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을지로 맥파이 일주년, 장춘의 삶은 밤, 정순의 프림 없는 커피 _ 정말 그냥 일기 _ 2024.10.13(일) 본문

2024 긴개일기

을지로 맥파이 일주년, 장춘의 삶은 밤, 정순의 프림 없는 커피 _ 정말 그냥 일기 _ 2024.10.13(일)

긴개 2024. 10. 13. 22:17

 

 

 을지로에 매장을 열고 일주년을 맞이한 맥파이가 어제 파티를 열었다. 그 핑계로 주말 밤 을지로에 발을 들였다. 맥주를 사랑하지도 않고(물론 취향 정도는 있다) 맥파이에도 별 관심 없지만 이런 핑계로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거지. 친구이자 맥파이 직원인 희의 존재도 가슴을 펴고 입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오래 놀고 싶은데 혹시나 눈치가 보인다면 희를 방패 삼아 더 머무를 생각이었다. 이렇게 불경한 나... 큰 잔치에 같이 놀자고 나를 끼워준 효와 윤, 의, 예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 떠오르는 사람으로 나를 꼽아주다니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도 열심히 놀아 그 기대에 부응하겠으며 실망시키지 않는 광대가 될 것이고···. 

 

 파티에 놀러온 사람들 연령대가 다양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비트를 가르며 입장했고 FnB 업계 짬밥 좀 먹은 사람들, 그리고 유명한 그 파티 콜렉터도 있었다. 그분은 일단 박자 타는 보법이 다르다. 모든 음악을 이미 알고 있고, 오로지 음악에 빠져 누구보다도 그 순간을 즐긴다. 그분 옆에 서니 남 눈을 의식하며 더 마구 놀지 못하는 내가 진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흥은 전염성을 띤다. 만약 그분을 뵙게 된다면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그 흥을 하사 받도록 하시오. 파티에선 무아지경에 빠져야 이기는 거야···. 오랜만에 일기 쓰려니 자꾸 점점점을 붙인다. 

 

 점점이 제일 좋아한다고 꼽았던 디제이 재용, 역시나 플리 좋았다. 춤을 추지 않고는 배길 수 없도록 흥을 달달 구워 팝콘처럼 터지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하이라이트의 타이거디스코! 매장을 콘서트장으로 뒤집어 놓으셨다. 가사를 다 같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점점 줄어드는 시대라 이런 플레이가 더욱 반갑고 소중해진다. 같이 춤추며 즐거워하던 옆 분이 나를 툭 치며 "음악은 역시 뽕짝이야"하셨다. 끄덕끄덕. 춤출 수 없는 음악에 공감할 수 없지, 춤출 수 없는 저항에 함께 할 수 없듯. 모르는 분이었는데 친해질 걸 그랬지. 아쉬운 건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귀에다 직접 말을 해야만 대화가 가능했다는 거. 친교가 목적인 파티라면 음악 소리를 조금 줄이고 서로 대화할 수 있게 해 주면 좋을 텐데. 홍대 앞 클럽이라면 모를까, 연령대가 다양한 파티라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틈을 줬으면 하는 바람. 파티에 가서 모르는 사람을 한 명도 사귀지 못하고 돌아오는 건 아쉽잖아. 아는 사람들끼리만 대화하는 파티를 지양하고 싶다. 쓰다 보니 희영수 오프닝 파티가 떠오른다. 내향인이 가득해 방문해 준 것만으로도 의리를 충분히 인증하고도 남았던,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그 엄숙한 순간. 어떻게 해야 내향인도 즐길 수 있는 파티를 만들 수 있을까. 내향인과 파티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단정하면 내향인이 서운할 수 있잖아. 진정성 있는 대화가 얼마든지 오갈 수 있는 큰 잔치 고민해 봐야지. 모두가 노트에 인사말을 써서 건네는 필담 파티, 간단한 인사말을 수어로 배워오는 수어 파티, 단체 채팅방을 열어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채팅으로 건네는 채팅 파티···. 쓰고 보니 괜찮은 것 같은데?

 

 택시비 십만 원이 나와도 무조건 귀가하겠다던 굉장한 유부녀 효가 돌아간 뒤 준과 점점, 윤과 나는 종로 포차거리로 향했다. 본디 게이들의 성지였던 그 곳은 어느새 젊은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모여드는 굉장한 장소가 되어있었다. 간이테이블과 진실의 의자로 손님을 끄는 포장마차에는 오징어배처럼 눈부신 조명이 주렁주렁 달렸다. 인파로 가득한 거리는 자연스럽게 차 없는 거리가 되었다. 구청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형광색 조끼를 입고 사람들이 차도로 나오지 못하게 호루라기를 불었지만 술에 취한 사람들은 히죽 웃으며 라바콘을 넘어트리고 플라스틱 사슬 위로 건너 다녔다. 무형문화재로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엿장수가 트로트를 틀고 신명 나는 가위질을 했다. 엿장수 가위질 소리, 담배 냄새, 소주병, 터진 음식물쓰레기봉투, 바닥에 흐른 음식물쓰레기 국물, 야한 옷, 세워 올린 머리, 비싼 목걸이, 하이힐, 웃음, 눈빛, 호루라기 소리. 나는 친구들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이고 타이밍 맞춰 웃었다. 더럽게 정신없었다. 지저분하고 활기찼다. 윤이 취해서 눈을 부릅떴고 나는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려 뒷걸음질 쳤다. 우리도 그 풍경 중 하나였다. 

