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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1107 일 / 노란법석 / 긴개 본문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아침이었다. 작은 로터리를 둘러싼 가로수 아래로 노란 점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걸 보고 있자니 고등학생 때가 떠올랐다. 반 애들이 쉬는 시간에 우르르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더니 교정의 은행나무 아래를 폴짝거렸다. 떨어지는 이파리를 땅에 닿기 전에 잡으면 대학에 붙는다는 소릴 듣고 그러는 거였다(정민 씨는 이 말을 듣고 추풍낙엽 전형이냐고 했다). 그러고 있을 시간에 공부를 해야 대학에 붙지 않을까?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오늘은 나도 그러고 싶었다. 대학에 또 가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살랑살랑 떨어지는 잎이 갖고 싶었다. 은행나무 아래에서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낙엽은 모기보다 잡기 어려웠다. 속도도 훨씬 빠르고, 무엇보다 방향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왕창 떨어지는데 옷에 하나 걸리지도 않는다. 한참 손을 휘저어 겨우 운 나쁜 놈 하나 건질 수 있었다. 간절히 잡고 싶었으면서, 막상 가까이에서 보니 잎이 검은 먼지로 얼룩덜룩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겉옷 주머니에 넣었다가 도로 꺼냈는데 왠지 찜찜했다. 내버려 뒀으면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을 잎인데, 내 손에 한 번 쥐었다가 다시 길에 두려니 쓰레기를 버리는 것 같았거든.
노란 잎은 내 손을 떠나자마자 사라졌다. 길 위에 빼곡한 노랑 위로 떨어지자마자 내가 쥐고 있던 잎이 어느 것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전부 내가 버린 잎 같았다. 마을버스에서 내려도 노란 잎은 계속 신발코를 따라왔다. 아까 저 골목에서 본 잎이 여기에도 있고, 삼청로를 가득 채우더니 어느새 북악산 자락을 노랗게 올랐다. 하늘이 파랗고 또 어떤 나무는 붉어서 아주 요란법석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가득 찍힌 노란 도장 위가 환해서 일부러 그 위로만 걸었다. 낙엽을 발로 퍽퍽 차면 수수수 흩어지고, 다리가 일으킨 바람 사이로 마구 휘몰아쳤다. 삼청로에 가득한 건 낙엽뿐만이 아니었다. 마스크를 쓴 얼굴들 위를 가게 조명이 노랗게 비추니 그 모습도 서로 닮은 것 같았다. 이 커플도 아까 본 것 같고, 저 가족도 저기 수제빗집 앞에 줄 서 있던 것 같고. 보고 있자니 이제 어지러워서, 나는 홀랑 집에 들어왔다.
(에세이 주제는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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