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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1223 토 / 피 터지고 웃음 터지는 풋살 / 긴개 본문
요즘도 풋살 안 하는 사람이 있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올해 7월 처음 공을 차본 풋내기 주제에 지금은 일주일에 7일 풋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풋살(Futsal)은 국제 축구 연맹(FIFA)이 공인한 실내 축구의 한 형태로, 열한 명의 선수가 한 팀으로 뛰는 축구와 다르게 보통 다섯 명이 한 팀을 이룬다. 풋살공은 축구공보다 조금 작고 무겁다. 주말에 풋살을 한다고 하면 몇몇 사람들은 ‘골때녀’를 재밌게 본 팬이냐고 묻기도 한다. 아니오. 2021년부터 SBS 방송국에서 방영 중인 여성 축구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은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그보다는 2018년에 민음사에서 발행한 김혼비 작가의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서 영향을 받았다. 책이 어땠길래? 사실 책도 읽지 않았다. 영향을 받은 것은 오직 제목에서다. 제목만 읽고 여자 축구는 우아하고 호쾌한가보네! 재밌겠다! 나도 해보고 싶어, 그러고 말았다. 그 생각은 옷장 뒤에 끼어 있다 몇 년 만에 찾은 양말 한 짝처럼 어느 날 문득 다시 떠올랐다. 나도 할래 축구.
축구할 사람? 어딘가 묻기도 어색하고 흔쾌히 하겠다는 답을 들어도 난감한 말이다. 누구한테 어떻게 권유할 것이며, 또 하겠다는 사람을 모으고 나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시절 내내 피구와 술래잡기로 체육 시간을 보냈으며 중학생이 되어선 고작해야 줄넘기 수행평가 정도가 전부였고, 그마저도 고등학생이 되고 나니 운동장 두어 바퀴 뛴 다음 체육 시간 내내 스탠드에 앉아 멍하니 남자 아이들 축구하는 모습만 보다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나랑? 축구하자고? 우리 둘이서만? 몇 명이서? 어디서? 축구화를 사야 된다고? 풋살화? 축구 양말? 친구가 쏟아낼 질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야, 니가 축구 하자며?!
그러나 이번엔 운이 억세게 좋았다. 굉장한 친구가 마침 축구에 눈을 뜬 참이었다. 동시대에 대학교를 다닌 사람들 중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존경스러운 사교성을 가진 친구가 함께 공 찰 이를 모으고 있었다. 저요, 제발 저요, 저 좀 끼워주세요. 덕분에 멤버와 회비 관리, 장소 조사, 예약, 대관비 입금, 음료 준비, 장소 안내 등의 번잡한 임무는 몽땅 맡겨둔 채 몸뚱아리만 덜렁 챙길 수 있었다. 아니, 사실은 많은 걸 챙겨갔다. 중고거래로 구한 풋살화(판매자도 여성이었다), 운동복, 물티슈, 샴푸, 치약, 칫솔, 비누, 수건, 로션, 새 속옷, 갈아입을 옷 기타 등등. 푸짐한 가방을 메고 낑낑대며 풋살장에 갔건만 땀을 흠뻑 쏟은 경기가 끝나고 샤워장으로 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쿨하게 가방을 메고 떠나는 친구들을 붙잡기도 민망해 나도 후다닥 짐을 꾸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 같은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던 모양이다. 땀에 젖은 채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무척이나 죄스러워 자리에 앉지도 않고 멀찍이 서서 돌아오곤 했는데 지금은 잘만 앉아서 온다. 아무리 구석구석 맡아봐도 내 땀 냄새는 그리 고약하지도 않았고.
반 년 동안 격주 일요일마다 풋살장에 갔다. 만나면 서로 근황을 묻기도 전에 몸을 풀고 바로 경기장에 뛰어든다. 아마추어들이 뻥뻥 찬 공은 턱에 맞고, 눈에 맞고, 배에 맞고, 가슴에 맞는다. 짧은 경기 동안 바닥에 굴러다니는 사람이 도대체 몇인지 세기도 힘들다. 서로의 발을 콱 밟고, 축구화로 허벅지를 차고, 팔꿈치로 어깨를 때린다. 경기가 끝난 뒤엔 누가 날 때렸는지도 잊는다. 인조 잔디에 무릎이 갈려 빨간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인다. 밴드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또 뛰다가 갈린 무릎을 또 바닥에 찍는다. 그러고는 또 뛴다! 몇 년간 넘어져본 횟수를 한 달만에 훌쩍 넘어선다. 정강이에 멍 없는 사람이 없다. 열에 아홉은 생전 처음 공을 차본다. 처음 풋살장에 들어오는 사람의 눈에는 두려움이 있다. 근데 제가 축구는 처음이라서요... 그러나 막상 경기장에 넣어보면 입을 꽉 다물고 굴러가는 축구공에 눈을 뺏겨 미친 듯이 뛰어다닌다. 한 번 경기를 뛰고 나와 헉헉거리며 땀을 닦은 후에는 ‘저는 축구가 처음이라..’ 같은 소리를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 경기를 보며 진지한 얼굴로 중얼중얼 훈수를 두기 시작한다. 경기가 끝나면 그대로 헤어져 집으로 가 샤워를 하고 축구 영상을 보다 잠든다. 그러다보니 어느 날은 패스가 꽤 늘어있고, 또 어느 때는 골을 두세 번씩 넣는다.
