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0211 목 / 『보통의 감상 of the ordinary』, 김지연, SUNDRY PRESS, 2020 /긴개 본문

2021-2023 긴개

0211 목 / 『보통의 감상 of the ordinary』, 김지연, SUNDRY PRESS, 2020 /긴개

긴개 2021. 2. 11. 23:54




『보통의 감상 of the ordinary』은 2021년 처음 완독한 책이다.
작년도 완독한 책이 몇 권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책을 끊어왔는데, 지적 허영이라는 금단 증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기어이 읽고야 말았다. 미세한 내적발전에 미약한 원동력이 되어준 미천한 허세와 허영심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 차례 >
- 우리
나의 도시 / 정희우
식물을 닮은 세계 / 김이박
치유의 손짓/ 김진희

- 틈
영롱한 순간들 / 황연주
우리 각자의 이야기 / 권하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 장서영

- 세계
시간의 얼굴 / 박진희
페이크 파라다이스 / 문소현
기술 앞에 선 예술가 / 하석준

- 책과 영화들


갤러리 위치와 정보가 수록된 지도가 책과 함께 도착했다 !






미술 전시를 최근 네댓번 봤다. 기왕 품들여 다녀왔는데 꼼꼼하게 감상이며 비평 등을 기록해놓으면 얼마나 알차고 좋을까. 하지만 품만 들었지 제대로 이해한 게 없는데 뭘 쓴단 말인가. 손 안 대고 코 풀 속셈은 아니었다. 입구에서 나눠주는 전시 플라이어도 꼼꼼히 읽고 시간을 갖고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전시 개요를 먼저 읽고 관람을 하면 플라이어에 쓰여진 내용 그대로를 따라 읊을 뿐이고, 먼저 관람을 한 뒤 설명을 읽어보면 동태 눈으로 놓친 디테일이 많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스스로 느낀 것은 없나? 이걸 남들에게 관람했다고 말할 수 있나? 열의에 차 전시장에 입장했다가 찜찜한 표정으로 나오는 이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었다. 미술을 전공 해놓고 전시 하나 제대로 관람하지 못하는 나를 졸업시키는 모교는 반성하세요. 이사장은 삭발이라도 하시오. 미안한 마음 없어도 해보시오. 그냥 보고 싶으니까.

강의실에서 수업하는 대신 갤러리에 전시를 감상하러 가는 날도 있었으나 대부분 교수님이나 교수님 지인의 전시였으며 인사 한 번 드리고 오는 것이 전부였다. 교수님은 도대체 왜 그 고생을 해서 그깟걸 만들어놨는지 알 길이 없었다. 예술학과를 제외한 미대 과들은 전시 비평을 쓰는 일이 적었다. 그 이전에 작업의 시작이 되는 아이디어를 글로 정리하는 일도 없었다. 학기가 끝날 때쯤엔 설명할 것 없는 작업을 세워놓고 더듬거리는 애들이 많았다. 나는 그나마 우기는 축에 속했다. 이런 의도로 이렇게 만들었고 여러분 눈에 부족한 듯 보이는 이 부분 역시 처음의 계획대로 나온 것이라고. 의심에 찬 눈초리로 작업에 대해 재차 묻는 애들과 마피아 게임이라도 하듯 허접한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던 지난 날의 고단한 나를 떠올리면 웃음이 나온다.

트릭아트 전시 티켓을 구해왔던 까마득한 옛날의 남자친구가 떠오른다. 미대 다니는 여자친구와 데이트 하겠다고 나름 맷돌을 굴린 모양이었으나 그 때의 나는 그를 힘껏 비웃었다. 애들이나 좋아할 법한 트릭아트를 나한테 가자고 한 거냐며 잔인하게 면박을 주었던 과거의 나는 몰랐지. 미래의 나 역시 예술 까막눈일 거란 사실을. 그는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그럴 수 있지만 나는 변명할 거리가 없다. 반성의 의미로 스스로 엉덩이를 한 대 때리겠다.





