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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1114 월 / 이름은 캠브릿지 / 긴개 본문
캠코더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양손에 핸드폰과 캠코더를 놓고 저울질해보니 보호케이스를 끼운 아이폰 XR이 더 무거운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한 손으로 쥐기도 편하다. 엄지로 녹화 버튼을 누르고 검지로 사진 촬영을 하거나 줌을 당길 수 있다. 손바닥으로 받치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감아쥔다. 투박한 기본 스트랩 덕에 놓치지 않고 손에 걸 수 있다. LCD 패널을 다각도로 회전할 수 있어 낮은 각도로 찍을 때도 장면을 확인하기 편하다. 핸드폰으로 촬영할 때는 손가락이 고생 많았지. 이제 고생 끝, 촬영 시작이다.
출근길에 산을 넘다가 맞닥뜨린 새를 미처 찍지 못하고 날려버린 순간이 많았다. 처음 보는 새가 나타났을 때 쌍안경 초점을 맞추고 핸드폰 카메라를 갖다 대 촬영하는 어설픈 디지스코핑*을 하다 보면 새는 이미 날아가버리기 일쑤. 어쩔 땐 손떨림도 잡고 초점도 금방 맞췄지만 핸드폰 카메라 화질이 낮아 물감을 두껍게 바른 유화 같은 새 사진을 찍어버린다. 이래서야 방금 본 저 작은 새가 노랑허리솔새인지 노랑눈썹솔새인지, 쇠솔새인지 되솔새인지 산솔새인지 알 길이 없다.** 언제 나타날지 모를 새 찍자고 D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를 매일 들고 다니는 것도 부담스럽지. 무게뿐만 아니라 가격도 그렇다. 핸드폰을 최신 기종으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망원 렌즈 기능이 절실하다면 갤럭시로 기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클라우드의 장점을 포기할 만큼의 매력은 부족하다. 도대체 어떡해야 이 새 촬영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캠코더를 사!”
신예 영화감독 세담이 말했다. 영상 하는 애가 그러니까 확 믿음이 간다. 그래, 캠코더라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거야. 어차피 비싼 망원렌즈 고이 모시며 삼각대 놓고 정교하게 촬영하는 방식은 답답해서 싫다. 이리저리 숲을 오가며 우연히 만나는 새들을 찍고, 함께 숲을 찾은 친구들도 찍고, 배고파서 간식을 먹는 순간도 찍고 싶은걸. 금요일에 세담의 말을 듣고 일요일에 남대문 소니센터를 찾았다. 토요일 내내 검색해 본 모델로 몇 번의 촬영 테스트 후 바로 결제했다. 이제 얘는 내 거야. 캠브릿지와 나는 오래도록 함께 할 거야. 핸드폰은 좀 쉬어. 급한 통화는 수갑 같은 애플워치가 받아줄 테고, 일상의 즐거운 순간들은 캠브릿지가 담아둔다. 카메라와 핸드폰을 분해한 뒤 원하는 기능만 쏙 뽑아 모아놓은 것 같다. 자르고 붙이는 수준의 영상 편집 기술을 구사하겠지만 부글부글 신이 나는 걸 참을 수 없다.
*
디지스코핑이란 디지털카메라(digital camera)와 스코프(scope)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스코프와 디지털카메라를 연결하여 촬영하는 기법을 말한다.
**
사실 자세히 봤더라도 서로 비슷해 동정이 어려운 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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