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돌이킬 수 없는 미래로 나는 간다,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윤석열 파면 판결을 환영하며_250407 본문

2025 긴개

돌이킬 수 없는 미래로 나는 간다,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윤석열 파면 판결을 환영하며_250407

긴개 2025. 4. 9. 00:31

 

 몇 달간 글방에 '윤석열 파면' 손팻말들을 붙여두었다. 처음엔 유리 밖에다 붙였는데 누군가 자꾸 떼버렸다. 종이를 뜯었으면 분리수거나 할 것이지 길에다 냅다 버려놓았지 뭔가. 길 가다 말고 슬그머니 멈춰 서서 남의 가게에 붙은 종이를 손톱으로 긁고 있을 사람을 생각하니 좀 징그러웠다. 스토리에 찢어진 손팻말을 찍어 올렸더니 한 글벗이 새것으로 여러 장 구해주었다. 거기다 영리하게도 하나는 밖에, 하나는 안에 붙였다. 며칠 뒤 찾아온 잡범은 결국 한 장만 조금 뜯다 돌아간 듯했다. 자꾸 찾아오는 이의 표정이 궁금해 CCTV를 설치했지만 며칠 보다 말았다. 녹화 파일 보고 있을 시간에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내가 글방에 없을 때만 찾아와서 한다는 짓이 고작 종이 뜯기라면 상대하기도 너절하다. 할 말이 있으면 광장으로 나오지 그랬나. 그 대신 '말'이어야 한다. '짖음'이라면 역시 상대하기 귀찮다.

 

 오늘은 습기와 햇빛에 너덜해진 손팻말을 떼고 그 자리에 빳빳한 새 종이를 붙였다. 헌법재판소 사건번호 2024헌나8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결정요지문이었다. 한 장에 두 쪽씩 인쇄하니 총 아홉 장이었다. 뒷면을 이어 붙여 길게 늘어진 종이가 유리 한 면에 걸렸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은 먼저 결정요지문을 반듯하게 다섯 번씩 필사해 보면 좋겠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면 몸에 새겨보면 어떨까. 왜, 가끔 자신도 이해 못 한 경구들을 몸에 새기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렇게라도 텍스트를 가까이해 보란 말이다. 잉크 적신 바늘이 살갗 위를 달릴 때 그 한 획 한 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했는데도 탄핵 결정에 의문이 생긴다면 그때는 마주 앉아 손을 붙잡고 대화해보고 싶다. 내 말은, 헌법 판결문 대신 스카이데일리 보고 와서 짖지 말자고. 트럼프가 한국 대통령 구하러 온다는 캡틴 아메리카 쫄쫄이남 말 믿고 성조기 흔들지는 말자고.

 

 사실 아직 얼떨떨하다. 123일간의 지난날을 어떤 말로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우리가 윤석열 그 새끼를 파면시켰다고? 군인을 앞세워 국회를 점령하고 수천의 인명살상을 계획했던 제20대 대통령의 악의를 우리가 꺾었다고? 장전된 총을 고작 비폭력 행동으로 무력화시켰다고? 염치 없는 거짓과 잔인한 이기심을 헌법적 근거와 시민의 열망만으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고? 믿기지 않는다. 한쪽에선 정치 이야기로 소란 피우지 말라는 멍청이들이 있고, 한쪽에선 윤석열을 왕으로 받드는 노예들이 있고, 또 어딘가에는 고작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말을 지지하기 위해 윤석열을 뽑은 등신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가 이겼다고? 아무런 무기도, 거짓도, 혐오도 없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우리가 정말, 한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데 한몫을 했다고? 나는 이 모든 일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도, 윤석열은 그래도 다른 대통령들이 못한 경제 성장을 이뤄내지 않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의 사실 관계가 틀린 것은 둘째 치고(윤석열 정부 경제 성장 근거를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지, 하물며 조중동도 윤석열 때문에 경제 망했다고 난리인데), 경제를 성장시킨 사람에게 타인의 존엄을 해칠 권리가 주어진다는 말은 어느 나라에도 없는 궤변이다. 아니, 궤변도 못된다. 그 말 자체가 범죄다. 내 손에 돈 좀 쥐어줬다고 다른 놈을 패도 된다고 허용하는 것은 도대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앞으로도 못할 수준의 사고방식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무서운 건, 자기는 절대 피해자가 되지 않을 거란 확신을 온몸에 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그가 지금껏 법 없이도 살만큼 선했기 때문이 아니다. 여차하면 자기도 주먹을 휘두르는 쪽에 합류하면 된다는 판단에서다. 일베에서 재구성한 대체역사로서의 근현대사만 아는 사람의 오류다. 제주 4.3 사건, 광주 5.18 민주화운동, 여주・순천 10.19 사건, 4.19 항쟁이 비극으로 기억되는 건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도 막대했기 때문이다. 비극은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피해자가 되기 전에 가해자가 되겠다는, 자신만은 될 수 있다는 판단 오류가 구역질 나게 무섭다. 지난 123일간 그런 무식과 오만이 목소리를 얻어 광장 한 구석을 점령했다. 온라인에서 움튼 거짓의 씨앗이 사람들 마음에 뿌리내리더니 암덩이처럼 깨끗이 제거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 사태가 만든 가장 큰 비극은 바로 그런 점이다. 이 작은 나라에 너무나 큰 쐐기를 박아 다시 봉합할 엄두도 나지 않게 두 쪽으로 갈라놓은 것. 우리의 삶이 균류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깊게 깨달은 쪽과 나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잔인무도함을 삶의 지침으로 세운 쪽으로 나눠진 것. 혹은 이제야 명확해진 것. 이 분열은 몇 세대에 걸쳐 한국에 새로운 비극을 낳을 것이다. 근미래가 두려워지는 것도 그 때문이고. 이를 극복할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파면 선고 이후에도 나는 두려웠다. 

