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0123 토 / 대충상 대상 수상자 김다정, 광인 수집(후암동 광인2) / 긴개 본문

2021-2023 긴개

0123 토 / 대충상 대상 수상자 김다정, 광인 수집(후암동 광인2) / 긴개

긴개 2021. 1. 23. 15:45

레진에 올린 뜨개 지구 - 지구가 들어갈 병 속에 조명을 넣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깔끔할까?



1.
대충상 대상 수상자 김다정

길치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길에 대한 감각이 없다기 보단 길을 정확히 찾고 싶은 열망이 없어서 길을 잃는 경우가 더 많다. 그냥~ 대충~ 이렇게 저렇게 가다 보면 목적지에 닿지 않을까 하는 성의 없는 발걸음과 함께라면 언제든지 기묘한 모험을 떠날 수 있다.

지난번 세담이랑 동대입구역에서 3호선 지하철을 탔다. 나는 충무로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 숙대입구역에 내릴 생각이었고 세담은 반대편 지하철을 타고 쭉 가다가 고속터미널역에서 내리면 됐다. 내가 먼저 지하철에 타고 인사를 나눈 뒤 계획대로 충무로에 내려 서울역 방향 4호선으로 갈아탔다.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정류장이 왜 동대입구역이지?? 알고보니 4호선으로 갈아타려면 계단으로 한 번 더 올라가야 했고 나는 대충 화살표 한 번 본 뒤 아무 생각 없이 반대편 열차에 몸을 실은 것. 세담에게 '이번에 동대입구역에서 내려요'했더니 세담은 '전 이번에 동대입구역에서 타는데요'했다. 작별 인사하고 한 바퀴 돌아 다시 처음 역에서 내리는 짓을 하고도 여전히 귀갓길 내 눈깔은 흐리멍텅했다.

이 성의 없는 태도 덕에 떠난 뜻밖의 여행은 그밖에도 많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헤매고 있질 않나 서울대에서 연주대 방향으로 가는 길에 연못이 예쁘다고 한 걸 대충 듣고 얼떨결에 연주대 정상 등반을 하질 않나 하여튼 머리가 땡땡이친 덕분에 몸이 많은 고생을 해야만 했다.

저놈의 레진만 해도 그래. 좀만 더 성의 있게 계획적으로 했더라면 기포도 없고 손에 온통 묻은 걸 닦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고 사포나 알지네이트 같은 준비물도 미리 미리 사뒀을텐데. 눈보라 얼굴로 맞아가며 호미까지 다녀와놓고 달랑 픽서 하나 사온 이 멍청이. 당신에게 대충대회 대충상 대상을 대충 시상합니다. 대충 아무데나 걸어놓으세요.

스스로를 계획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겼는데 대충 큰 그림 짜는 걸 뿌듯해 즐긴단 소리지 체계적이고 꼼꼼한 성격은 절대 아니었다. 많은 도움과 질책 없이는 대충 살다가 대충 죽어서 저승길도 대충 헤매다가 간신히 지옥에 가겠지.
여러분 대충 도와주세요. 대충 살아도 큰 해 없도록. 대충 잘 살고 잘 먹도록. 여러분의 대충도움으로 대충 살아갈 대충 미래를 그리며 대충 긴개 씀.







2.
광인 수집 (후암동 광인2)

커피가 맛 없어도 찾는 카페가 있다.
작은 로터리와 경사진 땅에 다닥다닥 들어선 주택들이 한 눈에 보이는 창가에서 눈요기 하기 좋은 카페.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등장하는 마법 버스는 차와 차 사이 같은 좁은 틈을 통과할 때 한없이 좁고 길어진다.
그 일그러진 버스 같은 건물 1, 2, 3층에 테이블과 의자들이 가득 차있다.
오랜만에 와보니 여전히 커피는 맛이 없고 뷰는 좋다.
그리고 후암동 광인2를 오랜만에 만났다.
후암동 광인2는 재작년 바로 옆 카페에서 처음 마주쳤다.
들고간 책에는 도무지 눈이 가지 않았다.
어디서 이렇게 구린내가 나는 걸까 괴로워하며 킁킁거린 끝에 냄새의 근원지에 앉아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는 냄새 말고도 거슬리는 특징이 하나 있었다.
주둥이가 귀신에라도 씌인 듯 쉬지 않고 큰 소리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 번잡한 카페인데도 그 주변에는 테이블이 전부 비어있었다.
광인2가 독실하고 경건한 태도로 줄줄 읽어내려가는 것이 분명 성경일 것이라 확신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광인2는 자신의 이력서와 모집 공고 등을 읽고 있었다.
읽는다는 행위가 이해와 직결되는 듯 했다.
읽지 않으면 글자와 정보가 머리 속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광인2는 통화 역시 같은 톤앤매너로 영위했다.
본인이 그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언제 채용 공고가 나오는지 묻는 듯 했다.
처음에는 후각과 청각의 평온을 뺏어간 그의 공감각적 지랄에 괴로웠으나 점점 흥미가 생겼다.
점원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가 없는 듯 행동했다.
흘긋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 주변을 빙둘러 피해가는 것이다.
내가 저렇게 똑같이 행동해도 사람들은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못 맡은 척 해줄까?
정말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두 번째로 마주쳤을 때는 조금 피로했던 참이라 바로 자리를 옮겼다.
광인2와의 재회는 귀찮기만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정말 오랜만에 광인2를 만나고 보니 잠깐 반갑고 오래 빡친다.
아까는 무슨 푸디파이 어쩌구를 염불처럼 외질 않나 호루라기 소리가 삑 난무하는 삑삑 운동 경기를 큰 삑 소리로 시청하는삑 통에 좋아하는 노래가 스피커에서 나왔는데도 삑 엇박 호루라기 소리에 삑삑 리듬이 깨지고 만 것이다.
쓰려고 했던 주제에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어서 광인2의 관찰기를 쓰고 말았다.
후암동 광인1은 그 뒤로 마주치지 못했기 때문에 연재할 수는 없지만 아쉬운대로 그 때 그린 만화를 첨부한다.
세상의 모든 광인 시리즈 많이 기대해주세요.
광인을 파리처럼 꼬이게 하는 초능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