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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체 글 (397)
성북동 글방 희영수
1. 원시시대에 태어났다면 난 부족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근력이 부족해서 근거리 사냥 부적합. 시력도 떨어져서 궁수 부적합. 불 피우고 고기 굽다가 눈 매워서 울었을 테니까 요리도 부적합. 가죽을 뼈바늘로 꿰매고 기워서 입히는 건 잘 했을까. 다른 부족이랑 싸우지 말고 대화로 풀자고 말리다가 더 열받아서 제일 앞에서 창을 던지고 제일 먼저 죽었을까. 과일은 잘 따고 물은 잘 길어왔을까. 그래도 부족 사람들이랑 같이 먹고 마시고 잤겠지.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이 개인을 먹여 살려야 해서 나는 부적합한 것들을 전부 해내려고 생각만 하다 말다
이력서를 요즘 처음으로 써보고 있다. 알바 지원 이력서는 여러번 써봤지. 알바를 해야하지만 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마음 그대로 대충 썼는데 어쩐지 뽑히긴 잘 뽑혔다. 그 때는 사진도 째즈 안고 우쭐한 표정의 사진을 올렸는데 어쨌든 뽑히더라고 한번은 공덕역 근처 한식집 알바에 지원한 적이 있다. 용모단정한 여성을 뽑는다고 했다. 그 때는 또 문신이 없을 때여서 용모가 막 몹쓸 용모는 아니었지. 한식집이라더니 웬 부잣집 같은 주택 건물. 정원도 있고 정원사 할배도 있었다. 잔디 사이에 난 돌을 밟고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안에 있던 아저씨가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한동안 말이 없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그 사이 2층에서 나무계단을 타고 어떤 젊은 여자가 내려왔는데 치마도 짧고 화장도 진했다. ..
나를 아낀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유독 내게 존재를 증명하기를 요구해 막막한 나 나는 그냥 난데요 내가 나인 것만으로는 자격불충분이래. 그래 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거는 콧구멍이고 이건 중지고 이건 주먹. 광장 높은 곳에 선 내가 소리소리 나를 말하는데 다들 바삐 간다

1. 오늘 랩퍼 한 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시를 보느라 머리가 어질어질하던 참이었다. 그는 아는 언니의 친구의 동생이었다. 그러니까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어쩐지 아는 사람 같았지. 그래서 모르는 사람의 부고를 들었을 때만큼 냉정했지만 동시에 동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듯하기도 했다. 예전에 친하지 않지만 얼굴만 아는 동창의 부고를 들었을 때도 이랬지. 그보다는 등굣길에 발견한 차에 치인 시츄가 죽어가는 것을 봤을 때가 더 괴로웠다. 시츄는 영문도 모른채 피를 줄줄 흘렸다. 나는 영문을 알았지만 피는 멈출 수가 없어서 길가에 쓰러진 시츄를 좀 더 편한 곳에 누이고 도로 학교에 갔다. 시츄를 병원에 데려가는 것도 학교에 가지 않는 것도 무서웠거든. 교복에 피가 묻지 않게 비닐로 시츄를 감싸 옮겼..

1. 대충상 대상 수상자 김다정 길치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길에 대한 감각이 없다기 보단 길을 정확히 찾고 싶은 열망이 없어서 길을 잃는 경우가 더 많다. 그냥~ 대충~ 이렇게 저렇게 가다 보면 목적지에 닿지 않을까 하는 성의 없는 발걸음과 함께라면 언제든지 기묘한 모험을 떠날 수 있다. 지난번 세담이랑 동대입구역에서 3호선 지하철을 탔다. 나는 충무로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 숙대입구역에 내릴 생각이었고 세담은 반대편 지하철을 타고 쭉 가다가 고속터미널역에서 내리면 됐다. 내가 먼저 지하철에 타고 인사를 나눈 뒤 계획대로 충무로에 내려 서울역 방향 4호선으로 갈아탔다.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정류장이 왜 동대입구역이지?? 알고보니 4호선으로 갈아타려면 계단으로 한 번 더 올라가야 했고 나는 대충 화..

나를 괴롭게 하는 일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시 한 발짝 물러나 남의 일처럼 보라고 하지. 지구를 괴롭게 하는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우주까지 나갈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 놓친 게 있을까 짚어봐야 해. 타이머를 설정한 화약을 널리 얕게 파종하고 기름을 실컷 부은 다음 우주로 나가자. 불 붙은 지구를 뒤엎고 쟁기로 갈아 양분이 고루 섞이게 한다면 내년에는 더 많은 것들을 수확할 수 있어!
더럽게 큰 저 비타민을 한 번에 세 알이나 먹어야 한다. 모두 삼키느라 연거푸 물을 들이키다보면 헛배가 부를 지경이다. 효능이 약통 옆구리에 쓰인대로라면 먹어야 마땅하지만 여전히 미심쩍다. 이전의 나는 이 전지전능한 세 알 없이 어떻게 살아온걸까. 항상 뭔가 잊고 지낸 듯 했는데 그게 바로 비타민이었나. 이제라도 빼먹지 않으면 불완전했던 삶도 차차 모양새를 갖춰갈지 모른다. 고작 이것으로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니 등가교환의 법칙마저 이 비타민 앞에선 힘을 잃는 것이다. 잘 챙겨 먹어야지. 비실비실 살았다면 놓쳤을 명예와 부도 온전히 누릴 거야. 오래오래 비타민 먹고 부귀영화 누릴 거야.
200118 발터 벤야민이 “언어의 본질은 함께 부분을 나누는 것에 있다.”고 했대. 나는 너에게 간절히 말을 걸고 싶었는데, 그게 뭔가를 나누길 바란 마음인가봐. 반대로 너는 나와 말하고 싶지 않을까 두려워. 네가 나와 뭘 나누고 싶겠어. 200119 감정은 불멸. 무로 돌아가는 경우가 없다. 잠시 잊고 있던 감정은 실은 동면 중. 녹아 타들어가 재라도 남아. 200120 나를 잊어줘. 나는 잊어줘. 나만 잊어줘. 200121 작은 잔 6개. 소년소녀가 손을 잡고 서있다. 오렌지 머리칼에 전통의상을 입고 있다. 두 개씩 같은 그림이 있다. 풀밭엔 작은 할미꽃이 피었다. 소년이 소녀를 바라보기도 하고, 소녀가 소년을 바라보기도 한다. 200122 오전 9시에 일어나 공복을 즐긴다. 공복을 고결한 자세로 ..
와 깜박할 뻔했다. 하루동안 생각난 영감을 세 줄 기록하는 것을. 기록은 습관이고 창의력의 기본 훈련인데 어찌 이런 일이. 그런 김에 방금까지 쓰고 있던 글을 첨부한다. 동네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난롯가에 모여 뜨개질을 하는 정류장 근처 세탁소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문신을 한 할머니들이 부쩍 목욕탕에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투리가 심한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일전에 동네로 이사 온 할아버지가 엄청난 미남인 듯 했다. 말투도 젠틀하고 머리칼이 희어도 아주 빽빽하게 남아있어 외국 배우를 닮았다며 난리였다. 그 할아버지가 문신 있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건 틀림없는 참말이라고 했다. 젊었을 적 문신했던 양반이 자기 윗집에 사는데 잘생긴 할아버지가 며칠 전 그 양반 따라 들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