경기를 보다 재미있는 상황이 생기면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어 단톡방에 공유했다. 그러다 두 달 전부터는 아예 유튜브 채널에 편집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처음엔 2~5분 분량의 짧은 영상을 핸드폰 어플로 짜깁기하는 수준이었다. 웃기게 넘어진 순간, 공을 차려다 헛발이 나간 순간, 얼굴에 공을 맞는 순간처럼 단순한 영상을 올렸다. 그런데 점차 멤버들 실력이 늘고 멋진 경기 장면이 늘어남에 따라 어느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고 또 널리 알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새를 관찰할 때 사용하던 캠코더를 들고 나와 경기 전체를 촬영하기 시작했고, 경기 다음날은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어도비 사의 영상 편집 프로그램 프리미어 프로와 싸운다. 전체 영상을 처음부터 살피며 재미있는 컷을 편집하고 상황에 맞는 자막과 음악을 삽입한다. 하이라이트를 더 잘 보여주고 싶어 새로운 편집 기술을 검색해 적용해본다. 이제는 오십 분 분량의 편집본을 이틀 만에 만드는 정도로 프리미어 프로에도 익숙해졌다(지난번엔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풋살 멤버들은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자기가 골 넣은 장면, 자기가 패스를 잘한 장면, 자기가 넘어진 장면들을 살피러 오느라 부리나케 조회수가 올라간다.
굴러가는 공 하나 잡겠다고 이 많은 사람들과 이리저리 뛰는 게 이렇게 신날 줄이야. 골 한 번 넣으면 일주일 내내 그 순간을 떠올리며 몰래 웃는다. 정강이의 멍을 봐도 웃는다. 월드컵 시즌에만 보던 축구 경기를 틈틈이 유튜브로 시청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텔레비전 앞으로 가서 ‘집에서 혼자 연습하는 축구 기술’을 따라한다. 중고로 샀던 풋살화를 다시 팔고 더 좋은 풋살화를 샀다.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할 때 질문할 것이 하나 늘었다. 해외로 여행을 간다면 들러야 할 곳이 더 늘었다. 동생이 스페인으로 출장을 가며 내 이름을 새긴 FC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샀다. 오늘 서울에 도착했다고 하니 올해 안에 새 유니폼을 입어볼 수 있을 것이다. 빨리 거울 앞에서 서보고 싶다. 빨리 다음 경기 일정이 정해졌으면 좋겠다. 빨리 페이크랑 잔발 연습해야지.
그나저나 도대체 축구는 어디에서 연습할 수 있는 걸까. 코로나 사태 이전엔 학교 운동장에서 강아지를 산책하거나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트랙을 빙글빙글 돌며 앞뒤로 손뼉을 치거나 둘씩 모여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도 있었다. 축구를 시작하고 나니 학교 운동장이 간절해진다. 코로나도 끝났는데 왜 개방을 안 하나요. 초·중등교육법 11조(학교시설 등의 이용)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학교 교육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그 학교의 장의 결정에 따라 국립학교의 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고, 공립·사립 학교의 시설 등은 시·도의 교육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엔데믹 선언 이후에도 학교장과 숙직 기사는 이참에 편하게 관리할 수 있는 폐쇄 정책을 유지하려는 모양이다. 전국민 생활 체육의 양적,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운동장의 접근성이 좋고 또 그 수도 많아야 할텐데, 학생들은 적어진 수로 외따로 고립되고 일반인들은 돈을 내야만 운동 공간을 빌릴 수 있는 현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학교와 학교 주변의 거주민이 일상적으로 연결되며 시공간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어디에다 이야기 좀 해야겠다. 새로 산 유니폼 입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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