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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1210 금 / 당신의 말이 사슬이 되어 목을 조를 언젠가를 기다리며 / 긴개 본문
말 한마디마다 세금을 매겨야 한다. 그 말에 책임을 지겠다는 서명도 필수다. 말을 침처럼 내뱉기 전에 여러 검사기에 넣고 탈탈 돌려 안전성을 시험해야 한다. 오랫동안 세밀하게 다듬어낸 말만 조심스럽게 주고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말에 스민 독이 얼마나 집요하고 치명적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중독된 후이다. 미리 조심하라고 여기에 알린다.
가까웠던 사람이 알고보니 악질의 사기꾼이었다. 1년 넘게 알고 지냈는데 지금까지 했던 모든 말이 거짓이었다. 친구들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친구로서 아끼고 존중했기에 무슨 말을 해도 주의 깊게 들어주고 잘 풀리기를 바라며 응원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우리를 누구든 상관없을 방청객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코로나로 많은 친구를 만나기 힘들었지만 우리는 자주 만났다. 이런저런 미래의 계획도 많이 짜두었다. 맛있는 것도 나눠 먹고 많이 웃었다. 그렇게 함께 있었던 모든 순간에 우리를 속였다는 것이 징그럽고 놀랍다. 어떻게 한 개인이 그렇게 많은 거짓을 말할 수 있을까. 또 그는 죄책감 없이 다른 피해자를 찾아다닐 것이다. 다음 피해자를 생각하면 속이 울렁거린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짓은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다음 피해자가 생긴다.
그의 거짓말은 일관적이고 끈질기고 단순했다. 돌이켜보면 그는 소소한 일상에 대해서는 좀처럼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면 으레 최근에 있었던 일 중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골라 털어놓기 마련인데, 그의 이야기 주제는 항상 먼 과거의 일이었다. 내용도 전부 ‘불행한 가정사’, ‘우울증’, ‘자신을 괴롭히고 성적으로 학대한 전 애인들’, ‘자신에게 무례한 나쁜 사람들’ 같은 것이었다. 이 레퍼토리는 만날 때마다 누구도 묻지 않았으나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매번 듣다 보니 지겨울 때도 있었지만, 그런 일을 겪고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 것이며 또 이렇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후련해지고 덤덤해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들어줘야 한다고 고쳐 생각했다. 우리도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에게 털어놓으며 웃고 넘기곤 했으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괴로웠던 기억만큼 현재의 즐거운 이야기도 나누었으나 그는 한 방향으로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여러 이야기 속에 그것이 희석되어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리에게 동정과 위로를 받기 위해 그는 계속해서 피해자로 불리려 노력했다. 자기가 가해자였던 순간들을 전부 정반대로 진술했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누구도 자기를 주목하고 사랑하지 않을 거라 생각할 정도로 절박했던 찌질함이.
나를 행인1보다 가볍게 대한 것까진 상관없지만, 내 친구에게 먼저 접근해 사실을 속이고 자신의 말에 따르도록 오랫동안 세뇌한 행동에는 사적인 복수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속이 끓는다. 그를 가장 아끼고 걱정했던 내 친구가 2년 가까이 그에게 시달리며 본래의 밝은 모습을 잃고 화가 많아지며 부정적으로 세상을 보게 된 것이 못내 안타깝다. 우리 앞에서 유독 도덕적으로 엄격하고 선을 지키며 거짓을 혐오하는 인간인체했던 그는 잘못이 드러나는 순간에 내 친구에게 제대로 사과하기보다 친구의 지인들에게 먼저 연락해 사실관계를 혼동시키고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 했다. 자신의 지인들에게는 그보다 이전부터 거짓말에 대한 알리바이를 충실히 쌓아둔 것도 물론이다. 그에게 당했던 또 다른 피해자들과 수많은 대화 내용, 사진 등의 자료가 확보된 이 순간에도 그는 자신이 피해자로 불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추한 노력을 해서 우리와 관계를 쌓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왜 내 친구를 먼저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는지 따져 화를 내고 싶다. 혼자 인생을 즐기며 멋대로 살면 될 텐데 왜 본성을 거스르며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는가. 항상 가스라이팅 조심하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던 그가 정작 우리에게 오랫동안 가스라이팅을 해왔다. 성적인 난잡함을 혐오하고, 무례함에 질색하고, 허세 가득한 거짓을 증오하던 그의 모습이 전부 정반대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며칠째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
덕분에 우리는 한 번쯤은 남을 의심하기로 했다. 누군가 유난히 혐오한다고 표현한 것들이 사실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 감정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사람과 얽혔다가는 나를 잃게 된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뮌하우젠 증후군*, 리플리 증후군 *, 허언증* 등에 대해서도 많이 검색해보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에 실제의 모습이 아닌 지나친 보정이 들어간 사진과 과장된 일상으로만 가득 채우는 사람, 뒤센 미소*가 아닌 팬암 미소*를 짓는 사람에 대해서도 경계하게 되었다. 이렇게 남을 경계하고 말의 진의를 의심하면서 까탈스럽고 점점 괴팍한 늙은이가 되는 건 아닐까.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주던 순수함을 잃고도 괜찮은 사람일 수 있을까. 덕분에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다. 아주 감사하다.
