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0206 월 / 울지마라 산비둘기야 갈 곳 없는 / 긴개 본문

2021-2023 긴개

0206 월 / 울지마라 산비둘기야 갈 곳 없는 / 긴개

긴개 2023. 2. 7. 00:42






내 고향을 어디라 부르면 좋을까. 오랫동안 꿈에서 어릴 적 살던 아파트와 초등학교 주변을 배회했다. 당시 살던 아파트에서 학교로 가는 지름길은 아파트 담장을 넘고 저수지를 지나 야트막한 산을 타 넘는 거친 흙바닥이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생들은 롤러 블레이드를 신고 아침에 모여 다 함께 산을 타러 가곤 했다. 롤러 블레이드 신은 아이들이 흙과 돌이 가득한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는 광경은 지금 생각해 보면 기이하고 아찔하지만, 당시 누가 더 멋있고 위험하게 바퀴 달린 신발로 묘기를 부릴 것인지 경쟁의식이 가득했던 초등학생들에게는 즐거운 일상이었다. 매일같이 아파트 담장을 넘는 아이들이 많아지자 결국 아파트 관리소에서는 담장에 안전하게 오를 수 있는 계단과 담장의 일부를 제거해 문을 만들어주었다.

겨울에 학교 근처 저수지가 얼면 누가 더 멀리까지 얼음 위를 걸어갈 것인지 시합을 했다. 여름엔 얕은 물가에 들어가 올챙이를 잡고 바위 움푹 팬 곳에 물을 채우고 가득 담았다. 지나가던 아저씨는 올챙이 구덩이를 들여다보더니 그건 황소개구리 올챙이니까 다 죽여야 한다고 말했고, 어린아이들 특유의 천진난만한 잔인함으로 그 바위는 그대로 맷돌이 되었던 기억. 그러나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저수지를 둘러싸고 있었고, 사람들 무리 안쪽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울었던 날 이후엔 저수지 주변에 연두색 철망이 둘러졌다. 철망 때문에 더 이상 물놀이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투덜거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투덜거릴 수 있는 것도 크나큰 행운이었으리라.

신축 건물이었던 초등학교 근처에는 백양사라는 절이 있었다. 학교가 파하면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절에 놀러 가 물 한 바가지를 마시고 다시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날도 있었다. 또 부처님 오신 날 절에 가면 맛있는 비빔밥을 나눠주었으므로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축제가 열린 것 같기도 했다. 이후 절을 좋아하게 된 것도 다 이 시절의 기억 덕분이다.

학교가 있던 산자락 반대편에는 논밭이 멀리 펼쳐져 있었다. 어느 날은 탐험 놀이를 한답시고 어린아이들 치고는 꽤 먼 길을 가기도 했다. 뱀딸기를 따먹으며 좁은 시골길을 걷던 친구는 차를 피하다 그만 논에 빠져 다리에 거머리를 주렁주렁 달고 나오기도 했다. 거머리 몸통은 미끌거려 작은 손으로 꽉 잡기 어려웠고, 겨우 잡고 보니 다리에 아주 찰싹 입을 붙인 통에 떼어내는 동안 몸이 치즈스틱처럼 길게 늘어날 정도였다. 거머리를 돌로 쳐 죽인 뒤에도 우리는 씩씩하게 탐험을 계속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자 비로소 지나가는 경찰차의 꽁무니를 좇아 겨우 되돌아오기도 했다.

부모님 고향은 그 동네가 아니었다. 부부는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낯선 지역에 살림을 차렸으나 끝내 사투리 한 번 쓰지 않고 금세 서울로 돌아와버렸다. 나는 그 이후 다시는 그곳에 가보지 않았다. 언젠가 떠올라 로드뷰 기능을 사용해 모니터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더니 내가 알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절마저도 현대식으로 바뀌어 우물 자리도 없어지고 말았다. 이제 그곳에는 다시 만날 친구도 없고 돌아갈 장소도 없다. 게다가 나는 한 번도 그곳을 고향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 내게 고향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계속해서 나는 꿈속에서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그곳을 헤매고 또 헤매다 길을 잃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