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0307 월 / 배달앱 보이콧을 널리 알리며 / 긴개 본문

2021-2023 긴개

0307 월 / 배달앱 보이콧을 널리 알리며 / 긴개

긴개 2022. 3. 7. 21:58







내가 또 배달음식을 먹으면 30만 원을 환경단체에 기부하겠다. 이 말을 인스타그램에도 올려놓고 주변에도 널리 알려서 아주 억지로라도 지키게 해야겠다. 4.8이라는 높은 평점의 퓨전양식점. 리뷰를 쭉 훑어 보니 ‘ㅠㅠㅠㅠㅠ’ 만발, ‘사장님 적게 일하고 많이 버시라’ 일색. 출출한 저녁, 요리할 시간은 없고 있어도 하기 싫으니 21,000원 짜리 파스타에 배달비 2,900원까지 해서 23,900원을 배달앱으로 결제했다. 도착 후 젓가락을 들고 신나게 덤볐다가 세 입을 먹고 내려놓았다. 이걸 먹고 눈물 흘린 고객들, 이런 음식을 돈 받고 판 사장, 이걸 돈 주고 산 나. 셋 중에 누구를 고소해야할 지 모르겠다. 배달 온 음식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버릴 생각을 하니 지구와 통장에게 한 번씩 큰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입이 짧은 탓이다. 누가 보면 귀한 집에서 자란 줄 알테다. 어지간히 맛있지 않으면 몇 번 뒤적거리다 그대로 내다버리는 이 못된 인간. 입에 뭐 쳐 넣을 자격이 없어. 먹기 전까진 그렇게 배가 고픈데, 막상 한 입 씹고 나니 짜증만 치밀어 오른다. 배달 음식 먹고 기분 좋았던 기억이 아득하면서도 지웠던 배달앱을 홀린 듯 다시 깔고 또 지우고 또 깔고 또 이렇게 멀쩡한 음식을 내다버리네.


가게 평점과 리뷰를 보며 기대했던 맛과 실제 음식에서 느껴진 맛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는 오차가 있는데, 그게 내 혀에서만 감지되는 것인지 아니면 저 평점이 허상인지 알 수가 없다. 혹은 가게에서 먹으면 맛있는 음식인데, 배달되는 동안 미지의 구간을 통과하며 본래의 맛과 향을 잃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 예측과 실제의 괴리는 지겨울 정도로 많이 느꼈으니 이제 정말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음식을 배달시키는 값이면 과일과 두유, 간단한 먹거리를 냉장고에 쌓아놓고도 남을 것인디 어찌 또 배달을 시켰느냐 묻는다면 정말 삶이 바빴기 때문이라는… 글로 쓰면서도 지겨운 변명을… 하지 말자 그냥 입을 다물자.


‘먹고 사는 문제’가 문자 그대로 끼니 챙기며 사는게 문제라는 걸 알면 뭐하나, 앎은 실천이 함께일 때 진정한 앎인데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꼬라지를 보면 아직도 모른다는 거지.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지 말자. 환경파괴를 유료 결제해놓고 징징대긴 뭘 징징대. 나 스스로에게 배달음식 30만 원 벌금형을 집행유예한다. 벌금형을 내리긴 내렸으나 지금 당장은 그 벌금 내기가 좀 아까우니, 다음에 또 이런 망나니짓을 하면 무조건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것으로 여기저기 떠들어놔야겠다. 환경책 읽고 생태 걱정하는 척 하지 말고 자연과 나 둘 다에게 이로운 행동을 해야지.


그 와중에 음식은 맛있었냐고 리뷰 남기라는 알람이 울린다. 아무리 좋게 남겨도 사장님 빡치게만 할 것 같으니 참자. 둘 중 하나만 빡치는 하루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