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길위의인문학
- 긴개의사자성어
- 성북동글방
- 성북동
- Brazilian
- soul
- 성북동글방희영수
- 희영수
- 전시
- 긴개만화
- 버추얼리얼리티
- 성북동희영수
- 라현진
- (null)
- 사자성어
- 에세이
- MPB
- post-treeproject
- 영화
- 긴개
- 동시대의친구나무새롭게사귀기
- 서평
- 2024길위의인문학
- 드로잉
- latin jazz
- 에로잉
- bossa nova
- 단편소설
- 에코샵홀씨
- 글방
- Today
- Total
목록2021/11 (5)
성북동 글방 희영수
의자에 앉아 핸드폰 화면만 엄지로 밀고 당긴 게 벌써 한 시간째이다. 무기력한 이 모습은 바로 우울의 신호지. 우울하다고 행인에게 새총을 쏘거나 횟집 물고기를 훔치지 않는 고도로 사회화된 나를 칭찬한다. 술에 취해 운전하거나 사람을 괴롭히는 건 감형받지만, 우울하다고 그런 행동을 해선 안 된다. 행인들 주머니에 쓰레기를 넣어도 안 된다. 우울한데 좀 봐주면 안 되나? 안된다. 이럴 때일수록 귀부인의 몸가짐이어야 한다. 나는 지금 귀부인. 나는 지금 귀부인. 마음의 평정을 찾고 싶을 때 성숙한 사람들은 요가를 한다. 오전 열시 반에 매트 위에서 다리를 머리 뒤로 넘기며 땀을 좀 흘렸다. 이럴 때일수록 식사도 신경 써야지. 맛있는 과일 샐러드에 치즈빵을 먹었다. 스스로 깨끗이 씻겨놓았다. 무릎에 앉은 고양도..
병 씨 성을 갖고 태어났더라면 꼭 등단해서 시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 하러 온 기자가 민망한 표정으로 나를 ‘병 시인님-’하고 부르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볼거다. 그러나 한국에 병 씨는 없으니 변 씨로 타협하겠다. ‘변 시인님-’하고 부르는 사람들이 움찔움찔 웃음을 참는 모습을 보고싶다. 다른 성 씨는 재미가 없다. 나 대신 변 씨 성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장래희망으로 시인을 고려해주었으면 한다. 주인공이 까마득히 높게 날았다가 로켓처럼 빠르게 콘크리트 바닥으로 주먹을 내리꽂는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어쩌다 *을 보았다. 주인공은 패터슨, 버스 기사이다. 퇴근할 때 버스가 배트카처럼 변하지도 않고, 마지막에 내리는 승객을 연쇄 살인하지도 않는다. 놀라운 운전 실력을 살려 투잡을 뛰지도 않는..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아침이었다. 작은 로터리를 둘러싼 가로수 아래로 노란 점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걸 보고 있자니 고등학생 때가 떠올랐다. 반 애들이 쉬는 시간에 우르르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더니 교정의 은행나무 아래를 폴짝거렸다. 떨어지는 이파리를 땅에 닿기 전에 잡으면 대학에 붙는다는 소릴 듣고 그러는 거였다(정민 씨는 이 말을 듣고 추풍낙엽 전형이냐고 했다). 그러고 있을 시간에 공부를 해야 대학에 붙지 않을까?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오늘은 나도 그러고 싶었다. 대학에 또 가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살랑살랑 떨어지는 잎이 갖고 싶었다. 은행나무 아래에서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낙엽은 모기보다 잡기 어려웠다. 속도도 훨씬 빠르고, 무엇보다 방향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왕창 떨어지..
망아지 끼니 챙기기 핸드폰을 켜보니 9시 51분. 요가 수업은 10시부터. 후다닥 나오다가 침실 문 앞에 웅크리고 있던 첫째 고양을 밟을 뻔했다. 바지를 다리에 끼우다 고무 밴드에 발가락이 걸려 비틀거렸다. 열쇠를 챙겨 문밖을 나섰다. 내리막길을 슬리퍼로 짝짝 뛰어 내려가는데 양 볼이 낯설게 상쾌하다. 왔던 길을 도로 뛰어 올라가 현관문을 열고 마스크를 집어 들었다. 다시 내리막길을 짝짝. 3분 거리의 요가원에 도착해 숨을 고르고 자리에 앉았다. 땀을 삐질 흘리며 관절을 어색한 방향으로 꺾는다. 긴 몸뚱이는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엉성하다. 다섯 달째 요가원에 다니고 있는데, 여전히 할라아사나*와 살람바 시르사아사나**가 어렵다. 다른 자세도 어렵지만 이건 나아질 기미가 없다. 언젠가는 되겠지 느긋하게 기..
순백의 산타클로스 영암군의 특산품 광고 모델은 씨름 선수들이었다. 고속버스터미널 승강장 의자에 앉아 11번 게이트 위 커다란 전광판을 넋 놓고 보다가, 웃통을 벗은 채 울룩불룩한 근육을 뽐내는 남자들 덕분에 흠칫 놀랐다. 가슴팍에 무슨 상자를 안고 있었는데 근육을 흘끔거리느라 그 속에 든 게 해삼인지 고구마인지도 보지 못했다. 특산품 광고 모델로 적합한지는 모르겠으나 영암군이 어디에 있는 지는 알고 싶어졌다. 벌써 친구 중 셋이 결혼을 했다. 셋 다 서울 아닌 동네에 살고 있다. 아무래도 집값이 싸야 초혼 연령이 낮아지는 모양이지. 신나서 결혼해놓고 어떻게들 지내는지 궁금하다. 10월, 토요일인 오늘도 네 번째 결혼식에 간다. 예식장에 12시까지 도착하기 위해 출근하는 날보다 일찍 일어났다. 고속버스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