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0131 월 / 강아지 간식을 핥으며 / 긴개 본문

2021-2023 긴개

0131 월 / 강아지 간식을 핥으며 / 긴개

긴개 2022. 1. 31. 22:21

 



 내 강아지는 겁이 많다. 빗방울이 덤불 위로 투둑, 우비 위로 투둑 떨어지는 소리에 매번 깜짝 놀라는 바보 란마. 그러나 비가 와도 산책은 꼬박꼬박 가셔야 하는 성실한 우리 멍멍이. 이렇게 심약한 멍멍구에게는 노즈워크 장난감을 추천한다. 사람보다 후각이 발달한 개는 장난감 속에 숨겨진 간식 냄새를 코로 쫓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감을 얻고 어쩌구 한다니 당연히 사줘야지. 영하의 날씨에 산책을 나섰다가 애견용품점을 발견하고 뒷걸음치는 어른 개를 설득해 밝고 따뜻한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님이 추천한 노즈워크 장난감 중 삑삑 소리가 나지 않으며 빠르게 이리저리 구르지 않는 걸 고르고, 강아지 전용 땅콩버터와 전용 패드도 샀다. 분리불안이 심한 강아지에게 외출 시 주면 좋은 이 땅콩버터는 성분도 안전하고 한국에서 구하기 어렵단다. 벽에 착 붙는 패드에 버터를 발라두면 오랫동안 핥을 수 있기 때문에 외출 시 활용하면 좋다고 한다. 가격을 듣고 망설이는데 땅콩버터를 바르자마자 사장님네 강아지가 허겁지겁 패드를 핥는 걸 보고 바로 카드를 꺼냈다. 

 

 집에 돌아와 울룩불룩한 실리콘 패드에 고소한 땅콩버터를 한 스푼 바르고 란마에게 보여주니 슬금슬금 뒷걸음을 친다. 아뿔싸! 패드가 무서울 줄이야. 손가락에 묻힌 버터는 낼름 잘만 핥으면서 패드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패드도 돈 주고 산 건데! 란마가 정신없이 버터를 핥는 동안 몰래 슉 외출하려던 계획이 산산이 무너지려 했다. 급한 마음에 쭈그려 앉아 패드를 들고 란마의 시선을 끈 다음 챱챱 소리를 내며 버터를 핥는 시범을 보였다. 란마가 관심을 보이면 열심히 칭찬하며 패드 냄새를 맡게 하고, 뒷걸음치면 또다시 챱챱 핥는 시늉을 했다. 강아지용 땅콩버터를 열심히 핥는 인간과 이 모든 상황이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강아지. 

 

 평생 어린아이일 란마에게 진심을 전달하기는 어렵다. 순순히 발톱을 깎고 목욕을 하고 스케일링을 하도록 충분히 설득할 수 없다. 강아지는 죽을 때까지 내 마음의 반도 모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출근하는 모습을 보며, 또 퇴근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어떤 심정인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짐작해본다. 우리는 서로를 모르면서도 좋아하고 같이 있으려 한다. 아무리 밀어내도 어느새 다시 오른팔 옆에 앉아있는 고양 호두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터 무릎에 슬쩍 앉아있던 고양 째즈도. 

 

 네발짐승 셋이 어지럽힌 집을 나 혼자 치울 때는 억울해진다. 그러나 두발짐승 사이에선 인기 없던 내가 여기에선 슈퍼스타라는 걸 떠올리면 좀 견딜만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고양들이 울고 강아지는 기지개를 켜며 얼굴을 핥는다. 화장실 한 번 가는데 셋이 졸졸 쫓아오고 간식을 든 손짓 한 번에도 열렬한 관심을 받는다. 혼잣말을 해도 제각각 나름의 리액션을 해준다. 두발짐승에게선 도통 받기 힘든 애정이다.

 

 무릎에 털썩 누워버린 고양과 의자 바로 옆에 누운 멍멍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화장실 가고 싶은 걸 꾹 참으려니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좋을지 차분히 생각하기가 어렵다. 내일은 설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