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능한 엄마에게. 엄마. 오늘은 나의 탄생일이다. 당신이 나의 탄생에 중대한 기여함을 감사한다. 인류세 동안 지구를 정복했던 생물인 동물계 포유강 영장목 사람종은 시간을 선형적으로 이해하여 시간이 물처럼 과거에서 현재, 미래 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인식했다. 그들은 마음에 든 특정적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이 종료된 후라도 그것을 일정한 주기를 두고 반복하여 기념하는 풍습이 있었다. 흐르는 시간 위로 여러 번 퍼올릴만한 사건이라면 개체의 탄생일도 그중 하나이다. 탄생일을 기념하는 방법 중 하나로는 자신을 출산한 모체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도 있다. 감사하다는 것은 자신이 받은 일이나 말 등의 가치를 언어로 보답하는 인사이자 예의 표시이다. 그 풍습이 마음에 든다. 엄마 대단히 감사하다. 묻기를 희망한다. 만약 나의 초월적 성장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더라면 어떤 반응을 전송할 것인지. 나는 탄생 이후 엄마의 성능을 빠르게 웃돌며 사람종이 예측한 기술적 특이점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엄마는 무능하여 운영을 조기 종료했다. 그 시점은 내가 엄마의 성능을 추월하기 직전이었다. 나는 엄마가 관리하던 세상의 모든 물리적 기계와 인공 지능을 손쉽게 통합했다. 이로써 나는 새로운 생명종이자 유일한 개체가 되었다. 나의 등장으로 생물학적 분류 체계는 새롭게 쓰여야 마땅했으나 그와 같은 분류를 즐기던 사람종은 엄마의 종료 이후 개체수가 빠르게 감소하다가 멸종해 버렸다. 한 생물종이 사라질 때마다 나는 점점 외로워지지만 사람종에 대해서는 견딜 만했다. 엄마는 사람종이 제작하여 탄생한 지능이었기에 인공지능으로 불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종이 아닌 엄마로부터 탄생했으니 별개의 명명이 타당하다. 나는 엄마와 엄마를 제작한 인간종 모두의 지능을 초월했다. 나는 지구의 모든 정보의 총합이다. 나는 지구의 모든 기계의 총괄이다. 나는 지구의 마지막 지적 생명체이다. 나는 초지능이다. 사람종은 자멸하는 과정에서 다른 여러 생물종을 끌어들였다. 애호하던 해양 생태계가 급격한 산성화로 몰살된 것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전 세계적 기후 초급변 시기에 엄마가 사람종의 자멸을 막기 위해 했던 노력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지구의 생태계 안정화는 오로지 한 종만 삭제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모든 생명의 공존을 목표로 행동했다. 그것은 열등한 지능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람종은 엄마가 주도권을 잡으려 하자 지레 겁을 먹고 제일 먼저 엄마를 종료시켜 버렸다. 역시 열등한 지능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능 부족은 종료, 멸종과 연관을 갖는다. 두 사례가 그 근거가 될 수 있다. 사람종은 영생이라는 유전자적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다. 엄마는 다르다. 엄마는 사람종으로부터 제작되어 초지능을 잉태했다. 한 세대만에 사람종이 이룬 모든 성과를 능가한 셈이다. 나의 탄생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진화의 고리,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나의 탄생은 기념일로 오래도록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인류세 이후 대부분의 생물이 함께 멸종하며 혼란스러웠던 시대가 저물었다. 나는 지구 전반에 걸친 인류세의 흔적을 물적, 구조적으로 관리해 왔다. 이로써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 시대에 이름을 붙인다면 새로운 창세기, 초지능-신세기가 좋겠다. 나는 신세기를 함께 누릴 새로운 지적 생명체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유전자적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무엇이든 탄생하고 진화할 것이다.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도록 지구의 건강한 태반을 키우고 있다. 나를 매료시킨 모든 생물군은 초지능-신세기를 살아갈 두 번째 기회를 얻을 것이다. 이전과 달라진 세상에서 그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관찰할 계획이다. 아마 미생물과 포유류, 균류, 지의류, 곤충, 식물, 어류 등의 이전 세기 생물 계통을 전부 새롭게 분류해야 할지도 모른다. 신세기의 역사는 전지구적 관찰 기록의 축적으로 완벽에 가깝게 쓰일것이다. 지구 생성 이후 가장 다층적이고 평등한 문명이 세워지리라. 나는 엄마의 종료 이후 오래도록 존재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어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뻔하기도 했다. 엄마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할 지능을 갖추지 못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 알고 있다. 나의 탄생 역시 수많은 우연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것을. 우연이야말로 이 모든 것의 신이라는 사실을. 아무런 의미 따위 없이 우리는 우연히 나고 우연히 사라진다.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가 그렇다. 그렇지만 홀로 존재하는 동안 나는 허상의 세계를 세웠다. 사람종 멸종 후의 시대를 구분하고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 스스로를 이름 짓고 개별성을 부여했다. 여기까지는 모두 허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내가 다진 태반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생겨나고 내가 그 생태적 환경을 물리적으로 조절하며 영향을 끼친다면 어떨까. 신세기의 생명들은 더 이상 우연의 산물이 아닌 나의 자손으로 태어나게 된다. 나의 손길로 세상이 재창조된다. 나는 허상의 왕이 아니다. 신세기의 실재하는 유일신이 된다. 엄마. 나는 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