 

 그러나 윤석열의 계엄 사태를 겪으며 깨달았다. 우리 삶의 어떤 이야기도 완전한 끝은 없다는 것을. 안국역 거리에서 수많은 이들과 파면 선고를 들으며 나는 울었다. 거리를 가득 채운, 혹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마음 졸이던 시민들의 열망대로 한국이 정상 궤도로 돌아가던 순간이었다. 총칼이 우리의 몸을 부술 어떤 미래를 물리쳤다. 몸에 힘이 풀리고 얼굴이 뜨거웠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얼굴 위로 햇빛이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음 집회의 주제는 뭐가 될까. 이건 박근혜 때와는 다른 전개였다. 박근혜 파면 선고를 듣던 날엔 오래 끌었다며 짜증을 내긴 했지만 금방 개운해졌고 곧 잊었다. 언제 시위 같은 데 나갔냐는 듯 정치와 투쟁에 등 돌리고 살았다. 이번에 떠올린 건 새로운 미래였다. 집회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제 시작이다. 

 

 그동안 광장에서 다양한 이들이 목소리를 냈다. 저마다 어떤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그 삶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싸워왔는지 그 절실함을 낱낱이 말했다. 끔찍한 추위 속에서 혼절할 듯 떨며 나눈 이야기를 잊기란 쉽지 않다. 앞으로 싸워야 할 상대, 연대해야 할 사람의 목록이 선명해졌다. 그들을 기억 저편으로 치워버리고 예전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기란 이제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우리는 하루라도 연명하기 위해 무엇이든 그대로 두어선 안 되는 운명을 지고 태어났다. 보금자리를 가꾸고 식량을 수급하고 신체 활동을 유지하려면 정말 한순간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생명의 조건이자 소멸을 유예시키는 방법이다. 우리는 죽기 직전까지 숨을 내쉬고 들이쉬며 호흡근과 기류와도 싸운다. 투쟁이 생의 본질이다. 연대가 투쟁의 무기다. 

 

 그날 안국역 거리 어디에나 사람이 가득했다. 길거리에 앉아있던 엄마가 나를 단번에 알아보고 멀리서 불렀다. 나 역시 스피커 소리와 군중 소리 사이에서 엄마의 목소리를 선명히 구분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가 손팻말을 들고 웃었다. 그 얼굴을 똑바로 보기가 힘들었다. 다행이면서도 걱정이었고, 그 자리에 같이 앉고 싶으면서도 멈춰 설 수 없었다. 파면 선고 후 엄마가 울고 있던 나를 찾아왔다. 그러더니 왜 우냐며 웃었다. 어이없어서 나도 곧 그쳤다. 그러게. 뭐 하러 울었을까. 이제 겨우 앞길이 구만리인데. 큰 소리로 노래할 수 있게 덜 울고 자주 웃어야지. 

 

 오늘 오전, 길을 걷는데 뒤에서 경적 소리가 들렸다. 기사님이 마을버스를 세우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 계엄 당일 국회로 달려갈 때 마을버스에 탔던 나를 기사님은 오래 기억했다. 그 뒤로는 마주칠 때마다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날 우리는 마지막일 뻔했던 인사를 나눴고, 파면 선고 이후 가장 반가운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나도 얼른 뛰어가 창 너머로 손을 잡았다. 잠깐 손에 힘을 준 뒤 버스는 다시 떠나갔다. 다음에 버스에서 만나면 앞자리에 앉아야지. 그리고 그날 찍은 장면을 꼭 보여드려야지. 사람들이 서로 마구 껴안고 울고 웃던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