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0228 월 / 강아지가방에들어가신다 / 긴개 본문

2021-2023 긴개

0228 월 / 강아지가방에들어가신다 / 긴개

긴개 2022. 2. 28. 23:00







강아지는 시내버스에 탑승할 때 후불교통카드를 찍지 않는다. 티머니카드도, 현금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귀하게 가방에 모신 뒤 함께 탑승한다. 이 때 이 가방이 문제가 된다.

시내버스 운송사업 약관 제3장 운송책임 제10조에 따르면 사업용 자동차를 이용하는 여객은 동물을 차내에 가지고 들어가서는 아니 된다. 다만 장애인 보조견 및 전용 운반상자에 넣은 애완동물은 제외한다. 생활법령정보는 반려동물의 크기가 작고 운반용기를 갖춘 경우에만 탑승을 허용한다고 안내한다. 이 전용 운반상자 및 운반용기의 정의는 누가 내리는가? 재질과 규격을 별도로 안내하지 않는 이 허술한 약관 덕에 버스기사와 승객의 실랑이가 벌어지게 된다.

우리 멍멍은 내 머리통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적은 양의 털을 흘리는 푸들이다. 검은 옷을 입고 안아보면 털이 전혀 묻지 않은 것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나만 아는 귀여운 사실일뿐 당연히 타인은 알 수 없지. 그래서 몸에 매는 가방에 멍멍의 온 몸이 들어가도록 쏙 넣고, 숨은 쉴 수 있게 검은 망으로 위를 전부 덮은 뒤 망의 입구를 조여매 밖으로 털이 나오지 않게 주의 했다 이말이야. 또한 우리 멍멍은 아주 과묵한 스타일이라 실제로 옆 승객은 목적지에 내릴 때가 되어서야 검은 망 속을 보고 ‘어, 강아지?’ 하고 알아차릴 정도로 소음 공해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밖으로 몸이나 털이 나오지 않게 막고, 소리도 내지 않으며 작아서 품에 안으면 옆자리를 침범하지도 않는 얌전한 승객인데도, 어제는 버스기사로부터 사나운 주의를 들었다. 앞자리 승객이 뒤돌아 가방을 보더니 강아지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한 마디 거들었지만 버스기사는 개의치 않았다.

내가 그저 한 명의 승객일 뿐인것처럼 아저씨 또한 한 명의 버스기사일 뿐인데 어찌하여 상습적인 불량학생을 대하는 학생주임처럼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일까. 운송약관을 잘 읽고 대중교통용 가방을 착용했다고 말해도 어쩐지 굉장한 죄인이 된 기분. 이 가방으로 버스에 여러 번 문제 없이 탑승했었다고 말해도 점점 더 뻔뻔한 민폐 승객이 되어가는 기분. 내가 취할 수 있는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애견용 케이지라면 저 버스기사가 두 팔 벌려 환영해줄까? 그러나 애견용 케이지는 들고 탄 뒤 다리 밑에 놓기 어려울 정도로 크기 때문에 결국 사람이 앉을 자리를 하나 차지하게 된다. 고속버스라면 돈 주고 좌석을 하나 사면 그만이지만 시내버스는 그럴 수도 없다. 게다가 버스가 교통사고가 났을 때 단단하고 무거운 케이지가 날아가 앞사람이나 옆사람에게 부딪힌다면 2차 피해가 훨씬 클텐데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 차라리 내 몸에 밀착해 잘 벗겨지지 않는 이 가방이 다른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사고가 났을 때에도 2차 피해를 적게 일으키니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은 역시 나만의 생각이고 버스기사는 어떤 말로도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 이 사람은 그냥 오늘 기분이 안 좋았을 수도 있고, 원래 밥맛일 수도 있다.

애초에 강아지를 버스에 데리고 타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곤충과 새, 쥐, 고양이, 개 뿐만 아니라 더 많은 토착동식물이 도시에서 함께 살아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알러지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바닥에 똥오줌을 흩뿌리지 않는 한에서라면 동물이 버스도 좀 타고 도시를 더 자유롭게 오가고 여기에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부동산과 도시, 서울과 지방은 인간이 멋대로 만든 사회적 현실이다. 물리적 현실에서의 지구는 인간 종을 섬기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다. 도시 개발은 나와 인류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었지만 동시에 전 지구에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가져왔다. 인간은 자연과 분리되어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 혐오 동물로 인식되는 바퀴벌레나 비둘기, 쥐도 숲이나 초원에서 만나면 그다지 더럽거나 피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도시에서의 자연은 어색하고 덜어내야 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자연이 주거지에 가까운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이득이며* 정서와 신체에 가져다주는 건강과 행복은 말할 것도 없다.

버스기사 아저씨가 어렸을 땐 닭을 들고 버스에 타는 할머니나 살아있는 해산물을 들고 타는 아주머니, 시장에서 진돗개 한 마리를 사온 아저씨도 버스에 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아저씨네 동네 뒷산에서 꿩도 보고 어쩌면 고라니도 보았을 것이다. 동네 나무에 날아드는 새도 까치, 참새, 비둘기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았을 것이다. 어쩌면 아저씨 성격이 드러워진 것은 내가 강아지를 꽁꽁 싸매고 버스에 탔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동식물과 자연에서 너무 멀어졌기 때문일 수도 잇다.

내 성격이 드러워진 것도 자연에서 너무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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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친화적 건축설계는 냉난방 유지비를 크게 절약할 수 있으며 도심 속 자연 근처는 방문객 증가로 인한 주변 상권이 형성되는 등 경제적 파급 효과도 크다. 연트럴파크 주변과 서울숲 근처, 도산공원, 보라매공원 등이 가까울수록 집값이 높은 현상은 주거지 근처의 자연을 위해 사람들이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