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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0918 토 / 힐굴오아의 세 저자 / 긴개의 사자성어 본문
힐굴오아 [詰屈聱牙]
물을 힐 / 굽을 굴 / 말듣지 아니할 오 / 어금니 아
= 길굴오아 [佶屈聱牙]
1. 글의 뜻이 어려워서 읽기가 매우 어려움
2. 뜻이 어려워서 읽기가 매우 어렵다
3. 문구가 난삽하여 뜻을 이해하기 어려움.
공연히 읽기 어렵게 쓰인 글에 신경이 곤두선 옛 어른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런 글을 특별히 지칭하는 사자성어가 생긴 것을 보면.
모든 글에는 독자가 있다. 나 혼자만 꽁꽁 감춰두고 읽으려 쓴 일기도 ‘미래의 나’라는 독자가 있다. 혹은 무의식적으로 내가 죽은 뒤에 누군가 읽어주기를 기대하며 불태우지 않고 보관해왔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힐굴오아의 저자는 독자 역시 자신만큼 특출한 독해 능력이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겸손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나 못지않게 공부에 매진하고 사전을 뒤적거리며 연필과 씨름한 수많은 나날을 지새왔다고 상상한 것이다. 상대의 지적 능력을 순수한 마음으로 나만큼, 혹은 나보다 훨씬 대단한 수준으로 평가했기에 자신의 글이 어떤 사람에게는 읽히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일부 대학교 교수나 학자가 그런 유형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또다른 힐굴오아의 저자는 자신의 문장이 타인에게 어떻게 읽힐 지 알고 있다. 이 사람은 본인의 박학다식함을 뽐내기에 조금도 빠지는 구석이 없기를 기대한다. 생소하거나 어색한 단어라도 최대한 활용하고 문장 구조 역시 한 눈에 들어오지 않게 줄줄 늘여놓았다. 문장의 알맹이가 잘 전달되지 않은 것은 독자의 이해력 부족 탓이며 자신의 고매한 식견에는 잘못이 없다. 귀중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자라면 노고가 뒤따르기 마련이니 불평해서는 안된다. 그 분야의 전문가임을 자처하기 위해 안달난 사람이 이런 유형에 속할 수 있다.
마지막 저자는 본인의 작문과 독해 실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난해한 글을 써갈겨 버린 사람이다. 몇 번이고 읽어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지 알 수 없게 쓴 글 때문에 본인과 타인을 당황스럽게 만들었으나 그러한 의도는 없었다. 이 경우의 저자는 미숙한 작문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어하는 사람과 본인의 문장에서 비롯된 문제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이런 유형의 저자이다.
유형은 다양하나 독자 입장에서 셋 다 달갑지 않은 저자임은 동일하다. 길거리에 갈겨놓은 알 수 없는 의미의 낙서, 영어로 줄줄 써놓았지만 실상은 아무런 뜻이 없는 패션잡지의 소개글 역시 힐굴오아로부터 느끼는 불쾌함과 비슷하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던 무례한 힐굴오아를 꼬집어 핀잔을 주기 위해 특별히 사자성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현대의 독자들은 힐굴오아라면 아주 질색할 뿐더러 조금이라도 긴 글 역시 팔색하기 때문에 오만방자한 저자의 난해한 글이 널리 읽힐 가능성은 아주 낮아졌다. 자신의 문장이 널리 읽히길 바라는 사람은 훨씬 쉽고 술술 읽히는 글을 써야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힐굴오아라는 사자성어 대신 쉽고 입맛에 맞는 글만 편식하려는 선택적 문맹인을 꼬찝는 사자성어가 만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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