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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9 (4)
성북동 글방 희영수
모기 물린 자국은 희미해져 가고 산책 후엔 옷깃에 나뭇잎이 달리는 계절이다. 어느새 매미들이 입을 다물었다. 뒷산을 타고 노는 새들 중 몇몇은 먼 나라로 떠날 채비를 할 것이다. 트렌치코트 입기엔 낮이 더워 일주일은 더 기다려야 하는 이때, 니트 조끼를 입기로 한다. 뒤죽박죽 날씨에 걸맞은 현명한 선택이리라. 그렇게 흰색 반팔 티셔츠 위에 남색 조끼를 걸치고 집 밖을 나설 때는 당당했으나 한낮의 햇빛에 등허리가 금세 축축해졌다. 가고 싶었던 서점에 업무 상 방문하게 된 덕분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영업하지 않는 날을 대관한 터라 일반 손님도 없었다. 넓고 깨끗하고 조용한 서점 안에서 영원히 헤매고 싶었다. 참지 못하고 책을 사고 말았다. 갖고 싶은 책을 만나면 브레이크를 밟기 힘들다. 읽지 않은 책..
밤 아홉 시 즈음 깨닫는다. 출출하다는 것을, 그리고 뭔갈 먹기엔 늦은 시간이라는 것도. 해가 진 뒤에 간절해지는 음식은 대부분 기름지고 달고 짠 것들이다. 먹고 나면 금세 더부룩해진다. 자연스럽게 냉장고에 맥주가 남아있던가 기억을 더듬어보게 된다. 그러니까 여기서 그만 두자. 여기서 굴복한다면 정해진 미래는 하나뿐이다. 기름진 음식을 먹고 맥주로 식도와 위를 식힌 뒤 빵빵해진 배를 눕혀 힘들게 잠들었다가 피곤이 배가 된 채 아침에 깨어나는 것, 그리고 어젯밤을 후회하는 것. 미래를 엿본 현명한 자는 요거트 하나, 이것만으로 굶주린 충동을 얼마든지 굴복시킬 수 있다. 확고했던 다짐은 밥풀로 붙여둔 메모지처럼 시간이 지나자 힘없이 나풀거려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요거트를 위장으로 한 숟갈씩 내려보냈더니 ..
쫓기듯 이사한 집엔 빛이 들지 않았다. 창문은 눈보다 높게 달려 있었다. 종종 그 앞으로 지나다니는 주인집 아줌마의 쓰레빠가 보였다. 무릎은 커녕 종아리도 간신히 보이는 좁은 창문이었다. 가끔 고양이들이 창틀에 올라가 어딘가를 골똘히 보았다. 창문이 너무 높게 달린 탓에 거길 뛰어 오르고 뛰어 내릴 때 주변의 많은 것을 넘어트렸다. 비 오는 날엔 젖은 먼지가 튀고 밤엔 벌레가 들어오는 골치 아픈 창문이었다. 그래도 그 비좁은 구멍으로 들어올 강도는 없을 것 같았다. 동네는 산비탈에 있었다. 집을 나오면 무조건 가파른 내리막이나 오르막을 걸어야 했다. 조금만 걸어도 허벅지가 아프고 숨이 찼다. 도로엔 사람을 위한 여백이 없었다. 마을버스 백미러가 귓가를 스쳐도 앞만 보고 걸었다. 마을버스, 택배 트럭, 택..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고 해서 미술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 미술대학을 졸업해놓고 미술학원에서 배운 대로 그리는 나를 보니 알겠다. 학원에서 배운 입시 미술 기본기는 대학에서 배운 수많은 이론보다 깊은 곳에 들러붙은 뒤 흡연자 폐 속의 타르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어젯밤 간만에 파레트를 꺼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입시 미술학원에 등록하며 샀던 이 낡은 수채 파레트는 그때의 붓 세트와 함께 아직까지도 종종 책상 위에 오른다. 며칠 전 본 오리를 그리고 싶었다. 맑은 날 오리가 노니는 물가는 반짝이고 시원했다. 당시의 사진을 참고해 스케치를 하고 수채 물감을 풀어 색을 칠했다. 한참 그려놓고 보니 알겠다. 이건 머리가 아닌 손의 기억으로 그린 그림이다. 수고를 덜고 그려 발전이 없는 그림. 길가에 세워놓은 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