앞뒷면이 빽빽한 알찬 갤러리 지도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책이나 전시 도록도 몇 권 사고 읽었지만 잡은 물고기를 건네 받았을 뿐 여전히 물고기 잡는 법은 까마득하다. 어떻게 하면 전시를 내 식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 중 김지연 작가님의 신간이 눈에 찰싹 붙었다. '보통 사람을 위한 현대미술 에세이' 『보통의 감상』 서문은 전시를 관람하며 느꼈던 아쉬움에 대한 명확하고 친절한 제안을 건넨다. 보통 사람에게 '궁금하지만 멀고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린 현대미술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동시대인의 눈으로 읽어낸 예술'이다. 굳이 현대미술을 감상해야하나 미심쩍다면 다음의 문장에 설득되어보라.
'우리와 같은 땅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이 표현하는 이야기 속에는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들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그들과 대화하며 동시대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개인적인 고민의 답을 얻을 수도 있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질문과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현대미술은 쉽게 보이지 않는 작은 틈을 드러냄으로써 우리의 삶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그리고 더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 줍니다. 그래서 동시대의 미술이야말로, 더욱더 많은 보통의 사람들이 가까이 두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대로, 현대미술의 의의를 『보통의 감상』을 통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어쩔 땐 세상살이가 다 똑같고 대단할 것 없이 시시하다. 밥 먹고 씻고 잠 자고 외출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상이 너무나 단순해서 그만 하품을 해버릴 것 같다. 그러다 이 세상에서 색다른 지점을 발견하고 그 현상의 이면까지도 표현한 작가를 보게 되면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거대한 세상의 일부분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죽을 거란 생각이 들고 만다. 어쩌면 내가 본 것과 똑같았을 풍경, 사건, 상황을 작가는 예리한 시선으로 파헤치고 새로운 형태와 구조로 끄집어낸다. 나는 보지 못하는 면을 누군가는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는 사실에 배가 아프다. 내 주관이 좀 더 뚜렷하고 깊었더라면, 아는 게 많아서 세상을 보는 눈이 더 선명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함께. 하지만 이렇게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지. 세상 만사에 능통할 수 없기에 이렇게 타인의 시선을 빌려 하나의 사건도 옆에서 보고 뒤에서도 보는 거지. 이런 자극은 음악이나 영화, 건축 역사에서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점점 더 넓은 영역으로 번지고 다양한 재료와 매체를 다루는 걸까. 우리는 지금껏 하나의 수정체로 평면적인 세상만을 봐왔다면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것은 세상을 여러 개의 홑눈으로 보는 것과도 같다. 결코 눈 앞의 것들이 보이는 대로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매번 깨닫도록 도와주는 미술.

『보통의 감상』을 읽으며 최근 친구들이 털어놓은 고민이나 우울이 떠올랐다. 이 전시를 그 친구가 봤더라면, 이 메시지를 읽었더라면 내 피상적인 위로보다 훨씬 위안을 얻지 않았을까. 그런 문장들 몇 개를 아래에 옮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가졌지만, 가끔 그 사실을 잊고 외부를 헤맨다. 그러나 자존감은 내 안을 깊이 들여다보고 온전히 사랑해야 구할 수 있다.' p.31

'좋아하면 마음이 커지고, 마음이 커지면 더 깊이 파고들고, 꾸준하게 파고든 끝에는 애증이 생긴다. 그 자리에서 솟아난 예민함과 까칠함은 오히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디테일을 포착해서 존재의 내부와 관계의 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수선하는 힘이 된다. 식물이 뿌리 내리고 자라나는 모습처럼 조용히,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면서도 지키고 싶은 게 있다는 마음은 그런 것이다.' p.50

'그래서 때로는 그저 버티며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무엇보다 강한 투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웃거나 울고, 걷고, 일하면서,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다.' p.69

'우리는 '진실'이라는 단어가 단수라고 쉽게 믿어버린다. 그러나 진실은 시선과 기억이 만들어낸 복수의 조각들, 혹은 그 조각들이 얼기설기 얽힌 불완전한 덩어리에 가깝다.' p.94

'우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며 쓸모를 다하는 동안은 대체로 사회의 잔인함을 느끼지 못한다. 병을 앓거나, 나이가 들거나, 혹은 또 다른 이유로 사회가 요구하는 생산성을 발휘하지 못해 '정상'라인에서 배제되고 나서야 자신과 같이 밀려난 존재들이 눈에 들어온다.' p.112-113

'질병은 보이지 않는다. 병명과 증상으로 질병이라는 상태를 규정하지만, 그 질병으로 인해 언제부터 언제까지 얼마만큼의 고통을 겪는지, 그로 인해 개인의 삶과 인간관계, 인지활동이 어떻게 통째로 바뀌는지 어디에서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p.119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없거나 외부에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때론 아픔도 아픔이 아니게 된다.' p.120

'미사코와 나카모리처럼 우리는 분명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서로 차원이 다른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보이지 않거나 증명할 수 없어도 각자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p.126

'한 사람을 전부 알 수는 없지만 그나마 근사치에 가깝게 아는 방법은 좀 더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지고 다양한 면을 관찰하는 것뿐이다.' p.134











간만에 마음에 드는 책을 읽었기 때문에 내가 느낀 감정을 최대한 전달하고 어서 읽어보라고 꼬시고 싶지만 그럴만한 소개글을 썼는지 장담할 수 없어 아쉽다.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공짜로 읽기엔 정말 괜찮은 책이니 다음엔 직접 사서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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