 

 겨우 택시를 잡고 집에 돌아왔다. 피곤했지만 겨우 샤워도 마치고 잠에 들었다. 일어나니 오전 10시였다. 

 

 란마와 함께 아침 배변 산책을 나섰다. 정자에 있던 할머니 중 옥탑할매가 일어나 이리로 가자고 앞장섰다. 2층 옥탑에 사는 옥탑할매는 꽃을 많이 키워 꽃집할매라고 불렸다. 옥탑할매를 따라 란마와 산책을 하다가 내가 이름을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하면 바로 못 알아들으시고, 할머니 이름이 뭐예요? 해야 더 잘 들으신다. 이장춘이라며, 남자 이름이라고 부끄러워하셨다. 할머니가 되도록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을 붙여준 할머니 부모님께 내가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네. 장춘 할머니 저는 다정이요, 했더니 손에 든 검은 봉지에서 삶은 밤을 꺼내주셨다. 주머니에 넣어가라고 세 주먹이나 주셨는데 봉지 삼 분의 일은 되어 보였다. 묵직한 주머니로 장춘 할매와 헤어지고 동네를 한 바퀴 걷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이번에는 어디선가 순돌 할매가 불렀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재깍 찾지 못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더니 깔깔 웃으면서 큰 소리로 란마야~ 하셨다. 란마의 반 만한 흰색 푸들 순돌이를 안고 옹벽집 옥상에서 할매가 웃었다. 커피 한 잔 하게 여기 계단 따라 올라오라고 했다.

 

 이 년 살며 처음 가본 계단을 따라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란마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쳤다. 좁은 현관 같은 마당을 지나 순돌 할매네 집으로 들어갔다. 안 그래도 도대체 이 높은 벽 위에 사는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천장은 낮고 마당은 한 평 정도로 좁았지만 거기서 내려다보이는 성북동은 기가 막혔다. 작은 창으로 햇빛이 다부지게 스몄다. 할머니들 집은 왜 이렇게 다 깨끗할까. 낡아도 깨끗하고 단정한 집. 순돌 할매는 명륜동에서 쌀장사 하다가 집을 사고 북정마을로 이사 온 지도 오십 년은 되었다고 했다. 막내아들 친구가 외국에 가느라 맡게 된 순돌이는 이제 데려온 지 일 년이 되었다고. 동네 어느 처녀인지 부인인지가 순돌이 이름표 목걸이를 만들어다 정자에 맡겨두었는데 그 뒤로 고맙단 말을 못 해 아쉬웠다는 순돌 할매의 이름은 박정순. 밀양 박가의 정순이 사는 그 집은 원래 평지에 있었고, 집 옆에도 다른 집이 붙어있었는데 동네에 찻길을 내며 땅을 깎느라 얼떨결에 높은 데 위치하게 되었다. 맞은편 양씨네 가게 역시 한 층짜리 건물이었는데, 땅을 깊게 파 길을 내니 이 층짜리 건물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동네의 특이한 구조가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서울이어도 시골 같다며 이웃 사람들이 이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동네라 좋다고 하셨다. 낯선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가야 하는 무서운 아파트보다 탁 트이고 정겨운 이 동네가 훨씬 좋다고. 맞아요. 저도 그래요. 정순 할매는 아기자기한 인형과 소품으로 방 구석구석을 꾸며놓았다. 가끔 귀여운 인형 보면 하나둘 사드려야겠다는 생각. 프림 든 커피는 아기 젖내 나서 비위 상해 못 드신다며 깔끔한 커피를 대접해 주셨다. 요 밑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가서도 아메리카노를 드신다기에 언제 한 번 같이 가자고 했다. 동네 할매들이랑 커피 마시러 가면 또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성북동 잔치 열릴 때 할매들 모아서 버스 타고 한 번씩 다녀와야지. 언제든 커피 마시러 놀러 오라고 하셨다. 할매들은 언제든 커피를 타줄 준비가 되어있고, 나는 언제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위장을 가졌으니(아직) 겨우내 언제든 같이 놀아야지. 할매들 노는데 나를 끼워주시고, 밥 남은 거 노나 주시고, 다 드신 뒤면 미안해하시고. 귀엽고 억센 할매들 오래 봤으면.