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1206 월 /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주둥이들 / 긴개 본문

2021-2023 긴개

1206 월 /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주둥이들 / 긴개

긴개 2021. 12. 10. 16:21

 

 

 천국은 아마 사람과 사람이 물 흐르듯 어렵지 않게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곳일 거야. A를 말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A로 들어주고, 고맙다 말하면 정말 고마운가 보다 하고 들어주는 곳. 대화하면 할수록 응어리가 풀리고 타인과 나의 경계가 부드럽게 허물어지는 곳. 내가 사는 세상은 그 반대야. 말은 의도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해. 이렇게 오류가 많은 전달 시스템이 왜 아직도 주요하게 쓰이는지 신기할 따름이야. 말이 웃음을 빚고 마음도 전하려 했지만 어쩐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지.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 시절도 있었다던데.

 

 

 세상의 모든 균열이 말로부터 나왔다면 우리의 입은 성인식 때 꿰매져야 해. 책임도 지지 못할 말들을 눈보라처럼 퍼트려 놓고 정작 난처할 땐 뒷짐만 진다고. 그런 허풍선이는 대문 앞이나 전봇대에 단단히 매어두어야 해. 언제든 감시할 수 있도록. 내 몸에 달린 것 중 이리도 탐욕스럽고 황당한 기관이 또 있을까. 그 속에 든 혀도 똑같은 놈이야. 흐느적 변덕이 심하고 스스로만 맛나게 달랠 줄 알아.

 

 

 말을 매섭게 가두고 나면 글이 그 대체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러나 내가 A라고 쓰면 A로 읽어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코 A가 될 수 없는 A를 쓰고 말 거야. 에이~ 야유하는 소리로 듣고 화내는 여럿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쓴 대로 읽히는 것이 몇이나 될까. 식당 문의 ‘미시오’, ‘당기시오’ 역시 전해지지 않잖아. 음울한 추측만 일삼는 사람들에게는 내 말이 닿지 않았으면. A, 그뿐이라니까요.

 

 

 어쩌면 말은 빈도를 줄일 때 목적을 더 쉽게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몰라. 누구나 아무렇게나 언제든 아무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말의 위엄이 사라졌어. 말을 할 수 있는 시각과 시간을 할당해 엄격히 지키도록 하면 우리는 말 한마디를 다듬고 깎느라 입 다문 시간 내내 골똘히 보내게 될 거야. 추가로 더 말을 하고 싶다면 내가 가진 미래의 말들에서 차감하는 거야.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노년에 점점 더 말 수가 줄어들겠지. 반대로 참을성 있게 기다린 사람들은 필요한 말을 남겨둘 수도 있고.

 

 

 내가 쏜 화살이 절대 과녁에 박히지 않고, 버스는 절대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으며, 택배는 끝끝내 배송 완료되지 않는 이런 미로 같은 의사소통 체계가 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어. 내가 보낸 마음이 당신에게 닿지 않고 영원히 떠도는 세상에서는 물줄기가 거꾸로 흐른다. 그 위로 주둥이들이 연어처럼 팔딱팔딱 침을 튀기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