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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220103 월 / 유교사상에 피어난 곰팡이 / 긴개 본문
다들 진짜 선배가 있는 걸까. 일본 학원 만화에서나 보던 그 단어. 내 인생에서는 쓸 일이 없었다. 엣센스 국어사전에서는 선배 先輩를 ‘1.같은 분야에서 학문·경험·연령 등이 나보다 많거나 나은 사람, 2.자기의 출신 학교를 먼저 졸업한 사람’이라는데, 역시 떠오르는 얼굴이 없다. 혹시 내가 지금껏 이 모양 이 꼴인 게, 변변한 선배가 없어서?!
나보다 어리고 경력이 짧은 사람의 실수는 대수롭지 않은 데 비해 연장자의 실수나 못난 모습은 유독 거슬린다. 존댓말 듣고 반말하는 사람이 그런 대접 받을 만한 행동거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내 눈빛은 오랜 재판에 지친 배심원의 그것이 되어버린다. 또 연장자 눈에 잘 보이려 고민하는 것보다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의 평가를 듣는 데 더 신경 쓰곤 한다. 연장자나 선배보다 후배들 눈에 멍청해 보이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멍청한 사람이다.
또 왜 선배가 없었을까 생각해보면 꺼내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신입생이 되어 처음 대학 오리엔테이션에 갔을 때, 장난이라며 군기를 잡던 과 회장에게 그만 따박따박 말대꾸를 해버렸다. 때아닌 동장군처럼 수련회장에 모여있던 많은 사람을 싸하게 얼려버렸고 이후 과 회장은 눈물을 좀 흘렸다. 나는 과 회장을 따로 불러 내 딴에 가장 사과에 가까운 말을 했다. 어떻게 그 많은 후배가 다 내 마음 같을 수 있겠냐고, 앞으로도 나 같이 말 안 듣는 후배가 또 있을 테니 너무 개의치 말라고. 이런 시건방진 망언 덕분에 선배는커녕 동기와도 친해질 수 없었다는 아주 훈훈한 이야기.
내게는 선배가 없었지만 나 역시도 누군가의 선배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아직 내 앞가림을 못 하는데, 나도 나를 모르고 뭣도 모르겠는데 그런 부담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기 싫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자꾸 나이를 먹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떤 종류의 선배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쓰잘데기 없는 물건 쌓아놓기 선배, 고양이 응가 치우기 선배, 홈 파티 레크리에이션 선배, 걸어서 동네 한 바퀴 선배, 라섹 수술 선배, 자취 선배 등....
저번엔 일터에 찾아온 고등학생들과 잠깐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한 달 뒤면 20살이 된다고 했다. 나는 재미없는 직장을 소개하는 대신, 인생 선배로서 할 수 있는 말들을 쏟아냈다. 이제 민증 들고 술집 갈 텐데 이 말을 기억해라. 술 마실 땐 꼭 그만큼 물을 마셔야 한다. 그러면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 근데 여자들은 화장실 줄이 항상 길기 때문에 급할 때 가면 늦다. 미리 자주 가라. 그리고 간 해독능력이 남자만큼 좋지 않기 때문에 급하게 똑같이 마시면 안 된다. 문신은 레터링 하면 후회한다. 할 거면 싸게 해주는 데 가서 그지 같은 거 새기지 말고 꼭 비싼 데 가서 비싸게 해라. 재밌게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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