*뮌하우젠 증후군(영어: Münchausen syndrome) 또는 허위성/가장성 장애(영어: factitious disorder imposed on self)[1] 혹은 인위성 장애[2]는 실제로는 앓고 있는 병이 없는데도 아프다고 거짓말을 일삼거나 자해를 하여 타인의 관심을 끌려는 증상으로 신체 증상 장애중 하나이다. - 위키백과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부르는 대한민국의 신조어이다. 미국의 소설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지은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The talented Mr. Ripley, 1955)에서 따온 말로 '리플리병'이나 '리플리 효과'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로 의학계에서 병명으로 사용되는 말은 아니다. - 위키백과
*공상허언증 (空想虛言症, 영어: pathological lying, pseudologia fantastica, mythomania)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거짓말을 그대로 사실로 믿는 정신적 증후군을 뜻한다. 이 증상은 1891년 의료 문헌에서 안톤 델브뤼크 (Anton Delbrueck)에 의해 처음으로 설명되었다.
크게는 정상인이라도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반복하는 것을 허언증이라고 세간에서는 부른다. 하지만 뮌하우젠 증후군처럼 공상 허언증이란 정신 질환으로서, 정상인이나 사기꾼이 금전적 목적을 위하여 단순히 허풍이나 과장이 심한 경우와 달리 공상 허언증 환자는 자신이 왜곡한 사실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거짓말을 실제로 믿게 되어 죄책감을 느끼지 못 한다. 이는 단순히 거짓말을 반복하는 사기꾼의 경우와 병적 환자로 나누는 근거가 된다. 병적 허언과 회상착오 (실제로 체험하지 않은 것을 사실로 단정)가 병행되는 것을 공상허언증에 결부된 것을 뮌하우젠 증후군 등으로 부르고 있다.
허언증과 유사한 증상으로는 소설 속 인물에서 유래한 리플리 증후군이 있다.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한다. - 위키백과
*얼굴 표정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했던 심리학자 폴 에크만은 ‘인간의 웃음 중에서도 긍정적 정서가 반영된 환한 웃음을 ‘뒤센Duchenne의 미소’라 이름지었다. 에크만은 광대뼈 근처와 눈꼬리 근처의 얼굴 표정을 결정짓는 근육을 발견해낸 뒤센을 기려 그의 이름을 따서 뒤센의 미소라 명명했던 것이다. 이러한 뒤센의 미소를 짓는 사람들의 뇌는 기본적으로 긍정적 정서를 타고났다고 볼 수 있다. - 『회복탄력성』, p.88, 김주환, 위즈덤하우스
*뒤센 미소와 반대 개념인 인위적 미소를 뜻한다. 팬암 미소는 우스운 느낌의 유발 없이 표정의 인위적 변화로 유발된 웃는 표정 상태이다. 미국 항공사 팬암 Pan American World Airways의 승무원들이 짓는 인위적인 웃음을 가리켜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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