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왜 또 잘 걷는 건데... 왜 또 걷고 싶은 건데... 6박 7일 간의 제25회 녹색순례 회고 _250423 본문

2025 긴개

왜 또 잘 걷는 건데... 왜 또 걷고 싶은 건데... 6박 7일 간의 제25회 녹색순례 회고 _250423

긴개 2025. 4. 23. 16:20

인정한다. 도보 순례가 좋았다는 것을. 평소 수호하던 가치관-깨달음에 고행이 필수라는 생각은 오만이다-을 결국 부정하게 되는구나. 고통을 요리조리 피하려 최선을 다했던 이전의 나를 머쓱해하며. 싫은 점보다 좋은 점이 더 많았다는 걸 인정하기가 왜 그리 싫었는지. 
 
일주일 간 100km 이상 걷는 동안에는 몰랐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 매 순간 내딛는 발걸음에 몰두하고, 날씨에 따른 신체의 온도 변화에 대응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러나 그토록 기다리던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발견했다. 다리와 배에 근육이 꽤 붙었다는 것을. 오르막길을 오를 때 누군가 뒤에서 엉덩이를 밀어주는 듯 튼튼해진 몸을. 이 순례가 끝나기만 하면 하루 종일 집에서 꼼짝 않을 거라던 다짐도 무색하게, 짐을 풀고 세탁기를 돌리자마자 밖으로 나와 한 시간 반을 걸어버렸다. 단단해진 허벅지를 꾹꾹 눌러보면서.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았지만 일주일 간 맞춰놓은 수면 사이클을 망칠까 싶어 참고 돌아왔다. 열두 시 취침-여섯 시 기상이 평생 얼마나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던가. 
 
순례 전 걱정했던 것 중 하나는 위생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더러운 화장실에 다녀오면 몇 달간 악몽을 꿨다. 몹시 흔들리는 화장실 속에서 안간힘을 쓰고 버티다 넘어져 온몸에 오물을 묻히고 마는 꿈. 이후 스티븐 킹 단편 「아주 비좁은 곳」을 읽고 또 그 꿈에 시달릴 정도로 공중화장실 공포는 오랫동안 나를 강력하게 지배했다. 그러나 서른 명이 함께 먼 길을 걸어가려니, 하루 종일 흘린 땀을 찬물로 씻어내거나 어촌 마을회관 화장실에서 샤워하는 일, 희미한 기억 속에나 존재하던 화변기 따위를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굳이 이런 고통으로 깨달음을 얻고 싶지 않다고 여러 번 되뇌었지만 결국 뭔가 느끼고 말았다. 이렇게 지랄 맞게 투덜대는 사람도 완주할 수 있었던 건 주변 사람들의 무한한 배려 덕분이라고. 깊어 고요한 사람들 곁에서 내 얕은 마음은 어찌나 요란하게 출렁이던지. 저들이라고 더러운 화장실이 좋을 리가 있나. 순례의 목적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나는 거지. 
 
