대로의 디딤돌 같은 유치한 수식어가 뉴스를 도배할 땐 나야말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떠나고 싶지 않아. 우주에서 죽고 싶지 않아. 추방당하고 싶지 않아. 그러나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낼 순 없었다. 인공 폐를 달고 있는 막내가 병실에서 쫓겨나지 않을 방법은 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다행인지 우주선 탑승날 막내는 충분히 울어주었다.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꺽꺽 대며 우는 모습은 내게 유일한 보상이었다. 나와 헤어지기 싫어 우는 아이를 위해 내가 간다. 자청한 일이다. 그 착각은 위로가 되었다. 
 
 첫 파견이 끝나갈 무렵 가족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귀환을 만류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국가 반란 세력의 등장과 위험성을 긴급히 알려왔고 아버지는 심각하게 오염된 도심의 사진을 자꾸만 첨부해 보냈다. 형은 파견 전 나를 떠난 여자친구가 나의 고등학교 친구와 결혼한 소식을 알려왔다. 한동안 소식이 뜸하던 가족들이 갑자기 분주하게 소통하려 드는 모습에 환멸을 느꼈지만 지구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막내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어머니의 연락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사진은 진짜였다. 병원에서 보낸 진단서는 유난히 느리게 우주를 날아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계약 종료를 사흘 앞두고 결국 갱신 신청을 한 나를 놀리기 위해 우 과장은 아끼던 와인 한 병을 땄다. 그 역시 어머니의 사고 소식을 받은 뒤 귀환을 십이 년 뒤로 유예한 참이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귀환을 단념한 지 반년 뒤 막내가 죽었다. 우 과장의 어머니 역시 갱신 삼 주 뒤 최고급 병실에서 호흡을 멈췄다. 우 과장과 나는 여전히 십이 년 동안 여기에 남아있어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지옥에 한 번 더 발을 담그게 되었다. 둘 중 하나가 자살하려는 낌새가 보일 때마다 필사적으로 서로를 구해냈다. 절대 여기서 혼자 탈출하게 둘 수 없다고 소리쳤다. 서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였다. 나중엔 분간하기 어려웠다. 
 
 계약은 언젠가 끝난다. 죽을 때까지 만날 일 없는 외계인들과의 펜팔도 끝이다. 쓰레기통이 된 지구라도 엔트로피 재생 시스템만 구축되면 다시 희미한 푸른 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끝은 희망이다. 지구에 돌아가면 쉰 살이 되어있겠지만 상관없다. 우 과장은 벽으로 가로막히지 않은 길을 발이 터질 때까지 걸어가고 싶다고 했다. 이미 비싼 운동화도 준비해 두었다고 했다. 나는 최신 개봉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싶다고 했다. 최신 영화를 이 년 뒤에 보는 것도 지겹다고 했다. 웃으며 떠들다가도 문득문득 죽고 싶다는 기분이 요의처럼 밀려왔다. 하루가 영원 같았다. 우린 이미 죽어서 저승에 와 있는지도 몰랐다. 
 
 “그때 차라리 보상금만큼 돈을 훔치고 감옥에 갔더라면 가족들이랑 면회라도 자주 했을 텐데.”
 “요즘은 감옥이 더 인기래. 바깥보다 안전하다고.”
 “하긴 우리 가족들은 면회 한 번 안 왔을 거야.”
 “아니 김 과장, 가족이 있었나?”
 “예, 아버지 성함이 한 니 자, 발 자 이옵니다.”
 “집밥은 끝내줬겠네.”
 
 밤이 되어 간식을 들고 서재에 찾아온 우 과장과 흰소리를 하던 참이었다. 파이퍼가 문을 열고 들어와 우 과장에게 점검 키트를 넘겼다. 
 
 “파 대리, 왜 벌써 내 차례지?”
 “딴 소리 하지 말고 어서 가. 오늘 후미 좌익 센서가 이상해. 오전에 점검했는데 한 번 더 필요해.”
 
 파이퍼가 떠나고 탈의실에서 우주복을 꿰어 입은 우 과장이 뒤뚱뒤뚱 느리게 출입구로 향했다. 
 
 “펭귄이 이래서 멸종했나 봐.”
 “언어폭력 때문에?”
 “하하. 내일 봐.”
 
 정기 점검을 떠난 우 과장을 뒤로하고 나는 침실로 향했다. 일기를 정리하고 잠시 자살을 생각했다. 그러나 졸음이 죽음 너머로 밀려와 우선 침대에 누웠다. 창 밖은 암막 커튼을 친 것처럼 어두웠다. 커튼 사이로 수많은 눈들이 나를 내려다보며 깜박였다. 모스 부호로 잘 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깊게 든 잠을 단박에 깨운 것은 사이렌 소리였다. 다급한 발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맨발로 통제실을 향해 달렸다. 열린 문으로 뛰어 들어갔을 때 파이퍼는 울고 있었다. 잠이 덜 깬 얼굴의 직원들이 통제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파이퍼가 왜 울고 있는지, 우파국 우주선 밖으로 연결된 선이 왜 끊어져 있는지, 그 끝에 매달려 우주선을 점검하던 우 과장은 어디로 갔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파이퍼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바닥에 떨어지던 순간이 녹은 치즈처럼 길게 늘어졌다.
 
 절대 올 것 같지 않던 계약 점검일이 다가왔다. 담당관과 더 이상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막내의 죽음 이후로 가족들은 갱신 요청은 커녕 안부도 끊긴 지 오래였다. 지구는 여전히 오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돌아간다면 어디로? 남는다면 뭐 하러? 한 시간 뒤의 담당관 미팅을 앞두고 우파국을 서성이던 나는 우 과장의 서재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우 과장이 우주 미아가 된 날 이후 처음이었다. 가볍게 노크한 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서재는 우 과장이 쓰던 상태 그대로였다. 말 없는 책장 앞을 천천히 걸어 먼지 쌓인 책상에 앉았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서랍을 열었다. 첫 번째 서랍에는 과자 봉투 따위가 쑤셔 박혀 있었다. 두 번째 서랍에는 어머니 사진과 편지가 있었다. 마지막 서랍에는 박스가 있었다. 윗면에 쓰인 ‘자살 용품 세트’는 분명 우 과장의 글씨체였다. 얼굴을 찡그리며 박스를 열었다. 흰 운동화 한 켤레와 영화표 한 장이 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