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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0725 월 / 13헥타르를 함께 누빌 / 긴개 본문
방학을 맞은 소윤이가 서울에 놀러 오겠다고 한다. 너 혼자? 너 혼자 고속버스 표를 예매하고 버스를 타서 서울에 와가지고 지하철로 갈아탈 수 있어? 소윤이는 코웃음을 친다. 이제 소윤이는 애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자식이 글쎄 18살이 된 것이다. 아니 너 엊그제만 해도 중학교 1학년이었잖아. 중1이 고2가 되기까지 억겁의 시간이 흘러야 했을 텐데, 그걸 겪어냈단 말이야? 덜컥 걱정이 된다. 청소년 소윤이가 살아낸 4년은 내가 살아낸 4년보다 몇 배는 촘촘하고 치열했을지도 모른다. 내게는 초당 24 프레임에 그쳤던 어느 날이 소윤이에게는 60 프레임 이상의 선명한 순간이었을지도, 그리고 그런 날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서로가 동일한 시기를 살고도 다른 밀도의 경험을 쌓아왔다는 것을 대번에 들킬지도 모른다. 동시에 궁금하다. 외부로부터 왕성하게 수집한 데이터로 내면에 어떤 세상을 세워가고 있는지.
역시 방학을 맞이한 채현이, 지현이, 규리도 합류하며 인스타그램에 단체방이 만들어졌다. 청소년 수업으로 만났던 얼라들이 그새 고2, 고3이 되었다. 날 보러 와주신다는 네 명의 고딩에게 충직한 안내자가 되어 서울의 이모저모를 소개하고 싶다. 우리 짐승 같던 청소년들 고상하게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 데려갈까, 아니면 우아하게 국립현대미술관에 데려갈까. 그러다 감상을 묻고 애들이 답하다 보면 어느새 수업시간처럼 지루해질지도 모른다. 같이 쇼핑을 하기엔 취향이 제각각 일 것 같고, 그동안의 회포를 풀러 술 한 잔 하기엔 아직 이른 것 같고, 새 보자고 숲에 데려가면 심심해할 것 같다. 낯선 서울길 무작정 걸으며 힙한 곳이라 말해봤자 뭔지도 모르고 사진만 찍다가 헤어지는 건 아닐까. 카페에 우르르 둘러앉아 수능 공부는 잘 되고 있냐고 물었다가 괜히 침울한 분위기 만들고 싶지도 않아. 좁은 집에 데려와 요즘 사는 얘기 하다가 니 인생 이래라저래라 떠들고 싶지도 않아. 그렇다면 이 자식들과 도대체 뭘 하면 좋단 말인가. 어쩌면 그 답은 송파구 올림픽로 240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롯데월드라면 이 우당탕탕 청소년들을 파스텔톤으로 품어줄 수 있을 것이다. 넘치는 십 대의 혈기는 13헥타르의 드넓은 놀이공원에서 얼마든지 발산하면 된다. 근데 고3들한테 롯데월드 가자고 해도 되나? 염려하며 물으니 이미 성적은 물 건너 간 듯하다. 신나서 교복을 대여하자고 난리다. 뭐하러 돈 주고 교복을 대여해? 너네 학교 교복을 입으면 되잖아. 아뿔싸. 이 말을 뱉은 동시에 세대 차이를 느낀다. 아이들은 인스타그램에서 본 남들처럼 예쁜 교복을 빌려 입고 롯데월드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것이다. 너희의 마음은 알겠지만, 너희랑 같이 교복을 입고 다니며 내가 느낄 수치심은 왜 몰라주는 거야. 다행히 아이들 주머니 사정으로 교복 대여보다는 간식 구매에 우선순위를 두기로 한다.
평소라면 8월의 주말에 롯데월드를 가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방학이라 학생들 많고, 8월이라 덥고, 주말이라 어른들도 많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번에 신경 쓰지 않는다. 날 보러 고속버스와 KTX를 타주는 이 미성년자들에게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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