눈을 뜨고 다시 잠들 때까지, 단 십 분도 혼자 있을 틈 없었던 것 역시 굉장한 공포였다. 외향적인 편이라지만 하루의 반 정도는 홀로여야만 했다. 조용한 동네에서 입 닫고 지내던 일상에서 끌려 나와 서른 명 가량의 사람들과 6박 7일 내내 함께 먹고 자고 싸고 씻고 걸으려니 긴장해 새벽마다 뒤척였다. 낯선 사람들과 24시간을 찰싹 붙어 지내기란 지금 생각해도 형벌에 가까웠다. 매시간 빽빽하게 짜인 스케줄도 마찬가지였다. 중학생 때부터 군대에 가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얼마나 자주 안도했던가. 단체 생활의 악몽이 공교육에서 끝난다는 것만이 당시의 내게 큰 희망이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몸이 머리보다 빠르게 적응했다. 스케줄에 맞춰 강제로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짐 싸고 푸는 손이 능숙해지고, 샤워 시간도 짧아지고···. 이쯤 쓰고 나니 나를 적응하게 도와준, 그 지치지 않는 다정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해산 전날, 33km를 목표로 걸으며 나는 발바닥 통증과 피로에 지쳐 있었다.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부정적인 답을 쌓기는 너무 쉬웠다. 그러다 옆에서 걷던 숲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굉장히 힘든데 뭔가 힘이 날만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무례하게 들릴 법한 요구에 숲은 느닷없이 매 끼니마다 함께 부르던 <밥 노래>를 시작했다. 그것도 계속 다른 멜로디를 붙여서 메들리로. 노래만 한 게 아니라 요란하게 춤도 췄다. 근육량이 적어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걷는다고 놀림받던 숲이 내 말 한마디에 온몸을 들썩이며 응원을 해댔다. 기가 찬 주변 사람들이 헛웃음을 짓다가 나중엔 깔깔 웃었다. '아침엔 웃고, 점심엔 무표정이다가 저녁에 우는 것은? :숲'이라는 농담이 생길 정도로(물론 내가 지었다) 체력 방전의 아이콘이었던 숲이 동료를 응원하기 위해 십 분이 넘게 팔다리를 휘적였다. 이 기괴한 춤사위와 노래에 나는 그만 행복해지고 말았다. 사실 이런 순간은 6박 7일 내내 가득했다. 순례가 싫다고 외치던 입이 다물어지기까지 정말 많은 다정이 나를 다독였다. 
 
어쩌면 나는 세상엔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이 실존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많은 사람 중 짜증을 내거나 남 탓을 하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자식이 나 하나였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만난 민주주의, 생명의 길을 걷다'라는 주제로 국립 5.18민주묘지부터 전남도청, 여순사건 기념관, 한화여수공장 14연대 주둔지, 우두마을회관 민간인학살터를 걷고, 또 무등산 평두메습지와 장록습지, 세풍습지 등을 걷는 동안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생명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고 질문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몸 하나 가누려 허둥대는 내가 얼마나 얕고 초라하던지 인정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마지막 날 33km를 걷고 도착한 서울대 남부학술림 추산시험장에서 서로의 소회를 나누던 시간, 나는 기똥차게 멍청한 소리-경치 좋은 길 걷는 게 직업이라니 정말 개꿀이다-로 포문을 열었다. 다른 순례자들은 민주주의의 의미가 태어난 장소와 사건에 대한 개인의 깨달음을 기꺼이, 온마음으로 나누었다. 동일한 고생 뒤에 다른 깊이의 깨달음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깃털 같은 내가 휘릭 날아가버리고 다시 바닥에 내려앉기까지 며칠이 더 걸릴지 아직 모르겠다. 그러니까, 정말 이런 깨달음 따위 얻고 싶지 않았다고. 
 
1998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녹색순례는 환경단체 녹색연합의 오랜, 귀한 전통이다. 그 단단한 길에 한 발짝 얹었다고 뭔가 깨달은 척했지만 여전히 아는 건 없다. 생명과 평화가 무엇인지 내가 이해하는 날이 오기는 할까. 몰라. 앞으로도 고민을 멈추지 않는 녹색연합 사람들 주변을 빙빙 돌며 관찰하고 싶다. 비교할 수 없게 아름다운 마음들에 질투만 나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누군가가 있다면 녹색연합 후원을 권하고 싶다. 살면서 본 사람들 중 손에 꼽게 귀한 이들이 여기에 가득하다. 신기하다.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활동에 관심이 있다면 https://www.greenkorea.org/support/ 



p.s.1 걷기는 정말 최고의 운동이다. 돌아와 샤워하며 거울을 보니 아랫배가 매끈하게 들어가고 복근이 선명히 자리 잡았다. 심지어 오늘은 휴가를 내고도 몸이 근질거려 21키로미터를 혼자, 또 함께 걸었다. 그러고도 가뿐하다. 지금의 몸 상태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고 싶다. 이제부터 내 취미는 정말 걷기가 될 것 같다. 

 

p.s.2 순례 중 오마이뉴스에 하루의 여정을 기고했다. 광주 오월길 시민군코스와 장록습지, 여순사건기념관을 다녀온 뒤의 짧은 회고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20495 물론 다른 날 기고자들의 이야기도 한 번씩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